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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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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 완전체” 김연경, 정상을 향한 독주

세계에서 배구를 가장 잘하는 여자선수… 스피드와 유연성,

승리욕 갖추고 신계에서 노니는 그의 완벽한 경기
등록 2014-10-08 15:24 수정 2020-05-03 04:27
시위대가 홍콩 정부청사 울타리 창살에 노란 리본과 꽃을 가득 매달아놓았다.

시위대가 홍콩 정부청사 울타리 창살에 노란 리본과 꽃을 가득 매달아놓았다.

오르지 못할 클래스에 오르려면 천운이 따라야 한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한국엔 몇 가지 기적이 있었다. 피겨스케이팅 같은 불모의 종목에서 갑자기 김연아 같은 선수가 나왔으며, 아시아 선수는 어렵다던 수영 자유형에서 마린보이 박태환이 등장했다. 그리고 김연경, 그녀는 지금 세계에서 배구를 가장 잘하는 여자선수다. 혹시 ‘국뽕’을 의심한다면, 기록을 보자. 배구 강국이 모두 출전하는 2014 월드 그랑프리에서 김연경은 득점상·공격상·서브상을 휩쓸었다. 지속성을 의심한다면? 그녀는 참가하는 그랑프리 대회마다 득점왕을 했다.

한국이 ‘몰빵’ 배구를 한다고? 그렇다면 2012 유럽배구연맹(CEV) 챔피언스리그 최우수선수에 최다득점상은 어떤가? 유튜브에는 당시 준결승·결승의 동영상 요약본이 있는데 제목이 ‘Kim vs Kazan’ ‘Kim vs Canne’. 김연경이 준결승 상대인 러시아 카잔, 결승 상대인 프랑스 칸 팀을 상대로 벌인 원맨쇼를 모은 영상이다. 유로스포츠 해설자는 “킴킴킴!” “원더풀” “슈퍼스타”를 외친 끝에 “최우수선수는 반드시 ‘킴’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당시 카잔에는 배구여제 가모바가 있었고, 김연경 팀에는 미국과 러시아 배구의 전설 로건과 소콜로바가 있었다.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 일본과의 준결승을 아프리카TV로 보면서 채팅을 하던 누군가 썼다. ‘김연경과 김연아는 의자매다.’ 그들이 인간계를 넘어 신계에서 논다는 것이다. 이들은 ‘사기 캐릭터’로 불린다.

천운은 무언가. 다시, 2014 그랑프리 기록지를 보자. 공격 부문 3관왕은 물론 리시브 부문 3위에 그의 이름이 있다. 이것이 김연경 선수의 가치를 설명한다. 여자배구는 리시브 싸움인데 그는 리시브를 누구보다 안정되게 받는다. 불안한 수비를 공격과 연결해주는 2단 연결도 뛰어나다. 그래서 배구선수 문성민은 김연경을 “배구 완전체”라고 말했다. 이런 클래스가 나오려면, 노력 이상의 합이 있어야 한다. ‘다행히’ 그는 어려서 키가 작았다. 중학교 때까지 165cm가 되지 않았던 작은 선수는 세터·수비수로 뛰었다. 고등학교 시절, 기적처럼 성장했다. 이렇게 다져진 기본기에 신장이 더해져 192cm의 공격수가 탄생했다. 어려서부터 공격만 했다면 가지지 못했을 능력이 더해진 것이다.

어렸을 적 작았던 키마저 행운

한국에서나 그렇지, 일본에서 되겠어? 의심하지 않는 자는 드물었다. 김연경 선수가 한국 프로배구를 평정하고 2009년 일본으로 진출할 당시, 과연 그가 ‘용병’으로 성공할지는 물음표였다. 그러나 그는 2009~2010 시즌 JT 마블러스에서 리그 득점상을 받았고, 2010~2011 시즌에는 하위권이던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세계 정상급 외국인 선수들이 경쟁하는 일본에서 다시 한번 점프를 한 것이다. 그리고 2012년 터키 페네르바체로 이적했다. 이름만 들어도 주눅 드는 선수가 득실거리는 리그에서 과연 김연경이 주전이나 확보할 수 있을까, 역시나 회의가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적한 해에 팀을 유럽 챔피언으로 이끌고 자신은 최우수선수가 되었다. 최고의 해였던 2012년, 런던올림픽 여자배구에서 최우수선수는 우승팀에서 나오지 않았다. 최우수선수상은 4위를 한 한국팀 김연경이 받았다.

지금 김연경보다 타점이 높은 선수가 있다. 그보다 강한 공격을 때리는 선수도 있다. 그러나 김연경이 세계 최고의 득점 선수인 이유는 스피드와 유연성을 겸비했기 때문이다. 세터가 중앙으로 낮고 빠르게 올려주면 재빨리 원투 스텝을 밟고 솟구쳐올라 때리는 후위 공격을 ‘파이프 백어택’이라고 한다. 높이만큼 스피드가 중요한 현대 배구를 상징하는 기술이다. 김연경의 파이프 백어택은 예술이다. 남녀를 통틀어 더 잘하는 선수를 꼽기 어려울 정도다. 직선을 보면서 대각선으로 때리는 공격은 알고도 속는다. 시야가 넓고 완급 조절도 능란해 강공보다 무서운 연타를 넣는다.

그리고 김연경은 식빵을 가끔 굽는다. 선수들이 흥분해 “×발”이라고 하면, 이것을 팬들은 “식빵 굽는다”고 표현한다. 페네르바체의 라이벌팀 제오바 주데티 바키프방크 감독은 “김연경만큼 이기고 싶어 하는 선수를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만큼 승부욕이 넘친단 것이다. 그는 스타들의 스타다. 중국의 떠오르는 에이스 주팅은 인스타그램 등에 김연경 이야기를 너무 자주 올려서 ‘김연경 덕후’라고 불린다.

‘식빵 잘 굽는’ 연경이의 입을 보라

안산이었으면 더욱 멋진 피날레였을 것이다. 인천아시아경기대회 배구는 인천과 안산에서 열렸다. 한국은 일본을 상대로 준결승 경기를 안산에서 벌였다. 지난 10월2일 결승전, 한국은 올해 아시아배구연맹(AVC) 컵에서 2연패한 중국을 만났다. 김연경은 반드시 이기고 싶었다. 2010 광저우아시아경기대회 결승에서 중국에 2세트를 먼저 따고 역전을 당했던 기억이 있다. 세월호 참사로 깊은 슬픔에 잠긴 안산은 그녀가 사춘기를 보낸 도시다. 원곡중을 졸업한 안산의 소녀는 ‘되겠어’ 하는 회의를 넘어 세계 최고가 되었다. 1988년생 김연경, 1989년생 박태환, 1990년생 김연아. 한국 스포츠의 기적 같은 시절이 이렇게 흘러가고 있다. 2016년 리우가 어쩌면 마지막 축제가 될지도 모른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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