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드라마는 ‘사’자 직업을 좋아한다. 의 검사, 의 의사, 의 변호사… 그리고 이젠 다. 그럴 만도 하다. 등 나영석 PD표 프로그램들은 나오는 족족 시청률의 폭죽을 터뜨리고 있다. 10년 아성을 만들어낸 진짜 조물주는 유느님이 아니라 김태호 PD라고 하는 이도 적지 않다. 케이블과 종합편성채널 예능이 뜨거워지면서, 스타 아나운서 이상으로 스타 PD의 방송사 이적이 화제가 되고 있다. 이미 상당수의 TV 프로듀서들은 한국 대중문화 최강의 브랜드를 만들고 있다.
드라마 는 바로 이 직업, 그중에서도 예능에 초점을 맞춘다. 대놓고 KBS 예능국을 무대로 하고 등 실존 프로그램의 제작진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드라마국이 아니라 예능국에서 만들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최근 예능 PD에 대한 세간의 뜨거운 관심도 작용했을 것이다. 한때 김종학·김석윤 등 드라마·시트콤 PD가 인기 직종으로 떠오르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예능 PD의 지명도가 훨씬 높다. 그들은 예전처럼 카메라 뒤에 숨어 있지 않는다. 불쑥불쑥 화면에 등장해 감초 역할을 한다. 나영석 PD가 출연자들과 줄다리기를 하며 깐죽대는 모습은 거의 고정된 장치다. 김태호 PD는 ‘미남이시네요’에서 박명수와 외모 투표 대결을 벌이기도 했다. 에서는 유호진 PD가 게임을 설명하고 조정하며 MC에 가까운 역할까지 맡고 있다.
이렇게 노출증에 빠진 예능 PD. 는 그들의 세계를 얼마나 더 깊숙이 들여다보게 해줄까? 그런데 현재까지는 톡 쏘는 새로움이 잘 보이지 않는다. 뭔가 익숙한 것들이 묘하게 겹쳐 보인다. 차태현과 공효진이 어쩌다보니 한 아파트에서 살게 된다는 설정은 전형적인 ‘선 동거 후 연애’ 코미디다. TV 제작 현장에서 PD, 작가, 출연자들이 툭탁거리는 모습은
KBS 예능국의 드라마 제작이 처음은 아니다. 과 여러 시트콤을 만들었고, 저비용 고효율로 짭짤한 성과를 거두어왔다. 비싼 작가, 배우, 장비에 욕심내지 않고, 톡 쏘는 대사와 순발력 있는 상황 전개로 재미를 만들어내왔던 것이다. 하지만 는 그 정도로 끝낼 만한 프로젝트는 아니다. 분명히 같은 예능국에 있다가 이적한 신원호 PD의 시리즈의 대성공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다수의 연예인을 카메오로 등장시키는 이색 캐스팅을 넘어선 무엇이 절실하다.
무엇보다 예능국의 직업 세계를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하지 않을까? 이미 여러 예능에서 PD만이 아니라 작가, 조명, 촬영 등 스태프들의 출연이 빈번히 이루어지며 사전 학습도 되어 있다. 그러니 드라마에서는 더 깊고 세세한 무엇이 보여야 한다. 행정반 직원 예지원이 막강 실세라는 설정, 가 잠깐 떠오를 뿐이다. “예능 PD가 잊지 말아야 할 게 뭔지 알아? 야근수당 신청은 5일 안에 해야 한다는 거야.” 이것도 약하다.
프로듀서가 힘을 받는 시대다. 일부이기는 하지만, 방송사의 숨은 직원이 아니라 자기 이름을 건 창작자로서 얼굴을 내밀게 되었다. 그럴 만도 하다. 그들은 이 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콘텐츠의 창작자다. TV 외에는 웃을 일이 없는 우리를 겨우겨우 살아가게 하는 일등공신이다. 그러나 또한 잘난 척하는 출연진들을 데리고 온갖 돌발적인 상황 속에서 좌충우돌해야 하는 극한 직업의 종사자다. 그들 스스로 ‘사’자를 붙인 드라마가, 그 아이러니를 잘 드러내주었으면 좋겠다.
이명석 대중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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