“무례하게 굴어봐. 무례하게 놀아봐.” 에서 심사위원인 박재범이 랩한다. 정말로 충실하게 따르는 이가 있다. 자신이다. 그는 연관검색어 ‘논란’을 지독히도 사랑한다. 그래서 이제 툭하면 튀어나오는 삐- 소리 정도로는 시청자를 놀라게 할 수 없다. 죽부인을 들고 성행위를 흉내 내거나, 마이크 끄덩이를 잡으려고 개싸움을 하거나, 산부인과의사회에 사과문 보내기 배틀 정도는 해야 한다. 그래야만 진정한 욕받이 무당이 될 수 있다.
하나의 게임이라면 인정해줄 만하다. 쇼는 이 방식으로 시청률을 올리고, 음원 차트를 휘어잡고, 스타 래퍼들의 등용문이 되고 있다. 힙합 신은 절대 이 괴물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유명 크루 소속, 아이돌 멤버, 길바닥 실력파, 심지어 이들을 직간접적으로 가르쳐온 십수 년의 베테랑까지 모여든다. 가래를 뱉어도 링 안에서 뱉자며.
래퍼들은 스타일도 다양하고 솜씨도 만만찮다. 실력 없는 상대를 대놓고 저격하는 당돌함은 다른 오디션 쇼에서는 볼 수 없는 흥밋거리다. 그러나 쇼의 입장에서는 부족하다. 좀더 무례해야 한다. 쇼 안은 물론 쇼 밖의 사람들을 괴롭힐 만큼 무례해야 한다. ‘그들보다 더 자극적인 단어 선택과 가사를 써야 한다는 부담감’, 송민호의 사과문은 그 위악의 유혹을 말하고 있다.
비트, 라임, 플로만 문화가 아니다. 어떤 식으로 경쟁하느냐, 게임의 방식 역시 문화다. 힙합과 랩은 20세기 후반에 태어난 미국 흑인들의 문화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경쟁 방식은 100년 전부터 존재해왔다. 뉴욕의 아폴로극장은 20세기 초반 할렘 르네상스 시절부터 흑인 문화의 중심지로 영광을 이어왔다. 특히 ‘아마추어 나이트’는 수많은 흑인 예능인들의 등용문이었다. 엘라 피츠제럴드, 마이클 잭슨, 지미 헨드릭스 등이 아폴로를 통해 데뷔했다. 그런데 여기에는 우리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게임의 방식이 있다. 우승자는 관객들의 환호에 따라 결정되는데, 관객들은 누구든 실력이 떨어진다 싶으면 가차 없이 야유를 보낸다. 훗날 최고의 리듬앤드블루스(R&B) 가수이자 래퍼가 되는 로린 힐도 13살에 그 무대에 올랐고, 냉혹한 야유 세례를 이겨내야 했다.
흑인들 특유의, 그리고 길거리에서 만들어진 배틀 방식이다. 고된 노동과 인종차별에 시달리던 그들에게 노래와 춤은 찰나의 해방구였다. 어쭙잖은 실력으로 그 시간을 뺏어가는 건 범죄나 다름없었다. 그들은 흑인 인권운동을 통해 강렬한 자의식을 얻었다. 그러나 빈곤과 범죄의 굴레는 결코 벗어날 수 없었다. 랩은 이러한 분노의 마음을 직설적으로 외치는 음악으로 태어났고, 싸움의 상대는 눈앞의 경쟁자만이 아니라 자신을 괴롭히는 억압자 전체가 되었다.
힙합과 랩이 한국인 속으로 들어왔다. ‘디스’라는 중요한 형식도 포함되었다. 그런데 지금 이 디스가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자기 삶의 분노를 곱씹어보고, 그것을 만들어낸 부당한 힘에 항의하고 있는가? 기껏해야 심사위원들을 까는, 용기 발랄한 척하지만 그저 놀이문화로서의 디스가 아닌가? 그래, 누군가는 이 정도가 가소롭다는 걸 안다. 그러니 더욱 센 걸 터뜨려야 한다. 그런데 그 방향은 엉뚱하게도 자신의 범죄적 성충동을 고백하거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로 나아간다.
박재범-로꼬 팀의 가 음원 차트 1위에 올랐다. 좋은 노래다. 하지만 ‘리스펙트’라는 단어가 나를 불편하게 한다. 그것은 흑인 예능인들에게는 역사적인 단어다. 그들이 노예의 삶을 잠시 벗어나 춤과 노래로 어떤 백인들도 흉내 낼 수 없는 가치를 만들어낼 때, 스스로에게 말하던 주술적 언어다. 겉멋 든 위악으로는 만들 수 없는 가치다. YG의 출입증을 목에 걸고, 글램핑에서 바비큐를 뜯고, 자신을 깔보던 여자들을 데리고 논다고 생기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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