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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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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타파, 노는 법을 알려주마!

놀이 선구자들에게 듣는 ‘잘 노는 법’… 일단 떠들 것, 언제 재미있는지 적어볼 것, 부족함·한계는 내다버릴 것 그리고 실행할 것!
등록 2015-07-17 14:29 수정 2020-05-03 04:28

바야흐로 여름, ‘그래, 놀자!’ 하고 호기롭게 나서지만 ‘놀아본 놈이 논다’는 상용구가 맴돌 뿐이다. 부인할 수 없는 진실에 가까운 말이다. 일상의 스트레스에 치여 주말이면 잠으로 체력을 보충하고, TV 예능 프로그램으로 정신력을 잠깐 마취시켜 웃다보면 어느새 세상에서 제일 싫은 시간 일요일 밤이 찾아온다. 어느덧 코앞에 닥친 여름휴가도 비슷한 시간표로 굴러갈 태세다. 도리도리, 고개를 내젓는다.
‘잘 노는 사람’들을 찾아 “어떻게 하면 잘 놀 수 있을까요?”라고 세상 쓸데없어 보이는 질문을 던진다. 놀이문화계 유명 인사를 단 몇 명만 꼽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과 시각을 기준으로 놀이문화계 선구자들을 선정해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이 안내하는 길을 꼭 같은 모습으로 걸어야 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 약간의 힌트만 얻고, 그걸 놀이문화 개발에 활용하는 건 각자의 몫이다.

2014년 12월25일 열린 ‘러브락 크리스마스 라이브쇼’에서 기명신 대표가 동료들과 함께 자작 캐럴인 <네바다주 소녀의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부르고 있다. 러브락컴퍼니 제공

2014년 12월25일 열린 ‘러브락 크리스마스 라이브쇼’에서 기명신 대표가 동료들과 함께 자작 캐럴인 <네바다주 소녀의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부르고 있다. 러브락컴퍼니 제공

노는 데 쓸데없는 아이디어는 없다

‘멸치똥 따기 대회’ ‘음주측정 콘서트’ ‘탕진 프로젝트’…. 뭔지 알 수 없지만 분명히 쓸데없어 보이는 이벤트의 이름들이다. 실제로도 그렇다. 인디록밴드 기획사인 러브락컴퍼니와 그 소속 밴드 또는 친한 밴드들이 함께 작당한 공연과 행사다. 뮤지션과 팬이 함께 강원도 춘천으로 떠나 진짜 멸치똥 따기 대회를 (그것도 격정적으로) 벌였고, 주당 뮤지션의 공연장 입구에선 관객에게 음주측정기를 들이댔다. 물론, 술 안 마셨으면 입장 불가. 고민도 걱정도 많은 청춘들에게 그들의 시간과 돈을 재미지게 노는 데 ‘탕진’하자고 꼬드긴다. 이 모든 작당의 중심에 선 그, 기명신 러브락컴퍼니 대표다.

“일단 ‘뭘 하고 싶다’라는 데서 출발해요. 그리고 그 이야기를 꺼내죠, 혼자서 생각하지 않고.” 기 대표와 그의 동료들의 그 기발한 ‘놀이법’에 대해 묻자 돌아온 답이다.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는 누군가의 꿈을 허투루 흘려듣거나 무시하지 않는다. 누군가 그렇게 아이디어를 툭 던지면 그다음부터 함께 모여 앉은 사람들의 입에 달린 모터가 풀가동된다. “그거 하려면 넌 뭐 할래” “진짜 재미있을까” “이렇게까지 해볼까” 하는 이야기가 쉴 새 없이 오간다. 입 모터를 가동해 전력을 다해 떠는 수다의 결론은 황당하기 이를 데 없을 경우가 많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것은 한다. ‘아이디어 제시-갈 데까지 가는 수다-재미있으면 되는 조건 내에서 실행’, 이게 새로운 ‘놀이’를 창조하는 프로세스다.

기명신 대표는 1년 전 어떤 가족의 일상을 보여주는 국외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보다가 문득 ‘우리 사무실이 저것보다 더 재미있을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고 동료들에게 이야기했다. “수다를 막 떨다가 보니까 한 명은 진짜로 CCTV를 알아보고, 또 한 명은 CCTV가 녹음은 안 된다니까 오디오 장치를 알아보고 있더라고요.” 그들은 그렇게 실제로 1년도 넘게 사무실 실황을 녹화하고 있다. 언젠가는 이 영상으로 시트콤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겠단다. 이렇게 꿈은 이루어진다.

놀이 프로세스에 한 가지 보태져야 할 것이 있다고 기명신 대표는 말한다. “각자가 재미있어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어야 하죠. 그리고 무엇이든지 참여하는 사람이 진짜 ‘참여’를 해야 해요, 그냥 지켜보는 게 아니라.” 그래서 시작된 게 러브락컴퍼니의 연중행사 중 가장 인기 많은 크리스마스 파티다. 이 공연에는 갤럭시 익스프레스나 파블로프 같은 소속 밴드만 참여하는 것이 아니다. 기 대표도, 함께 일하는 동료들도 무대에 오른다. 기존 캐럴을 부른다면 특별할 것 없겠다. 이들은 자작곡을 부른다. 갤럭시 익스프레스에서 보컬과 베이스 기타를 치는 이주현씨가 기 대표에게 “형도 1년에 한 곡이라도 노래 만들어봐요. 진짜 재미있어요”라며 건넨 말 한마디에 출발한 게 자작곡 캐럴과 함께하는 크리스마스 파티다.

서울 서대문구 신촌 한복판에 자리잡은 꿈과 희망의 고품격 문화공간 ‘몽롱문방구’의 운영자 문겸조씨와 이아현씨. 동대문루프탑파라다이스 제공

서울 서대문구 신촌 한복판에 자리잡은 꿈과 희망의 고품격 문화공간 ‘몽롱문방구’의 운영자 문겸조씨와 이아현씨. 동대문루프탑파라다이스 제공

행복하고 재미있는 걸 찾는 것도 공부

놀이문화계에는 신예도 여럿 있다. 그 이름도 참 알쏭달쏭하면서 멍~해지는 기분이 드는 ‘몽롱문방구’(몽방구)의 운영자들은 놀이문화계 신성이다(설문조사를 한 적은 없고, 주관적으로 정했다). 그들의 작당과 행태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처음 확인했다. 향수를 자극하는 복고 아이템이 가득한 실내 디자인, 못 그린 캐리커처와 가게 이름 정도가 인상적이었다. 물론 복고풍 주점은 이미 여럿 있다. 그런데 몽방구에선 빵빵 터지는 파티와 이벤트가 열린다. 최게바라기획사가 기획한 ‘또라이과거시험’ 대연회가 열렸고, 길거리에서 연습하고 연주하는 ‘야생뮤직크루’의 멤버들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얼마 전 대망의 1주년 파티가 있었다. 몽방구의 운영자와 VIP 손님들, 초대된 DJ가 새벽 동이 틀 때까지 골목이 시끌벅적하게 놀아젖혔다고 한다.

서울 서대문구 신촌의 몽방구에 가면 2명의 운영자를 만날 수 있다. 야무지게 살림하는 놀이에 빠진 이아현씨와 몽방구 연출가의 이름으로 놈팡이를 담당하는 문겸조씨가 있다. 두 사람은 길거리에서 캐리커처를 그리며 놀고 생계를 이어가던 이들이었다. 그러나 단속 때문에 길거리에서도 쫓겨났다. 그러던 두 사람에게 동아줄이 내려왔다. 알고 지내던 이가 두 사람에게 투자금을 내놓으며 재미있는 술집을 만들어볼 것을 제안했다. 그리하여 탄생한 곳이 몽방구다.

문겸조씨는 몽방구를 ‘그릇’ 또는 ‘밭’이라 여긴다. 그는 이곳에 심고 싶은 게 참 많다. 그 씨앗은 예상치 못한 곳에 자라고 있었다. 바로 그의 일기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스스로 행복하다, 재미있다고 여기는 것을 구체적으로 꾸준히 적었어요. 7년 넘게요.” 그렇다. 여기서 또 하나의 힌트를 얻는다. “‘꼬질꼬질’하다는 표현이 좋았어요. 뭔가 낡은 물건과 공간들이 좋았고요. 일기를 적다보면 더 구체적으로 내가 무엇을 할 때 재미있다는 것을 알아갈 수 있었고요. 이런 행복을 느끼는 게 저에겐 또 다른 공부예요. 뭔가를 외우고 성적을 받고 하는 것만이 공부가 아니잖아요.”

이아현씨는 몽방구에서 ‘이싸장’이라 불린다. 그는 베짱이에 가까운 문겸조씨와 달리 ‘개미’에 가깝다. 그렇다고 근면성실함으로 무장한 일꾼이라는 이미지와 가깝지는 않다. 이싸장은 “몽방구에서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가게를 꾸리고 하는 것 자체가 재미있어요. 일이기도 하지만 놀이라고 생각하는 이유죠”라고 말했다. 그런데 술을 파는 문화공간 몽방구에서 일하면서 이싸장은 정작 술을 잘 마시지 않는다. “술을 안 마셔도 재미있는 일이 많아요. 수다를 떨다보면 손님들이 많이 편하게 느껴요. 긴장도 풀고. 그러다 노래가 나오면 같이 춤추고 웃고. 꼭 술만 중요한 게 아니라 이곳에 여러 분야의 예술가 친구들이 모여들기도 하는데 그 친구들의 작품이나 물건을 몽방구에서 팔기도 하고, 공연도 해요. 이게 저희가 바라는 ‘놀이터’의 모습이었어요.”

서울 동대문구 신발도매상가 B동 옥상의 동대문루프탑파라다이스에서 열린 ‘찰싹 파티’. 바로 아래층에 사는 주민들에게 층간소음 피해 주는 것을 피하기 위해 반드시 발 한 짝을 바닥에 붙이고 춤을 추기로 했다. 동대문루프탑파라다이스 제공

서울 동대문구 신발도매상가 B동 옥상의 동대문루프탑파라다이스에서 열린 ‘찰싹 파티’. 바로 아래층에 사는 주민들에게 층간소음 피해 주는 것을 피하기 위해 반드시 발 한 짝을 바닥에 붙이고 춤을 추기로 했다. 동대문루프탑파라다이스 제공

놀이와 삶, 삶과 예술의 실험실

하늘 위 ‘놀이터’도 있다. 서울 동대문구 신발도매상가 B동 6층 동대문 옥상낙원, 이름하여 ‘동대문루프탑파라다이스’(D.R.P)다. 이곳에는 예술가이자 옥상농부인 박찬국씨와 역시 예술활동과 함께 동대문 지역 옥상 생태계 등을 조사하고 여러 가지 일을 꾸미는 이지연씨와 김현승씨가 있다. 이들은 일상이 예술이자 놀이일 수 있는 삶을 지향한다. 그것도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박찬국씨는 예술가지만, ‘예술작품’의 의미를 끊임없이 묻는다. 번듯한 공간에 놓인 예술작품도 좋지만 삶 속에 경계 없이 녹아 있는 ‘예술’이 어떤 모습일까 실험한다. 그의 작품은 D.R.P도 아니고, 거기에 놓인 물건들도 아니다. 그곳에 사는 것 자체다. “사람에게 의문을 갖게 하고 질문을 던지게 하는 게 예술의 역할이라고 봐요. 효율성이나 깨끗함 같은 걸 좇지 않는 삶을 보며 질문을 던져요. 거기에서 소통과 반응이 일어나고. 이게 어떤 사람들에게는 놀이일 수 있고, 재미를 줄 수 있죠.” 박찬국씨는 이야기했다.

‘놀이예술’이라고 해야 할까? 그들이 D.R.P에서 그곳을 찾는 사람들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놓치지 않으려는 것은 ‘예측 불가능함’이다. 김현승씨는 이렇게 말했다. “‘논다’는 행위는 그 과정에 즐거움이 있죠. 어떤 목표나 결과를 도출하려는 게 아니잖아요. 이 공간 자체가 예측 불가능하고 이 공간에 관심 갖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도 예측하기 어려워요. 그 자체에서 ‘재미’가 일어나는 거고요.” 이지연씨는 D.R.P가 모든 환경에 ‘노출’된 공간이기에 ‘재미’의 요소가 더 많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옥상과 옥탑방은 모든 조건에 노출돼 있다. 사계절을 오롯이 겪어내야 하는 도심 속 날것의 공간인 것이다. 옥상 바로 아래에는 주거 공간이 있어 거주 주민들과의 관계에도 노출돼 있다. 이 노출된 조건 자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도 ‘놀거리’가 생긴다. 옥상에 쌓인 18t 분량의 쓰레기를 치우며 나온 물건들을 모아 ‘옥상유물 파티’를, 바로 아래층 주민에게 층간소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무조건 한 발은 바닥에 대고 추는 춤을 고안해 ‘찰싹 파티’를 열었다.

말도 안 되는 말부터 해보는 거

‘잘 노는 방법’을 창조하는 데 힌트가 될 법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무엇을 하고 놀 것인가?’ 험난하고 엄혹하고 답 안 나오는 세상에 이따위 목표를 세워보자. 이 목표를 달성하는 데 회의는 필요 없다. 일단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며 친구들과 빈둥거리며 수다를 떨어보자. 그 자유로운 상상의 나래는 어느 누구도 꺾을 수 없다. 그래서 지금 여기 우리에게 ‘놀이’가 더욱더 필요한 것인지 모른다. 자유로운 세상에 살고 있다 믿지만 부자유한 것이 너무 많은 시대이기에. 잠깐, 또 무거워지려 한다. ‘세상 쓸데없는 고민’이라는 비웃음쯤은 견뎌야 한다. 그들의 비웃음보다는 ‘나’의 진심 어린 행복한 웃음이 더 값지기에. 그리고 도저히 길을 못 찾겠다는 사람들을 위한 8가지 가이드도 덧붙인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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