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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2~3주 연속해서 휴가를 쓸 수 없는가? 우리는 왜 퇴근시간이 넘어도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가? 우리는 왜 주말에도 출근해야 하는가? 우리는 왜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부족한가? 주범은 우리 모두를 눈 시뻘건 돼지 신세로 만드는 ‘기형적인’ 일 패턴이다.
악취가 악취인 것을 모르는 저인지 상태우리는 장시간 노동이 ‘비정상’이라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안다. 그러나 우리는 장시간 노동이라는 돼지우리에 오래 갇혀 있다보니 악취가 악취인 것도 모르고 너무 익숙해진 탓에 얼마나 고약한지 표현하지 못하는 저인지 상태에 놓여 있다.
어떤 일상 관계든 시간과 노력과 정성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장시간 노동은 일상 관계를 침해하는 일종의 폭력이다. 그러니 돼지우리에서 폭력은 공공연할 수밖에 없다. 나 자신에 대한 폭력은 물론이고 아내, 아이, 이웃, 동료, 공동체에까지. “어쩔 수 없지 않느냐”라고 푸념해도, “그래야 눈 밖에 안 나지”라고 자조해도, “잘 몰랐다”고 외면해도 그것은 폭력이다. 우월함이나 능력의 표지 또는 남편다움이나 아버지다움의 상징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분명 폭력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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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이 반복되면 거기에는 일정한 패턴이 생겨난다. 그 고유한 패턴은 스스로 존재가 된다. 마찬가지로 장시간 노동이 일상인 우리에게 그것은 자연스러운 질서이자 존재 그 자체가 돼버렸다. 과로사회에서 우리는 시간 빈곤에 허덕이는 박탈당한 존재다.
아이의 숨결을 느낄 수 없다. 아내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다. 가만히 멈춰서서 나를 바라볼 시간이 없다. 타인과 관계 맺을 시간이 없다. 삶의 기쁨을 주체적으로 영위할 수 없다. 사람들과 함께 내가 살고 싶은 세상에 대해 이야기할 시간이 없다.
“취직을 한 그 순간부터 야근과 특근은 꼬박꼬박 밥 먹듯이 해야 하는 일상”이라는 하소연은 여느 직장인들의 고충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야말로 매일같이 ‘시루떡’ 되는 기계다. 피곤에 지쳐 그냥 시간을 때우고 만다.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기획하기가 여의치 못하다. 결혼 초기 아내는 밤 11~12시까지 일하는 게 다반사였고, 주말이면 밀린 잠을 보충하느라 급급했다. 장시간 노동은 그 누구든 정상적인 개인사를 포기하게 만들고 비활동적이고 수동적 여가로 내몬다.
“주말 반납하고 회사 나가는 게 다반사다.” “주말도, 휴식도 없다.” “매일 12시간30분씩 맞교대로 일하고 온전히 쉰 날은 세 달 만에 연차휴가로 단 하루 쉰 게 고작이었다.” 지난해 업무 과중에 시달리다 결국 운명한 노동자들의 목소리다. 비극의 원인은 한 사람이 2~3인분의 일을 떠안게 하는 ‘야만적인’ 노동 구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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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간 노동으로 매해 해외토픽에 회자되는 이곳은 ‘돼지들의 국가’다. 자유의 가능성을 옥죄는 장시간 노동에 대한 문제제기야말로 정치의 출발이다. 장시간 노동이라는 예속을 해체하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시간 권리에 대한 프레임을 새로 짜고 연대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각자는 시간 박탈에 대해 질문하고 반항하자. 끝까지 자기를 격려하면서! 햇빛을 만끽할 여유, 텃밭을 가꿀 시간, 사랑할 여유, 한갓진 여가, 더불어 사는 삶. 그저 먼 나라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왜 흔한 상식이 불가능한 상상이어야 하는가? 우리는 존재의 이유까지 잃게 하는 돼지우리에서 너무도 오래 견뎠다.
김영선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연구교수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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