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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흙과 바다에 묻혀, 야영하고 연주하며

치매에 걸린 큰형과 함께 떠난 형제들의 음악여행 <하늘의 황금마차> 두 달간의 제작참여기
등록 2014-09-20 14:10 수정 2020-05-03 04:27

오멸 감독의 는 치매에 걸린 큰형의 제안으로 4형제가 함께 여행을 떠나는 로드무비다. 그 여행에 서울에서 온 젊은 뮤지션들이 함께해 음악을 연주하며 흥을 더한다. 그 뮤지션은 스카밴드 킹스턴 루디스카다. 킹스턴 루디스카는 두 달 동안 면도도 빨래도 못한 채 제주 흙과 바다에 묻혀 야영하며 지냈다. 킹스턴 루디스카의 오정석씨가 두 달간의 제작참여기를 보내왔다. _편집자


지난해 여름 권미희 프로듀서에게 연락이 왔다. 오멸 감독과 함께 영화 작업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이었다. 감독님의 영화 을 떠올리며 무거운 주제의 예술영화를 예상했다. 그러다 감독님의 이전 영화인 과 을 보고 나니 재밌는 작품이 나올 것 같은 묘한 기대감이 생겼다.

해 지면 자고 새소리에 눈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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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턴 루디스카 멤버 오정석씨는 영화 〈하늘의 황금마차〉를 촬영하며 흰 ‘난닝구’와 하늘색 반바지만 입은 채 제주 자연에 묻혀 두 달간 지냈다. 무덤 옆에서 〈바다의 꿈〉을 연주하고 있는 오정석씨의 모습. 영화사 진진 제공

킹스턴 루디스카 멤버 오정석씨는 영화 〈하늘의 황금마차〉를 촬영하며 흰 ‘난닝구’와 하늘색 반바지만 입은 채 제주 자연에 묻혀 두 달간 지냈다. 무덤 옆에서 〈바다의 꿈〉을 연주하고 있는 오정석씨의 모습. 영화사 진진 제공

미팅에서 만난 감독님은 그냥 연기가 아닌, 현지인 생활을 권하셨다. 여름 공연을 모두 접고 두 달여간 제주에서 캠핑 생활을 하며 촬영한다는 것.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런데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멤버들 대부분 ‘무조건 해야 한다’는 신념에 가까운 생각을 했다. 그동안 단역으로 출연하거나 사운드트랙을 연주한 적은 있지만, 주요 배역을 맡는 배우로서의 역할은 생전 처음 겪는 엄청난 일이었다. 얼떨떨한 우리에게 용기를 준 건, 자연스러운 촬영 방식이었다. 감독님은 대사가 빼곡한 대본 대신, 대략의 내용이 담긴 시놉시스 한 장만 주셨다. 그 덕에 대사를 외워야 하는 걱정, 어떻게 연기하고 어떤 캐릭터를 구축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아도 됐다. 그게 부담을 덜어줬다. 촬영 기간 내내 대본은 없었고, 감독님이 상황을 주시고, 거기에 배우들이 각자의 톤으로 대사를 하는 식이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흐름을 타면서 이보다 더 자연스러운 진행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촬영은 예고한 대로 영화 스태프와 출연진 등 40여 명이 두 달 동안 텐트를 치고 밥을 해먹는 야영으로 진행됐다. 제주의 비바람에 텐트는 때때로 날아갈 것만 같았고,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산속에서 배터리를 충전하지 못해 휴대전화가 꺼졌을 땐 그야말로 멘붕이었다. 하지만 점차 해 지면 자고 해 뜨면 새소리에 눈뜨는 자연인의 생활에 익숙해졌다.

감독님은 한두 번 만남만으로 멤버들의 캐릭터를 완전히 파악하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셨다. 영화 속 우리는 실제 캐릭터와 유사하다. 없는 캐릭터가 없다. 소심하지만 자기 고집이 있는 A, 주목받기를 좋아하는 B, 보기보다 허당인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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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님은 우리의 무의식 속에 녹아 있는 ‘본능’을 꺼내는 능력도 보여주셨다. 영화에서 줄곧 입고 있는 흰 ‘난닝구’와 하늘색 반바지, ‘단복’은 초반에는 없던 설정이다. 영화 촬영 초반에 킹스턴 루디스카 멤버들은 모두 서울에서 싸들고 간, 영화 촬영을 위해 새로 산 한껏 ‘뽐내는’ 옷들을 입고 있었다. 그러나 감독님은 우리의 새 옷과 하얀 얼굴이 영화 속 제주 4형제와 제주의 비·바람·돌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기신 것 같았다. 그러더니 어디선가 하얀 난닝구와 조금 긴 트렁크팬티 같은 반바지를 구해와 던져주셨다. “이것만 입어라.” 처음 그 옷들을 보고 절망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2주쯤 지나니 그 옷들이 너무 편해졌다. 빨래·면도 금지령도 떨어졌다. 이런 생활을 한 지 2주 정도 지나자 우리는 현지인보다 더한 포스를 내기 시작했다. 옷이 누레지든 김칫국물이 튀든, 안 빨고 입으니 편하기도 했다. 날이 갈수록 햇빛에 거무스름하게 타는 얼굴과 덥수룩한 수염으로 제주 4형제와 구분하기 힘들어지자 감독님은 흐뭇해하셨다.

그리고 음악. 우리에겐 연기도 중요했지만 음악이 물론 중요했다. 감독님은 촬영에 들어가기 전 등 1930~40년대 만요(漫謠) 리스트를 뽑아주셨다. 우리는 그중에서 영화에 맞는 느낌의 곡들을 골랐다. 연주 장면도 대부분 즉흥적으로 진행됐다. 숲 속에서 를 연주하는 장면은 실제 한 번도 연주해보지 않았던 편곡으로 촬영 직전에 나와서 허둥지둥 연주했는데 그것이 그대로 영화에 사용됐다. 음악인으로서 사운드가 잘 나와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긴 하지만, 영화 속 연주 장면은 실제 연습 장면인 만큼 틀리는 모습도 자연스럽다. 감독님에겐 모든 장면에서 제주 현장음이 담겨야 한다는 원칙이 있었다. 그 때문에 영화음악 역시 때깔 좋은 매끈한 사운드는 아니다. 하지만 수수함이 담긴 진정성 있는 사운드다.

죽은 자와 산 자가 함께 부르는 장송곡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무덤 옆에서 을 다 같이 연주했던 것이다. 묘지에서 이렇게 시끄럽게 연주하며 놀아도 될지 걱정하는 멤버들도 있었다. 그때 감독님이 옛 제주에선 집 뒷마당에 무덤을 두고 사람들이 어울려 살았다고 말씀하셨다. 돌아가신 분을 위로하고 치유한다는 마음으로 연주하면 된다고 하셨고, 그 말씀에 정말 돌아가신 분들을 위로하는 마음으로 연주했다. 큰형이 죽은 뒤 다 함께 연주하는 역시 죽은 자와 산 자가 함께 부르는 장송곡이다. 그런데 흥겹게 고인을 보내는 ‘기쁜 장송곡’이다. 는 결국 삶과 죽음이 인생에서 공존함을 말해준다. 영화를 찍는 내내, 감독님을 비롯한 누구도 그 거창한 주제의식을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연주하며 야영하며 죽음이 결코 슬프지만은 않다는 것, 동전의 양면처럼 삶의 뒷면 혹은 앞면은 곧 죽음임을 느끼게 됐다. 그리고 두 달간 함께 제주 전 지역을 다니며 영화 스태프들이 형·동생·친구로 변모하는 놀랍고도 행복한 경험을 했다.

오정석 킹스턴 루디스카 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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