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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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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그 설운 삶을 더듬다

살던 대로 살고자 하는 절박하고 소박한 소망에 대하여…

송전탑 반대 투쟁에 나선 할매들의 목소리를 담은 <밀양을 살다> 
등록 2014-04-30 15:23 수정 2020-05-03 04:27

우리는 아무도 타인을 모른다. 그이들의 고통은 더 모른다. 내 손톱 밑 작은 가시는 생채기 크기 이상의 고통으로 욱신거리지만 타인의 것은 그렇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타인을 이해한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과 공감하기 위해 전 생애를 유영하는지 모른다. 타인과 더불어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이지만 절대 알 길 없는 타인의 세계는 자체로 부조리하기에 우리는 죽도록 노력해야 염치 있게 살 수 있다.

할매의 슬픔, 이제야 겨우

책 〈밀양을 살다〉를 말한 ‘할매들’. 김말해, 손희경, 이사라(왼쪽부터).정택용 사진가 제공

책 〈밀양을 살다〉를 말한 ‘할매들’. 김말해, 손희경, 이사라(왼쪽부터).정택용 사진가 제공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들려오는 소식으로 보낸 일주일 동안 교복 입은 딸은 수학여행길에 올랐던 어린 탑승객들과 겹쳐 보였다. 누군가 툭 치면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타인의 고통 때문에 울기도 했지만 엄밀하게는 내 고통으로 괴로웠다. 나같이 무능한 부모가 재난에서 아이를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하는 고통이었다. 지난 토요일, 진도 사건으로 긴장감이 조금 느슨해진 경남 밀양시 상동면 고정리의 115번 공사 현장 움막에서 할매들을 만났다. 책 (오월의봄 펴냄)가 놓여 있어, 같이 간 활동가가 읽어드렸다. 중간중간 눈물을 훔치며 듣던 할매 한 분이 나지막이 이렇게 말했다. “아이고… 인생이 분하고 분하다.” 그때 갑자기 심장이 찌르르 아팠다. 허리가 90도로 꺾인 할매 하나가 험한 산을 오르며 느꼈던 슬픔과 한스러움, 두려움이 몸을 관통해 지나갔다. 그토록 밀양을 다녔는데, 그제야, 겨우.

몇 달 전, 동료가 물었다. “할매들이 그렇게 지키려는 이유를 솔직히 모르겠어.”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알 수 없다는 말이다.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고 할매들한테 땅이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니, 그들이 목숨 바쳐 지키려는 것과 이유를 존중할 수밖에 없다고 대답했다. 김말해 할매를 여러 차례 만났지만 그이의 인생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몰랐다. “다만 초등학교 1년만 댕겼어도 글만 알면 내 속에서 천불 나는 이야기를 일기로 써서 남기라도 할 낀데. 그럼 여기 방 안 한가득 채웠을 낀데… 요새 아이들이 보면 ‘옛날에 이런 할매도 있었구나’ 안 카겠나. 그게 그리 섧다”는 굽이굽이 삶을 알 턱이 없었다. 사람들한테 봉사하고 싶어서 여군이 되려던 전남 여수마을 부녀회장 김영자씨 꿈도 몰랐다.

덕촌댁 삶을 쓴 기록자는 할매들을 처음 만난 인권상 수상식에서 “그녀들을 재현하는 수많은 수사가 넘쳐났지만, 바싹 마르고 구부러진 삭정이 같은 모습의 ‘늙은 여자들’은 이렇다 할 수상 소감을 말하는 대신 객석을 향해 조용히 깊은 절을 올렸다. 담담한 모습이었고 묵직한 결기가 전해져왔다”고 후기에 썼다. 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삭정이 같은 ‘늙은 여자들’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기록했다.

지도 어디에 없는, 밀양을 산다는 것

8년 동안 이들은 한국전력과 싸우고, 정부와 싸워야 했다. 자재 실은 헬기에 몸을 묶고, 전기톱 앞에서 나무 밑동을 부둥켜안았으며, 한전 직원들의 조롱과 모욕을 견뎠다. 알몸으로 흙을 움켜쥐었다. 자기 목에 쇠사슬도 걸고 나일론 노끈도 묶었다. 지난해 10월부터 시작된 국가의 근엄을 확인하는 전쟁에서는 하루 열 번 넘게 ‘몬땐 경찰 가시나들’한테 사지가 들려 바닥에 팽개쳐졌다. 그런 수모와 굴욕 앞에서도 할매들과 주민들이 싸움을 지속하는 사정을 깊이 알 수 없다. 우리는 타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 를 보다보면, 어느 순간 “세상일에 관심 끊고 무심히 살 수 없습디다” 하는 구미현씨, “엄청 재밌게 사는데 송전탑이 들어온다는 거야”라는 83살 사라씨의 삶 속에 발을 담그게 된다. “하루에도 열두 번 희망이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그리고 “이 골짜기에서 커갖고 이 골짜기서 늙었는데 6·25 전쟁 봤지, 오만 전쟁 다 봐도 이렇지는 안 했다. 이건 전쟁이다”라는 주민들이 겪고 있는 무간지옥의 고통을 더듬어볼 수 있다.

서문에서 언급한 대로 밀양은 대한민국의 한 시대를 가리키는 또 다른 고유명사가 되었다. 밀양을 산다는 것은, 지도상 좌표 어디에 사는 것이 아니다. 밀양은 개발과 인권이 부딪치는 곳이고, 에너지와 미래가 충돌하는 곳이다. 그리하여 밀양은 타인의 고통 위에 편리를 누리겠다는 발상이 정의로운지 되물어본다. 는 살던 대로 살고자 하는 소망의 미세한 혈관과 숨구멍을 낱낱이 보여준다. 그리고 “노인들의 남은 생을 짓밟으며 얻으려는 이익이 얼마나 중요한지” 짚는다.

“욕쟁이 할매가 되뿌따, 무섭다”

밀양을 벗어나, 대구쯤이었을까…. 눈부신 도시가 밀양의 어둠을 비웃기라도 하는 양 번쩍이고 있었다. 빛이 뻔뻔스러워 급히 눈을 감았다. 얇은 눈꺼풀이 막지 못한 민망한 빛은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았다. “잠 안아와 누 있으면… 내가 우짜다 이리 됐노… 참 무섭다… 욕쟁이 할매가 되뿌따. 무섭다…” 하던 할매의 목소리가 들렸다. ‘늙은 여자’의 한스러운 삶을 마른 침과 함께 꿀꺽 삼켰다. 너무 짰다. 눈물 때문이었다.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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