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대학에 가야 하는지 영문도 모른 채 신자유주의를 찬양하는 교과서와 싸우며 10대를 보낸 나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위해 토익을 공부하는 동기들과 싸우며 20대를 보냈다. 그러던 중 나에게 이뤄내고 싶은 꿈이 생겼고, 그 꿈은 내 삶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서동진 교수가 말한 ‘자기계발하는 주체’의 특징을 고스란히 내면화하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학습하면서 스펙을 쌓고 경력을 관리하는 데 온 기운을 쏟았다.
그 과정에서 나는 자기계발서, 그중에서도 ‘성공 신화’에 빠져들었다. ‘간절히 바라면 이뤄진다’ 따위의 긍정 주문을 외치던 자기계발서는 애초에 집어던졌지만, 이상하게도, 특히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성공한 여성들의 신화에 몰입했다. “일과가 끝나면 너무 피곤해서 쓰러져 잠들어야 살아 있는 것 같았다”는 그녀들의 이야기에 부끄럽게도 열광했다.
하지만 자기계발서 성공 신화가 내게 남긴 것은 완벽주의에 대한 강박뿐이었다. 누구나 자기만의 강점을 지니고 있기 마련인데 성공 신화는 나로 하여금 ‘가지지 못한 것’에만 집중하게 했다. 또 성공과 행복의 기준은 저마다 다른 것인데, 그녀들의 성공 방식만을 강요했다.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너 자신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주문과 함께. 모든 실패를 사회구조가 아닌 ‘개인’ 탓으로만 내모는 자기계발서를 더 읽을 수는 없었다. 책을 덮으면서 그렇게 신화는 깨졌고, 삶은 달라졌다.
이제 나는 더 많은 임금과 혜택, 복지를 누릴 수 있는 전일제 근무 대신 스스로 선택해 수요일마다 쉬는 4일 근무를 하고 있다. 저녁 식사는 직접 지은 따뜻한 밥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나눠 먹고, 주말에는 어떤 성과를 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공부를 한다. 무엇보다 책장 한편에 늘 꽂혀 있던 자기계발서는 이제 없다. 기존 자기계발 논리를 반대하며 느리게, 더 느리게 살 것을 권장하는 책 역시 없다. 그저 그 공간은 무언가를 해내도 설령 해내지 못해도 ‘이미 나는 충분하다’는 자존감과, 비로소 타인을 살필 수 있는 여유로 채워지고 있다.
채혜원 전문직 공무원,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그들의 절교 선언, 다른 선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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