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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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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연애하는 연예 프로그램
등록 2015-05-07 21:27 수정 2020-05-03 04:28

포기하면 편해. 그런데 버릇돼. 요즘 세상, 연애는 사치 같지. 그래서 제쳐두면 결혼도 출산도 접어두게 돼. 아득바득 저축하는 것도, 번드르르한 집 구하는 것도 필요를 못 느껴. 그런데 말이야. 그래서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가면 다행인데, 이상하게 힘이 안 나. 이러다 꿈도 행복도 미래도 포기하게 될 것 같아. 이런 도미노를 막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첫 번째 블록부터 붙잡아야지. 연애 세포를 되살릴 소생의 마법이 필요해.

MBC every1 화면 갈무리

MBC every1 화면 갈무리

대중문화는 기본적으로 연애 조장 산업이다. 할리퀸 시리즈 소설이나 로맨스 영화만이 아니다. 초등학생들이 보는 만화에서도 삼각관계는 기본, 싸구려 괴물들이 우르르 나오는 B급 과학소설(SF)의 마무리도 남녀 주인공의 키스신이다. TV 역시 다르지 않다. 온갖 드라마는 당연히 러브가 풍년이고, <짝>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 <우리 결혼했어요> 같은 실제와 가상의 짝짓기도 열심이다. 최근 들어서도 <나홀로 연애 중> <신동엽과 총각파티>(사진) <천생연분 리턴즈> 같은 연애 테마의 프로그램이 앞다퉈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들이 뭔가 수상하다. 정말 연애를 하라는 건지, 꿈만 꾸고 말라는 건지.

<신동엽과 총각파티>는 남자들의 연애법이다. 요즘 불쑥불쑥 솟아나는 남성 토크쇼들이 그렇듯이, 솔직 혹은 노골적이 되었다. 김종민, 강인, 은혁 등이 출연해 가상의 연애 상황에서 대처법을 시연한다. 데이트가 끝나고 여자친구를 집에 들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차에서 자연스럽게 키스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여기에 달샤벳, EXID 같은 여성 게스트들이 나와 평가를 한다. 나름 실전의 연애에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의 TV판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남자의 로망이라면서 노골적인 게임 판타지를 체험하게도 한다. 미녀들에게 기습 뽀뽀를 당한다든지, 걸그룹의 일일 매니저가 된다든지.

<나홀로 연애 중>은 대놓고 1인용 가상현실 로맨스를 표방한다. 남자 혹은 여자 출연자 4명이 미리 녹화해둔 매력적인 이성과의 연애 시뮬레이션에 들어간다. 도서관에서 마음에 드는 이성을 만났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책을 뒤져 정보를 알아낸다. 몰래 뒤따라간다. 음료수와 메모를 갖다놓는다. 글로 전하자니 무척 유치한 설정인데, 신기하게도 1인칭 시점의 화면을 보면 참가자도 시청자도 쏙 빠져든다. “여기 나오기 너무 잘했어요.” 출연자들의 환호가 대단하다.

시뮬레이션과 게임으로 풀어가는 연애, 이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하나, 말 그대로의 ‘게임’. 썸만 타고 연애는 꺼리는 세대가 잠깐 몰입해서 대리만족한 뒤에 연애한 걸로 퉁친다. “오늘밤엔 미용실의 미녀 점원에게 기습 뽀뽀를 당하는 꿈을 꾸자.” 둘, 실전적인 가르침. 연애에 서툰 이들에게 디테일한 방법들을 전수한다. “남자친구와 몰래 연애하는데, 한 동아리의 다른 남자가 공개 고백했다고? 발끈해서 관계를 공개하면 안 돼.” 셋, 연애 세포 응급소생. 사랑에 빠질 때의 설레는 감정을 느끼게 해서 “정말 딴 건 몰라도 연애는 꼭 해야 돼”라고 마음먹게 한다. 넷, 물론 부작용도 있다. <나홀로 연애 중>에 나온 여성들이 소개팅에서 꽃미남 주인공이 아닌 평범한 남자들과 연결될 때 한목소리로 “넌 꺼져!”라고 질겁한다면, “역시 나 같은 건 안 돼”라고 절망할 수도 있다. 그러니 다시 포기할까? 포기하면 편하지. 하지만 포옹하면 훨씬 더 편하다.

이명석 대중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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