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너무도 사랑스러운 그녀, 윤여정을 그렇게 생각하는 이가 갈수록 늘고 있다. 에서 능통한 영어 실력보다 통쾌한 유머감각으로 ‘할매의 향기’를 뿜어내고 있다.한겨레 신소영
올해의 토크를 뽑는다면, 윤여정이 나온 를 꼽겠다.
유쾌하다 통쾌하고, 통쾌한데 상쾌했다. 이경규를 압도하는 카리스마, 옮기기도 힘든 주옥같은 말들의 향연. 곰곰이 되씹게 되는 인생 철학. 있어야 할 것은 다 있고 없어야 할 것은 없었다. ‘상하를 막론한 모두까기’라는 자막이 나올 만큼 거침없는 발언으로 이날의 자막처럼 ‘원샷원킬’, 한마디로 한 명씩 죽였지만 누구를 욕했단 느낌은 없었다. 1947년생, 67살 여배우 윤여정은 사랑받는 배우를 넘어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다.
예의를 벗어나도 무례로 보이지 않는한국 여배우들의 실제 모습이 묻어나는, 영화와 예능이 있다. 예전의 영화 , 지금의 예능 . 여배우들 대여섯 명이 연령대별로 나오는 페이크 다큐이거나 연예오락 프로그램이다. 여기에 겹치기 출연을 한 유일한 인물은 윤여정. 아무리 편집하는 예능이고 영화지만, 실제 인물의 ‘스멜’을 속이진 못한다. 영화든 예능이든, 감독들은 그녀의 실제 캐릭터를 탐한다. 필요한 순간에 적절한 진실을 드러내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의 할배들이 여행을 떠나는 그녀들을 위해 모였다. 와인과 소주가 돌고, 분위기가 무르익자 할배들의 말이 길어졌다. 정처 없는 말은 흘러흘러 드라마 계약서 이야기로 갔나보다. 여행을 위한 조언은 뒷전이 되었다. 하릴없는 말들이 오가는 가운데, 후배 여배우들과 제작진이 원했던 한마디를 그녀가 던진다. “아니, 이분들이 왜 와가지고~.” 70대 노배우들 앞에서 누구도 나서지 못하는 순간에, 그녀가 나선다. 이 순간이 남자들 앞이라 더욱 통쾌하다. 그런데, 그것이 남을 위한 희생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할 뿐이란 느낌. 그래서 모두가 부담이 없다. 자연스럽다.
자기 의견이 분명하다. 독설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분명하다. 그런데 남을 해친단 느낌이 없다. 에서도 폭로가 넘쳤다. 이경규의 패션을 묻자 “촌스럽기 그지없네요” 한다. 발끈하는 이경규도 웃는다. 예전의 안 좋은 추억을 얘기하면서 “돌아가신 분이라서”로 시작한다. 이어지는 말로 당연히 “얘기하기가 그래”가 나올 것 같지만, 윤여정은 “돌아가신 분이라서 제가 지금 말씀드릴 수 있어요”라고 말한다. 모두가 웃는다. 싸이의 노래 가사처럼, 반전 있는 여자. 살짝 예의와 통념을 벗어나도 좋다. 전혀 무례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의 연륜과 어울려 ‘꽁한 구석’ 없는 사람이 된다. 김제동이 물었다. “얼굴에 힐링을 하셨다고요?” 잠시도 주저하지 않고 답한다. “했어요. 피부가 너무 나쁘다고 시청자들의 지탄을 받았어요”라고 받는다. 먼저 자기 폭로, 이어진 내부 고발. “온 동네가 집수리를 하니까 우리 집만 수리를 안 하면 폐가가 되더라고. 눈이 다 찌부러져요. 처져요. 눈을 좀 집었어요.” 배우들의 성형 세태까지 드러내는 일타쌍피를 날린다.
지금은 엄마 역할이 자연스럽지만, 예전의 그녀는 주인공의 고모거나 이모거나 친구거나 그랬다. 대개는 독신녀. 저음에 비음이 섞인 목소리 탓에 코맹맹이 소리 듣기 싫다는 시청자도 부지기수였다. 남들이 싫어해도 했다. 그녀에겐 생활이 있었다. “자의 반 타의 반 소녀가장이 된” 그녀에게 들어오는 배역을 마다하는 여유가 허락되지 않았다. 실전이 연습이 되었다. 아니 살기 위해 실전처럼 연습을 했다. 엄마 역을 맡으면 집에서 혼자 숟가락을 놓으면서 연기 연습을 했다고 한다. 생계가 등 떠밀어 만든 치열한 직업정신, 무르익은 커리어우먼의 향기가 그녀를 감싼다. 이제 엄마 역을 해도 어색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엄마 역에 딱인 배우가 되었다. 시청률 40%를 넘긴 드라마 은 지금까지 해온 엄마 역의 가장 대중적인 버전이었다.
가장 대중적 엄마, 분냄새 나는 여자“엄마가 아니라 여자, 여전히 분냄새 나는 여자.” 그녀와 많은 드라마를 같이 했던 노희경 작가는 그렇게 말했다. 스크린 속의 그녀는 마냥 희생하는 엄마가 아니다. 영화 에서는 “아들보다 어린 배우” 김강우와 베드신도 했다. 홍상수와 임상수의 영화에서 담배 피우는 모습이 가장 잘 어울리는 여배우다. 현실에선 자식을 키우기 위해서 “(무슨 역이든) 다 했어요. 다 했어요” 하는 엄마지만, 스크린에서 윤여정은 60대 후반이 돼서도 여전히 여자다. 이런 이미지는 “옷 좋아해요” “옷으로 푼다”고 자신의 취향과 소비를 숨기지 않는 현실의 모습과 통한다.
돌아보면, 그녀는 청바지 세대였다. 1970년대 명동의 세시봉을 드나들며 예술가들, 가수들을 만났고 그들의 일부로 살았다. 오랜 세월이 흘렀고 청바지 세대의 남자들, 가수들이 모두 추억이 되었지만 그만은 여전히 현역이다. 요즘엔 에서 유창한 영어 실력까지 재발견됐다. “채널을 돌리다 를 봤는데 윤여정씨처럼 늙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지성미에 유머감각에 패션센스까지. 잠시만요- 이 개그 치실 때 감탄 ㅋㅋ”(@present_jn) 지금도 스키니진이 어울리는 그녀, 지금껏 없었던 ‘워너비’가 되었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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