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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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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찍기가 제일 쉬웠어요

촬영은 토·일요일 반나절, 총제작비 30만원을 투여해 만든 6분짜리 영화 <노래하고 싶어요>
등록 2015-07-17 15:06 수정 2020-05-03 04:28
김지현 제공

김지현 제공

우리는 다들 잘 놀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생업과 꿈꾸는 일, 그 사이를 오가야 하는 사람들이다. 시간이 없고 늘 피곤한데다, 불안해서 당최 놀 수가 없다. 게다가 가난하다.

왜 그런 꿈을 꿨는지 잊어버린 사람들

목수 일을 하면서 가수를 꿈꾸는 남자 A, 옷가게를 운영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여자 B, 본업은 연극배우지만 지방을 돌아다니며 무대 조명 일을 하는 남자 C, 회사를 과감히 그만두고 전업 사진작가를 막 시작한 남자 D, 엄마에게 손 벌려가며 글만 쓰는 나, 뮤지컬 배우인 여자 E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밥을 먹는 자리에서 그 일이 시작됐다. 가벼운 말들이 오가다가, A가 자신의 무대공포증에 관해 털어놓은 게 계기였다. 다들 진지하게 고민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비슷한 고민이었다. 그러나 가난한 생활이나 불안함에 대한 얘기는 아니었다. 오디션에 합격하기 위한 연기와 노래, 팔기 위한 글을 배우는 데도 벅차, 애초에 왜 그런 꿈을 꾸게 되었는지조차 잊어버렸다는 거다. 어떤 자격을 얻어야만 우리가 원하는 걸 할 수 있는 걸까? 하고 싶은 거라면 당장 할 수는 없을까?

그래서 아주 충동적으로, 영화를 찍기로 했다. 영화에 관한 지식이나 경험이 있는 사람은 나와 배우인 C뿐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겁을 내지 않았다. 우리는 영화제에 출품하거나 어딘가에 제출할 작품을 찍으려는 게 아니었으니까. 그저 뭔가를 만들어내면서 놀고 싶었을 뿐이니까.

룰은 간단했다. 모두가 출연할 것. 그리고 모두가 스태프가 될 것, 시간과 제작비를 최소화할 것, 우리의 이야기를 할 것. 시나리오 회의를 하러 한 번 모였고, 시나리오를 쓰는 데는 2시간이 걸렸다. A의 고민을 은유적으로 빗댄 내용이었다. 청소만 하도록 강요받는 로봇이 노래를 부르고 싶어 자신이 살던 세상 밖으로 나간다는 단순한 내용이었다.

한 대학 교정에서 모든 촬영 장소를 찾았다. 촬영은 토요일과 일요일, 반나절씩을 투자했다. A는 소주 박스와 하수구 뚜껑 같은 것들로 로봇의 머리를 만들어왔다. B가 광장시장에 가서 의상을 1만원에 구입해왔다. 디지털일안반사식(DSLR) 카메라의 동영상 기능을 이용해 촬영했다. 되도록 자연광을 이용했으며 밤에는 휴대전화 발광다이오드(LED) 조명만을 이용했다. 집에서 노트북을 이용해 사운드를 녹음했고, 친구의 맥북을 빌려 기본 기능만 이용해 서툴게 편집했다. 총제작비 30만원, 그렇게 6분짜리 영화, 가 완성됐다.

일주일 정도 맡은 일을 틈틈이 해내고, 모여서 이틀간 촬영을 하던 그 시간 동안, 우리는 무척 진지했고, 작은 소품 하나를 만들면서도 성취감을 느꼈다. 자기를 증명해야 한다는 강박 없이 무언가를 함께 만들어내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나눠 가진 영상을 보면, 그때의 공기와 냄새, 웃음소리와 수다까지 고스란히 기억이 난다.

페북과 유튜브가 상영과 배급

내가 ‘작가’라고 스스로를 소개하기 시작한 뒤부터, 처음 만난 사람들이 내게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며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놓곤 했다. 놀랍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남녀노소, 직업을 가리지 않고 그랬다. 그러니 누구나 창작의 욕구가 있지만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봐도 될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직접 영화를 찍어보라 권하고 싶다. 놀이로서, 영화를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스마트폰의 동영상 기능을 다룰 줄 아는 것으로도 충분하고, 장난 같은 연기나 형식 없이 쓴 몇 줄의 글로도 만들 수 있다. 페이스북이나 유튜브, 블로그에 올리는 것으로 상영과 배급을 대신할 수 있다. 그렇게 시작한 놀이가 어떤 식으로 확장될지는, 직접 해봐야 알 일이다.

김지현 시나리오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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