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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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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핏, 그래 다 태워버리자

턱걸이가 인생 최대의 고민이 될 거라곤 상상도 못한
매일이 좌절이고 매일이 짜릿한 나날들
등록 2014-02-22 14:16 수정 2020-05-03 04:27
크로스핏은 몸을 디자인하는 것이 아닌 몸의 최대치를 끌어내기 위한 운동(Movement)이다. 트레이닝을 하는 모습. 한겨레 이길우

크로스핏은 몸을 디자인하는 것이 아닌 몸의 최대치를 끌어내기 위한 운동(Movement)이다. 트레이닝을 하는 모습. 한겨레 이길우

운동을 좀 안다는 누군가들은 종종 묻는다. “크로스핏요? 왜 그런 격한 걸….” 글쎄. 모든 것은 크로스핏을 시작한 지 3일째인가, 4일째 들었던 그 한마디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포기하세요. 포기하면 간단해요. 여태까지 얼마나 많이 포기하며 살아왔어요. 이거 하나 더 포기한다고 티도 안 나요. 내일이면 포기했는지 기억도 안 나요.”

그랬다. 얼마나 많이 포기하며 살아왔던가, 포기하면 안 되는 순간에도 포기하고 포기할 수 없는 순간에도 포기하고 도저히 포기할 수 없겠다고 생각했던 순간에 또 포기하고. 그렇게 매일 포기하고 그게 너무 아프니까 힘겹게 위안하고 애써 합리화하고 되도록 잊고. 그렇게 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주문을 걸며 그냥 이렇게 사는 거라고. 꾸역꾸역 살아야지, 마지막처럼 다 태워버릴 순 없으니까.

영화 배우들이 했던 트레이닝

운동 좀 한다는 축이었다. 태권도 3단이고, 접영 마스터이며, 중3 때까지긴 했지만 열정적으로 농구도 좀 했다. 지금은 4년차 사회인 야구선수로 제법 치고 던지는 축이다. 그쯤이면 운동 좀 하는 생활인 행세를 하는 데는 차고 넘쳤다. 땀구멍이 열리는 순간의 따끔한 감촉에 대해 말할 게 있고, 하나의 움직임이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을 보이며 창조적 플레이로 연결되는 역동성에 대해 조금 과장해 떠들 수만 있다면 생동적 스포츠인 대접을 받는 데는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 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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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이 없었다. 지난해 이맘때 동네에 낯선 체육관 하나가 들어섰다. 오가며 영화 에 출연했던 배우들이 했던 트레이닝이라는 홍보 문구를 봤다. 예감했다. 뭔지 잘 몰랐지만 언젠간 다니겠거니. 애써 알아보지도 않았다. 그래서 처음 체육관(크로스핏에선 ‘박스’라고 부른다)에 들어설 때도 거침없었다. “등록하려고요.” “크로스핏이 뭔지는 아시지요?” 솔직히, 잘 몰랐다. 그런데 모른다고 답하기는 왠지 ‘모양’이 빠지는 것 같았다. “예, 찾아는 봤습니다.” 동네 헬스장 입장하듯 아무렇지 않게, 그렇게 시작됐다.

크로스핏은 ‘크로스(Cross) + 피트니스(Fitness)’의 합성어로 모든 운동이 공통적으로 요하는 신체의 기능을 종합적으로 발달시키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크로스핏에서 ‘체력’은 몸을 이용해 주어진 작업을 달성해내는 능력으로 해석되며, 모든 상황에서 어떤 일이 닥쳐도 이겨낼 수 있는 준비된 체력을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첫날 WOD(Workout of the Day, 크로스핏의 하루 운동을 말한다. ‘와드’라고 부른다)는 줄을 타는 것이었다. 중학교 시절 레슬링부 애들이나 하던 운동이었다. 해봤을 리 없고, 해볼 필요도 없던 ‘행위’였다. 처참했다. 줄에 대롱대롱 매달려 1cm도 움직이지 못했다. 줄에 쓸린 발목은 벌겋게 부풀어올랐고, 키보드와 고작 매끄럽고 둥근 공에 익숙해 있던 손바닥은 만신창이가 됐다. 그렇게 운동 좀 하며 살아왔단 나른함은 매일 박살이 났다. 서른도 중반을 향해 가는 때에, 턱걸이가 인생 최대의 고민이 될 거라곤 정말 상상하지 못했다. 만능 스포츠맨의 자존감은 매일 하락했지만, 묘하게 매일 짜릿했다.

너무 당연했다. 내가 했던 건 진짜 운동이 아니었다. 무슨 말이냐고. 그렇다면 당신에게 운동은 뭔가? 전 지구를 통틀어 가장 열정적으로 자기계발에 임하고 있는 공화국. 그래서 성형수술이 졸업 선물이 되고, 누구나 아랫배 두께를 번뇌하며 살아가는 사회에서, 정작 운동은 대체 무엇이냔 말이다. 냉소가 아니라 지금까지 우리에게 운동은 고작 ‘디자인’이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고 한국에 크로스핏을 소개해 국내 크로스피터들로부터 ‘조상님’이라 불리는 이근형 트레이너의 말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했던 운동은 본연의 무엇, 신체를 움직이는 행위를 활성화하는 근원에 대한 고민이 아닌 몸을 어떻게 디자인할 것이냐에 최적화된 프로그램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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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 미감대로 디자인하는 게 운동이라고?

헬스장에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운동의 거의 대부분은 몸을 세속적 미감의 기준대로 디자인하려는 강박적 반복에 불과하다. 크로스핏은 운동의 본래로 돌아가자는 ‘운동’(Movement)이다. 크로스핏은 신체 활동의 최대 목적이 기능성을 높이는 것에 있다고 믿는다. 운동은 누군가에게 몸을 보여주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건강함을 향해 질주하고, 체력의 최대치를 이끌어내는 데 복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크로스핏을 한들 8주 안에 몸짱이 된다고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딱 그만큼의 시간을 투여한다면 당신은 생애 가장 폭발적인 체력을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크로스핏엔 러닝머신이 없고 복근에 대한 강박도 없다. 대신, 폭발하기 직전까지 차오르는 들숨과 날숨의 긴박한 교환 속에서 제 한 몸 제대로 세우기가 이렇게 버거운 일이었는지를 세포 하나하나마다 각인시키는 희열이 있다. 당신이 운동해야 하는 이유가 잘 갈라진 근육을 만들기 위해서일 뿐이라면, 크로스핏은 거기에 최적화된 운동은 아닐지 모른다. 오히려 그것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신은 정말 중요한 한 가지 포기를 ‘포기’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이와 체력은 반비례한다는 그 나약한 오해는 크로스핏에 없다. 체력의 최고치를 확인해본 일이 있는가? 단언컨대, 당신이 아직 크로스핏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아직 그 순간은 오지 않았다.

김완 기자·‘투혼’ 박스 초보 크로스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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