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신이 타블로한테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았으니 이전 같은 사랑 노래를 못 쓸 거라고 말했다고 한다. 반대로 이제는 사랑에 대한 더 넓은 관점을 얻었다고 둘은 인정했다지만, 어쨌든 나이를 먹고 삶의 환경이 바뀌면 작업의 내용이 전과 같을 수는 없다. 고유의 스타일도 지켜야 하고 급변하는 트렌드도 살펴야 하며, 음악 외적으로 신경 써야 할 일도 늘었으니 의심은 많아지고 결정도 어렵다. 토이 유희열도 그래서 점점 앨범이 늦어지다가 7집이 나오는 데 7년이 걸렸다고 한다. 성향이 완전히 다른 후배 뮤지션 페퍼톤스 신재평을 프로듀서로 붙여 편곡의 상당 부분을 일임한 것도 그런 고민의 일환으로 느껴진다.
새로운 프로듀서, 래퍼들의 완전한 힙합프로그래밍에 익숙한 신재평은 기술적으로 능한 동료이기도 했지만 일종의 안식처였던 것 같다. 지난 2년간 작업실로 쓰는 신재평의 집을 새벽마다 드나들면서 수없이 만들었다 뒤엎고를 반복했다는데, 20대 후반 상당한 시간을 투자해 열정적으로 앨범에 매달렸다는 4·5집 시절과 비교해 그는 불안과 확신을 같이 나눌 만한 동반자가 필요했던 모양이다. 앨범 제목 (Da Capo)는 ‘다시 처음부터’를 뜻하는데, 초심을 작품의 핵심으로 설정해야 할 만큼 그의 환경과 역할이 변했다. 그는 여행자가 되었고 멘토가 되었으며 예능의 감초이자 모델로도 활약했다. 여전한 품위와 유머감각 덕분에 뭘 하든 반응은 좋았으되, 바빠질수록 그는 자신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물어야 했던 것 같다. 대답은 명쾌하다. “난 노래를 만드는 뭐 그런 일들을 해/ 게으르고 철이 안 들어.”( 중에서)
를 둘러싼 이야기는 앨범 구석구석에 깃들어 있다. 가사에 ‘코드’ ‘다운 스트로크’ 같은 용어를 동원하는 (Reset), 1980년대 장비의 물결로 촌스러운 듯 사랑스러운 사운드를 연출하는 (Goodbye Sun, Goodbye Moon)은 그의 전문성과 그의 시대를 노래한다. 사랑과 상처는 그의 오랜 화두인 만큼 을 통해 전형적으로, 또 실험적으로 서정을 노래하지만 그건 안부 인사에 가깝다. 의 목적은 신뢰할 만한 감수성의 배치가 아니다.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지금의 나는 누구인가’를 묻고 답하며 완성에 이른 작품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논란의 노래도 나왔다. 다이나믹 듀오부터 빈지노까지 핫한 래퍼들을 소환한 (Y&I)와 가 그렇다. 그간 토이 앨범에서 랩은 아주 가끔 있었지만 그건 유희열의 영역이었고 따라서 그게 힙합으로 갈 일은 없었는데, 문제의 두 곡은 애시드 재즈 계열로 작업했다지만 래퍼들의 역량 덕분에 완전 힙합으로 들린다. 그의 앨범에서 랩 비슷한 건 있었어도 “부산스러운 삶 다이나믹/ 내 상태는 침몰 전 타이타닉” 같은 라임을 들어본 적이 없었던 만큼 좀 놀랍긴 해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기존 뮤지션 인맥을 유지하고 확장하는 한편, 록과 일렉트로니카 등 새로운 장르를 염탐해온 것은 그의 일관된 여정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차이는 무려 토이 앨범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자기 얘기를 털어놓는 래퍼들의 능동적인 화법으로, 래퍼에게 부여된 자율권은 새로운 세대 혹은 세계와 통 크게 이룬 교감으로 해석할 수 있다.
나이 먹는 유희열, 그대로
사실 의외의 노래는 대표곡 이다. 일단 작품의 진행과 크게 연관이 없다. 젊은 날의 삼각관계를 소재로 한 서정적인 곡이지만 적당히 리듬을 실었는데, 그게 좀 애매하다. 과거 히트곡 처럼 눈물 나는 사연을 맑게 터뜨리는 것으로 이색 효과를 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통 발라드의 방식을 따르지도 않는다. 유연석이 대사도 없는 채로 열연한 뮤직비디오, 녹음을 위해 열흘간 담배를 참았다는 보컬 성시경의 후일담이 오히려 이 템포 어정쩡한 노래보다 매력적이다.
1994년 데뷔부터 지금까지 유희열의 프로젝트 토이는 앨범을 내는 게 민폐라고 스스로 농담할 정도로 많은 동료 가수들과 작품을 만들어왔다. 김형중과 김연우처럼 이제는 빠진 것이 허전한 벗도 있고, 신재평처럼 참여 지분을 확대한 경우도 있다. 래퍼들을 부른 게 워낙 파격적이라 김예림·이수현·권진아 같은 오디션 스타가 앨범에 등장한 건 이례적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그들 덕에 앨범이 풍성해지기도 하고 유희열은 노래 못한다고 팬들은 지금까지도 웃으며 그를 놀릴 수 있다. 그런 과정에서 출중하고 적합한 보컬 덕에 감동의 노래가 터지는가 하면 긍정이 됐든 부정이 됐든 예상을 뒤엎는 노래가 나오기도 한다.
강점이 다르고 느낌이 다른 가수들을 불러들이면서도 유희열의 노래는 일관성을 갖는다. 싱글로 충분한 가치를 갖는 노래를 모아 흐름을 음미할 수 있는 앨범을 만든다. 그런 앨범을 듣다가 문득 우리는 잠을 설칠 만큼 설레었거나 아팠던 시절을 떠올린다. 그런데 지금은 토이의 가장 자전적인 앨범을 통해 바쁜 그가 나이 먹는 모습을 본다. 다행히도 그의 변화는 여전히 믿음직한 낭만으로 느껴진다. 아무리 변해도 그는 젊은 친구들처럼 놀고 싶어 하고 그 와중에 작곡과 출신의 품격을 잃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를 치열하게 묻고 결국 소탈하고 솔직하게 대답한다. “난 노래를 만드는 뭐 그런 일들을 해/ 게으르고 철이 안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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