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소설 는 원고지로 700장이 조금 넘는 짧은 장편이지만 읽어내기가 결코 녹록하지는 않다. 까닭은 크게 두 가지. 작가 특유의 시적이고 압축적인 문장이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데다 1980년 5월 광주라는 소재의 무게가 감당하기 힘든 압박감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안간힘을 다해 읽기를 마친다고 그것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이 고통스런 이야기는 일상의 빈틈을 수시로 파고들며, 밤이면 악몽으로 몸을 바꾸어 독자를 찾아온다.
밤이면 악몽으로 찾아올 이야기이야기의 한복판에는 열여섯 살 소년 ‘동호’의 죽음이 있다. 5·18 당시 중학교 3학년이던 이 아이는 마지막까지 도청에 남았다가 진압군의 총에 스러졌다. 에필로그를 포함해 일곱 장으로 이루어진 소설은 1장에서 동호를 2인칭 ‘너’로 지칭하는 것을 비롯해 장별로 시점과 화자를 달리해가며 소년의 죽음과 그것이 남긴 파장을 다각도로 조망한다.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네가 방수 모포에 싸여 청소차에 실려간 뒤에,/ 용서할 수 없는 물줄기가 번쩍이며 분수대에서 뿜어져나온 뒤에./ 어디서나 사원의 불빛이 타고 있었다./ 봄에 피는 꽃들 속에, 눈송이들 속에. 날마다 찾아오는 저녁들 속에. 다 쓴 음료수 병에 네가 꽂은 양초 불꽃들이.”
5·18 당시 여고 3학년으로 동호와 함께 주검 수습하는 일을 했던 은숙은 가까스로 들어간 대학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만둔 뒤 출판사 편집자로 일한다. 인용한 부분은 그가 편집했으나 검열에 걸려 책으로 출간되지는 못한, ‘광주’를 빗댄 희곡의 무대 공연을 보면서 그가 동호의 죽음을 떠올리는 대목이다. 역시 은숙이 편집했으나 검열에 걸려 빛을 보지 못한 문장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소설 중간쯤에 등장하는 이 질문이야말로 의 핵심을 담고 있다. 이 소설의 의미는 34년 전 광주에서 벌어진 참극을 증언하고 고발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우리가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를 정면으로 묻는다는 데 있다. 2009년 1월 서울 용산에서 벌어진 참극은 그 질문이 여전히 유효함을 새삼 상기시켰다. 용산은 바로 광주였던 것.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아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
성격은 조금 다를지 몰라도 세월호의 침몰 역시 마찬가지로 고통스럽고 절박한 질문 앞에 우리를 세워놓는다. 그리고 추궁한다. 우리는 짐승인 것이냐고.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냐고. 그 고통스러운 질문을, 일상의 균열과 한밤의 악몽을 피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지 않아도 좋으리라. 그러나 그렇게 되면 악몽은 언젠가 잔인한 현실이 되어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5·18과 용산과 세월호가 그것을 입증해주었다.
이제 꽃이 핀 쪽으로“이제 당신이 나를 이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소설 말미에 나오는 이 문장은 작가 자신이 동호의 넋을 향해 건네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또한 동호가 작가에게 하는 말로, 더 나아가 5·18의 넋들이 우리 모두에게 호소하는 말로 새겨들을 법하다.
최재봉 문화부 기자 bong@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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