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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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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법률이야말로 ‘자기계발’

책임져주지도 않을 거면서 창업하라는 황당한 정책들 쏟아질 것
어려운 시대일수록 지쳐 쓰러지지 않아야
등록 2014-01-30 16:18 수정 2020-05-03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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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20대 청년이 욕먹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진취적이지 못하고 대기업·공무원 같은 안정적인 직장만을 바라본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문제에 관심 갖지 않고 도서관에 앉아서 스펙만 쌓는다는 것이다. 이 사회는 20대에게 ‘도전’할 것을 요구하고, 때로는 ‘연대’할 것을 요구한다. 이 엄청난 요구들이 빗발치는 가운데 정작 청년들의 ‘생존’ 자체를 걱정해주는 이는 많지 않다.

스스로의 생존 기반을 닦아놓지 않은 채 인생을 거는 것은 도전이 아니라 도박이다. 그리고 스스로의 생존이 안녕하지 못한 이들이 다른 누군가의 안녕을 걱정하기란 쉽지 않다. 도전과 연대는 모두 생존한 뒤에야 이룰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 쉽게 망각한다.

60만원을 돌려받아 통신비와 월세 갚아

개인적인 일화를 소개하자면 나는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60만원 정도의 임금을 체불당한 적이 있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일하지 않는 휴일에도 임금이 지급돼야 한다. ‘유급휴일수당’이라 불리는 이 임금을 받지 못한 것이다. 물론 이 수당을 받지 못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2011년 청년유니온의 조사에 따르면 이런 식으로 지급되지 않은 유급휴일수당이 커피숍 업계에서만 200억원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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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알바생 주제에 회사 대표를 고발하는 무례를 범하며 60만원을 돌려받았고, 이 돈으로 밀린 통신비와 월세를 갚았다. 그리고 이 일을 겪으면서 법만 잘 지켜지더라도 우리의 생존이 한결 수월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생존 불안에 내몰린 청춘들은 자기계발서를 구입하며 위로와 공감을 소비한다. 그러나 자기계발서는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동기부여를 제공할지언정,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에 관한 해법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공허한 위로와 공감이 아니라, 정글 같은 세상에서 생존하기 위한 구체적인 해법이다.

은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만들어졌다. 직장에서 월급을 떼이지 않기 위해 익혀야 할 근로기준법, 전·월세 보증금을 지키기 위해 알아야 할 임대차보호법, 그리고 신용불량자가 되지 않기 위해 숙지해야 할 금융 관련 정보를 모아서 책으로 엮어냈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생존 법률을 익히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데 진정으로 요구되는 ‘자기계발’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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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먹은 임금에 도전하고 같은 처지끼리 연대하자

박근혜 정부 시대가 4년 남았다. 앞으로의 4년 동안 사회 구성원들의 고단한 삶이 극적으로 개선될 것이라 기대하지 않는다.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는 간데없고 청년실업과 양극화만이 나부낄 것이다. 책임져주지도 않을 거면서 취업이 어려우면 창업을 하라는 황당한 정책들도 쏟아질 것이다.

이렇게 어려운 시대일수록 지쳐 쓰러지지 않고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다. 사장님에게 떼먹은 임금 돌려달라며 ‘도전’하고, 같은 처지의 사람들끼리 웃고 떠들고 부대끼며 ‘연대’해야 한다.

월급 떼이지 말고, 신용불량자 되지 말고, 어렵게 모은 보증금을 지키며 일단은 살아남자. 당장을 살아내야 더 큰 도전과 연대도 모색할 수 있다.

김민수 청년유니온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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