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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의 빨간책방> <신형철의 문학이야기> <라디오 책다방> 등
책 수다 책 팟캐스트에 교보문고 <낭만서점> 추가요
등록 2014-03-01 14:47 수정 2020-05-03 04:27
책 팟캐스트는 좋아하는 책을 다시 읽듯, 다시 ‘듣고 싶은 책’을 언제든 꺼내 반복 청취할 수 있다. 서점, 출판사, 개인 등 다양한 뿌리를 둔 책 팟캐스트들이 취향에 따라 세분화해 애서가를 매혹한다.윤운식

책 팟캐스트는 좋아하는 책을 다시 읽듯, 다시 ‘듣고 싶은 책’을 언제든 꺼내 반복 청취할 수 있다. 서점, 출판사, 개인 등 다양한 뿌리를 둔 책 팟캐스트들이 취향에 따라 세분화해 애서가를 매혹한다.윤운식

책 수다는 끝나지 않았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라 하고 서평의 힘은 쇠약해지고 있지만, 책 이야기에 여전히 귀가 솔깃한 사람들이 있다. 책에 관한 팟캐스트가 넘쳐나는 가운데 또 하나의 팟캐스트가 서가에 꽂혔다. 2월11일 첫 방송과 18일 두 번째 방송을 한 은 온·오프라인 서점 교보문고에서 개설한 팟캐스트다. 소설가 정이현과 문학평론가 허희가 진행한다. 2012년 5월 위즈덤하우스에서 개설한 을 시작으로 기존 팟캐스트 시장은 창비, 문학동네, 휴머니스트 등 출판사를 중심으로 꾸려졌다. 여기에 출판편집자, 애서가 등 개인이 만든 팟캐스트들이 가세하면서 가지를 뻗어간 팟캐스트를 꼽아보면 20개가 넘는다.

<font size="4"><font color="#C21A8D">취향대로 관심사대로 도란도란</font></font>

오래된 동네 서점에 가면 어디에 무슨 책이 꽂혀 있는지, 누가 낸 책이 얼마나 좋은지 혹은 전작에 비해 형편없는지 책의 안과 밖을 시시콜콜 아는 서점 주인이 있었다. 강호의 비평가 같았던 그 주인장들은 동네 서점이 사라지면서 더 깊은 강호로 깃들이고 말았다. 책을 말하는 팟캐스트들이 어쩌면 사라진 이들의 역할을 대신할지도 모른다. 작은 서점들이 사회학·역사서·문학·잡지 전문 서점 등으로 세분화했듯, 다양해지는 책 팟캐스트들도 각자 자기 색깔을 띠며 취향과 기호를 드러내 청취자들의 선택 폭이 넓어지고 있다.

팟캐스트 을 진행하는 문학평론가 허희는 “낭만과 서점이라는, 이 시대의 가장 힘없는 두 단어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예의 책방 주인과 단골처럼 도란도란 책 수다를 떠는 작은 공간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같은 방송을 진행하는 소설가 정이현은 2월19일 과의 전화 통화에서 “나의 취향이라고 하면, 작고 좋은 책들”이라며 방송의 색깔을 드러냈다. 그래서 녹음을 마친 다음 회에는 소설 을 소개할 예정이다. “다음 주제가 모방인데, 이 테마에 잘 어울리는 소설이다. 자기 모방을 하는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프랑스에서 진짜 있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실화소설이다. 신분을 위장해 평생을 살다 온 가족을 살해하고 자기만 살아남게 된 인물이 등장한다. 좋은 소설인데, 그렇게 많이 팔리지는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은 화제의 책, 베스트셀러보다는 작고 반짝이는 책들에 주목한다. 요리책, 인문서, 이주노동자의 수기 같은, 어려워진 도서시장에서 주목받을 시간이 적었던 책들이 꾸준히 소개될 예정이다.

책에 관한 팟캐스트 중 현재 가장 많은 다운로드 수를 기록하는 은 이 동네 터줏대감 격이다. 영화평론가 이동진과 고정 게스트인 소설가 김중혁이 책에 관한 내밀한 수다를 나눈다. 이 두 진행자의 대화 위주라면 법학자 김두식 교수와 소설가 황정은이 진행하는 은 한 테마나 책에 관해 2회씩 방송을 묶어 한 번은 진행자들의 책 이야기, 한 번은 저자들을 초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으로 구성돼 있다. 다양한 영역의 저자가 게스트로 등장하고, 법학자와 소설가인 두 진행자의 취향이 충돌하면서 책을 바라보는 조금 다른 시각도 듣는 재미를 더한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진행하는 는 시종일관 진지하다. 하지만 독자들의 감상문도 받는 등 청취자와의 소통에 적극적이다. 진지하지만 작품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평론가의 시선이 돋보인다.

유명 진행자가 아니라도 책의 뒷이야기나 타인의 독서 취향이 궁금한 이들의 귀를 솔깃하게 할 팟캐스트도 있다. 출판편집자와 인터넷서점 MD 등이 진행자로 나서 ‘출판계 해적방송’을 지향하는 나 좋아하는 책을 소개하고 진행자의 감상을 밝히는 등이 그것. 장르를 차별하지 않고 한 권의 책을 정해 일부분을 읽어주는 은 일종의 오디오북이다. “보통 잠자리에 들기 전에 켜놓고 들었는데, 이틀째 같은 부분에서 잠이 들어버려 오늘 밤은 세 번째 도전”이라며 소감을 밝히는 청취자를 비롯해 여행 가는 기차에서,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사람들은 누군가 조근조근 읽어주는 문장에 귀를 기울인다.

<font size="4"><font color="#C21A8D">거슬러 올라가면 김영하의 책 읽는 소리</font></font>

을 시작으로 출판사와 개인이 연이어 책 팟캐스트를 개설하면서 올해까지 붐이 이어지는 듯하지만 사실 책 이야기는 이전부터 사람들의 귀를 붙들었다. 2010년 소설가 김영하가 시작한 은 제목 그대로 꽤 긴 분량의 문장이 이어진다. 이렇게. “파리 몽마르뜨르 오르샹가 79번지 2호의 4층에 매우 선량한 남자가 살고 있었다. 디튀유일이라고 불리는 그 남자에게는 특이한 능력이 하나 있었다….” 최근 방송인 1월8일자 마르셀 에메 편에서 김영하 작가는 3분여간 자신의 근황을 전달한 다음 청취자에게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1시간이 넘도록 계속된 낭독이 끝나고 책을 읽은 작가의 짧은 감상과 평이 이어진다. 이처럼 말 그대로 듣는 책을 표방한 팟캐스트들 또한 꾸준히 인기다.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보다 앞서 인터넷 라디오 문학 방송 도 있다. 2005년 문학 사이트 ‘사이버 문학광장’에서 김선우 시인이 진행을 맡으며 첫 방송을 시작했다. 당시 방송은 유명 작가들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통로였다. 현재는 팟캐스트를 통해서도 들을 수 있다. 사이버 문학광장은 지난 1월 말 신진 작가들이 참여한 팟캐스트 도 시작했다.

<font size="4"><font color="#C21A8D">“경쟁이 아니라 뭔가 하나씩 띄우는 것”</font></font>

청각을 자극한 방송은 시각과 촉각의 경험인 독서로 이어지도록 한다. “방송을 듣고 오늘 다룬 책을 다시 꺼내 읽었다” “박완서 선생님의 글은 읽어도 들어도 좋다”. 책 팟캐스트 페이지에 올라오는 청취자들의 댓글이다. 종이책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점치는 이가 많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첨단 기술의 첨병을 통해 가장 아날로그적인 경험을 은밀하게 이어가고 있다. 정이현 작가는 그래서 “책 팟캐스트가 서로 경쟁하는 게 아니라 드넓은 취향의 바다에 우리도 뭔가 하나를 띄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방송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10개, 20개 늘어도 좋다”며 책 팟캐스트가 다양성을 더해가길 바랐다. 그러므로 A. M. 홈스의 소설 제목처럼 거창하진 않더라도, 취향에 따라 점차 세분화하는 이 작은 방송들이 어쩌면 우리의 일상 정도는 구할지도.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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