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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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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기 위해 너를 버린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재난 상황에서
적나라하게 재현하는 <유쾌한 왕따>
등록 2015-02-08 11:46 수정 2020-05-03 04:27

는 그리 유쾌하지 않은 웹툰이다.
고등학생 동현이는 왕따를 당한다. 같은 반인 성환이 무리로부터 모욕과 구타를 당한 동현이가 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리려는 뒷모습에서 웹툰은 시작한다. 또 다른 왕따인 진국이는 뛰어내릴지 모르는 동현이를 말리지 않는다. 진국이는 동현이가 동질감을 표할 때마다 자신은 너와 다르다는 구별짓기를 한다. 동현이네 반 아이들이 학교 지하실에서 청소를 하던 중 지하실이 무너진다.

왕따만 남겨두고 세상이 망한다면
레진코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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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에서 아이들이 무너진 시멘트 덩어리에 깔려 죽었다. 동현이와 진국이를 비롯한 몇 명만 살아남았다. 왕따를 주도한 성환이가 죽었고, 폭력을 즐기고 방조하던 아이들도 죽었다. 동현이가 숱하게 상상해온 순간이 어쩌면 현실이 되었다. 운 좋게 살아남은 아이들은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서 싸운다.

는 학교를 배경으로 하지만 학교 담장 안팎의 현실을 담는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처절한 시대가 재난 상황에서 적나라하게 재현된다. 그림도 이야기도 잔인하다. 진국이는 유일하게 자신에게 인간적 신뢰를 보냈던 아이를 죽인다. 탈출 작업을 주도하던 반장도 아이들에게 무참히 살해당한다. 내가 살기 위해서 너를 버려야 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이런 혼란을 틈타 진국이는 권력의 중심이 된다. 이기적인 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부분에 김숭늉 작가는 ‘국가의 탄생’이라는 소제목을 붙였다. 김 작가는 “하나의 목표가 아니라 공통의 죄책감으로 결속되는 집단의 속성을 그리고 싶었다”며 “교실이든 사무실이든 지금 사회에서 벌어지는 상황이 아닐까”라고 말했다.

한 명의 지배자가 사라지면 다른 지배자가 나타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끝까지 이기적인 공동체의 공모에 끼지 않는 사람은 왕따를 당하던 동현이와 수현이다. 동현이는 전학 온 수현이를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용기를 낸다. 그렇게 누군가를 지키는 경험을 통해 동현이는 친구를 얻는다. 수현이를 좋아하는 마음을 숨기는 진국이는 동현이에 대한 질투로 친구를 얻을 기회를 잃는다. 김 작가는 “모두가 이기적인 상황에서도 누군가를 지키겠다는 의지는 소중하다”며 “그런 공감 능력이 있는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고 말했다.

탈출 뒤 2부 ‘유쾌한 이웃’으로

에는 작가의 체험이 들어 있다. “고등학교 때 친하게 지낸 친구가 있었다. 나는 그냥 친한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졸업하고 만난 동창들이 ‘네가 그때 걔를 좀 괴롭혔잖아’라고 하더라. 사실 나는 누군가 괴롭힘을 당하면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알던 나와 달랐던 거다. 충격을 좀 받았다. 그런 반성에서 출발했다.” 현재 ‘레진코믹스’에 연재 중인 이 작품은 2부 ‘유쾌한 이웃’으로 넘어갔다. 지하실에서 탈출한 동현이와 수현이는 생존할 수 있을까. 교실과 아파트, 밀폐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적나라한 생존 투쟁은 계속된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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