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골드만삭스는 세계 금융의 중심, 월스트리트를 상징하는 회사다. 입사만으로 고액 연봉이 보장되는 회사이니만큼, 전세계에서 난다 긴다 하는 천재들이 모여드는 건 당연한 일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영재로서 국가 장학금을 받아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골드만삭스에 입사해 출세 코스를 밟아가던 그레그 스미스도 그런 경우였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이 얼마나 똑똑한지, 그리고 이 회사에 얼마나 똑똑한 사람이 많은지 수도 없이 강조한다. 어찌 보면 이 책은 ‘최고 금융회사에서 살아남기’에 관한 처세술로 읽힐 수 있을 정도로 묘사가 생생하다.
위기를 만회하려면 ‘코끼리 사냥’을“나는 라스베이거스의 뜨거운 물이 담긴 욕조에 앉아 있었다. 세 명의 골드만삭스 부사장과 한 명의 매니징 디렉터, 기업공개 전 파트너, 그리고 윗옷을 걸치지 않은 여성과 함께 말이다.”
2006년 4월까지만 해도 그는 자본주의가 피워낸 꽃밭에 앉아 꿀을 빨아먹는 운 좋은 나비였다. 토플리스 욕조 파티 초대는 상사가 그를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뜻했다. 이쯤에서 짐작하겠지만, 그는 고액 연봉과 명품 양복, 그리고 자본주의가 뿌려대는 달콤한 욕망에 환장하는 속물이었다. 그런데 이런 속물이 2007년 금융위기 이후 회사를 때려치웠다. 애널리스트와 파생상품 사업 책임자로 일하며 부사장 자리까지 올랐던 그는 왜 갑자기 이 좋은 회사를 그만뒀을까.
그것은 다름 아닌 ‘거짓’ 때문이었다. 골드만삭스를 누구보다 사랑했던 그는 이 굴지의 금융회사가 고객을 상대로 사기 치는 행위를 눈뜨고 보기 어려웠다고 고백한다.
골드만삭스 경영진은 위기를 만회하기 위해 ‘코끼리 사냥’을 나가자고 독려했다. 코끼리는 ‘단 한 번의 거래로 회사에 100만달러 이상의 수익을 가져다주는 눈먼 고객’을 말한다. 고객의 공포심과 탐욕을 이용해 복잡하게 ‘구조화한 파생상품’을 파는 것이다. 이런 대형 퀀트 펀드들을 관리하고 판매하는 일을 했던 스미스는 이렇게 묘사한다. “구조화 파생상품을 사는 것은 가게에 들어가서 참치캔을 사는 것과 비슷한 점이 있다. (…) 만약 어느 날 캔을 사서 집에 갔는데 캔 안에 개밥이 들어 있다고 생각해보자. (…) 캔 뒷면에는 글자가 너무 작아서 거의 읽을 수 없을 정도의 문구가 쓰여 있다. ‘내용물은 참치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개밥이 담겨 있을 수도 있습니다.’”
사소한 주문 실수를 일으키던 문제아는알다시피, 골드만삭스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최종적으로 5억5천만달러의 벌금을 물기로 합의했다. ‘서브프라임 주택모기지담보부증권’이라는 합성 부채담보부증권(CDO) 상품을 팔면서 (골드만삭스가 자문한) 주요 헤지펀드들이 고객이 투자한 방향과 반대로 투자했다는 사실을 고객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혐의였다.
문제는 이런 악마적 거래를 잘 성사시키는 직원이 천문학적인 돈을 회사에 벌어줬고, 그 대가로 어마어마한 성과급을 챙겨갔다는 사실이다. 사소한 주문 실수를 자주 저지르기로 악명 높던 한 문제아는 어느새 공포 마케팅의 귀재가 되어, 낮 12시에 출근해도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거물이 됐다.
지은이는 이렇게 말한다. “고객에 대한 터무니없는 착취, 양심 없는 뻔뻔함…. 나는 그런 것들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금융회사는 돈을 ‘버는’ 곳이지 ‘뺏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재성 문화부 책지성팀장 san@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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