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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일은 늘 작은 일에서 비롯된다.
“독자 팬들 초대해서 X기자 부부가 같이 캠핑 가는 거 어때?” 지난 7월 말, 저녁을 먹고 후식으로 ‘메로나’를 쪽쪽 빨던 편집장이 넌지시 말했다. ‘선배~ 제 와잎이 술 먹여서 독자들 떨어져나가는 거 보고 싶으세요?’라고 반문하고 싶었지만, 괜히 긁어 부스럼 될까 못 들은 척 뭉갰다. 다음날 오후, 편집장이 다가와 느닷없이 물었다. “생각 좀 해봤어?” 순간 편집장의 어제 말이 떠올랐다. 언제나 ‘최우선’인 ‘최우성’ 편집장의 말을 대놓고 거스를 순 없으니 합리적 근거를 들이대야 한다. “제정신 가진 독자라면 제 와잎을 두려워하지 않을까요?” 노회한 편집장은 자칭 타칭 최고 인기 칼럼의 자존감을 건드렸다. “킬링캠프 정도면 사생팬이 있지 않나?” 난 뭔가 잘못돼가고 있다는 걸 느끼면서도 다음과 같이 말하고 말았다. “물론 있죠. 한번 궁리를 해보겠습니다.”
니 남편 대역 쓸게요~ 느낌 아니까~그날 저녁, 편집장과의 대화를 전해들은 와잎이 캔맥주를 홀짝이며 말했다. “내가 무슨 호환마마냐? 날 두려워하게~. 아주 마누라를 쓰레기로 만드는구만!” ‘술 먹을 때 쓰레기 맞잖아’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더니 와잎이 째려보며 대꾸했다. “이거 왜 이래? 나만 쓰레기야? 그리고 그런 이벤트가 있으면 나한테 먼저 물어봐야지. 나 안 가. 빈정 상했어.” 지금 그래서 물어보잖아~. 앗싸, 진짜 안 가게? 잠시만요, 여기 쓰레기 분리배출 좀 하고 나 혼자 캠핑 가실게요~.
다음날 일사천리로 일정이 잡혔다. 8월31일부터 9월1일까지 1박2일. 문제는 장소 섭외였다. 문득 ‘만인보’에 소개하면 어떻겠느냐고 얼마 전에 소개받은 경기도 양평 ‘꿈의마을 캠핑장’ 김만겸 대표가 떠올랐다. 전달받은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만류에도 김 대표는 흔쾌히 장소 협찬 의사를 밝혔다.
972호 칼럼에 공고를 실었다. 트위터에도 공지를 띄웠다. 며칠이 지나 두근대는 맘으로 전자우편함을 열어봤다. 아니 이럴 수가. 전자우편이 하나도 없었다. 평소 한두 통씩 오던 팬레터도 보이질 않았다. 부랴부랴 트윗에 이벤트 공고를 다시 올렸다. 비용 때문에 그런가 싶어 ‘모냥’ 빠지는 걸 감수하고 공짜라는 사실도 적시했다. 캠핑 열풍이라더니 캠퍼들은 다 어디로 간 거야?
이렇게 하루아침에 인기가 사그라지다니 ‘인기는 바람 같다’던 어느 톱스타의 말이 새삼 와닿았다고 와잎에게 푸념했다. 와잎은 “인기가 있긴 있었니? 인기가 아니라 취기 아냐? 그리고 너 같으면 너랑 캠핑 가고 싶겠냐?”며 맥주 김 빠지는 소리 그만하고 캔맥주나 사오라고 했다. 니 남편 대역 쓸게요~, 느낌 아니까~.
이윽고 신청 마감일인 8월16일, 기도하는 마음으로 전자우편함을 열어봤다. 그럼 그렇지~. 무려 10건의 신청 전자우편이 쇄도(?)했다(편집장, 보고 있나?). 전남 해남에서 차를 끌고 오겠다는 독자(이 정도라는 거~), 대구에서 자매가 함께 오겠다는 독자(여심을 흔드는 칼럼이라는 거~), 캠핑을 한 번도 안 해봤지만 꼭 오고 싶다는 대학생 독자(캠핑 문화의 저변 확대에까지 기여하는 칼럼이라는 거~), 주객전도 때부터 열혈팬이라는 50대 공무원 독자(남녀노소 고른 팬층을 가진 칼럼이라는 거~), 킬링캠프 읽는 재미로 산다는 30대 남성 독자(독자 배가에 지대한 공헌을 하는 칼럼이라는 거~), 지하철에서 읽다가 너무 웃어서 미친놈 취급 받았다며 꼭 한번 만나고 싶다는 30대 독자(명랑사회 구현에 앞장서는 칼럼이라는 거~), X기자보다 와잎님이 더 궁금하다며 와잎님과 꼭 술 한잔하고 싶다는 20대 여성 독자(새로운 여성 롤모델 형성에 일조하는 칼럼이라는 거~) 등 그동안의 개무시와 마음 졸임을 한 방에 날려주는 고마운 신청서들이었다.
추첨이고 나발이고 독자들 맘 바뀌기 전에 급전화를 걸었다. 마치 로또에 당첨이나 된 듯 기뻐하는 독자들을 보면서 내가 오히려 민망했다. 장소와 일정을 알려드리고 캠핑장비 유무를 확인했다. 전문 캠퍼는 거의 없었다. 결국 텐트와 침구, 그릴 등 장비가 문제였다. 몇몇 독자는 장비를 마련해서 오겠다고 했지만 나머지 대부분의 독자들은 속수무책이었다. 석대인(864호 ‘세 유부의 물 위의 하룻밤’ 참조) 등 장비가 있는 사내 인사들(추태로 인한 가명 처리)에게 참여를 권했다. 석대인 부자, 경제부 이술혁 기자 가족, 사회부 황 법조팀장, 사회부 이싱싱 기자가 의사를 밝혀왔다. 차원에서도 참여자가 잇따랐다. 편집장, 이미녀 팀장 가족, 정은줘 팀장과 인턴 기자들, 둘레길 팀장과 지인들, 기세영 기자 가족, 박가출 기자와 지인, 서군인 기자와 지인 등이 함께 가기로 했다. 한겨레 MT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판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주객전도구만~. 독자는 결국 놀러가기 위한 핑계에 불과했던 것인가.
‘오병이어의 기적’이라도 보여줄까상황을 ‘지대로’ 파악한 편집장이 주류 일체를 책임지기로 했지만, 이들을 먹고 재워야 할 책임은 전적으로 내게 부여되고 있었다. 명색이 독자들을 모시는 자리이니 독자들은 몸만 와주십사 말씀을 드리고 사내 인사들에게 두 번에 걸쳐 전자우편을 돌렸다. 고기를 비롯한 먹을거리 장을 보겠지만 30명이 넘는 인원이 먹고 마시려면 부족할 듯하니 각자 알아서 챙겨와달라는 말과 함께 캠핑 장비를 최대한 확보해달라고 읍소했다. 10명이 넘는 인간들 가운데 그 누구에게도 회신은 오지 않았다. 이리도 무심한 인간들을 어쩌란 말인가. ‘오병이어의 기적’이라도 보여줘야 하는가.
8월의 마지막 주, 마감을 하는 중간에 한 차례 장을 봤다. 라면과 즉석조리쌀, 물을 비롯해 아이들을 위한 과자와 작은 장난감 선물, 불꽃놀이를 샀다. 또 어색해할 독자들을 위해 스케치북 등 가족오락관식 각종 게임 도구들도 샀다. 마감을 하는 또 다른 중간(편집장, 보고 있나?)에 행사에 쓸 현수막도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캠핑 이틀 전, 해남 독자님과 대구 자매님, 50대 공무원 독자님과 20대 여성 독자님이 갑자기 사정이 생겼다며 불참을 알려왔다. 선의로 협찬된 사이트를 비워둘 순 없었다. 대학 후배인 양지와 김숙면, 보수정치에 종을 치는 진보정치인 종처라, 그리고 ‘미래사돈’ 승주네 가족(930호 ‘망언 작렬과 만다라의 비애’ 참조)을 급섭외했다.
캠핑 전날, 동네에서 고기와 각종 채소로 장을 본 와잎이 문자를 보냈다. “X기자 부부와 함께하는~ 이 아니라 X기자 부부가 대접하는~ 아냐? 그동안 뽀지게 놀았으니 이제 대접하라는?” 느낌 아는구나~. 같이 대역 쓰자. 같이 출발하기로 한 석대인은 저녁께 전화해 사정이 생겼다며 아침 일찍 출발하자고 졸랐다. 그냥 니들끼리 가면 안 되겠니? 누구를 위한 캠핑인가? 마감을 마치고 새벽녘에 겨우 잠을 청했다.
새벽부터 설쳐대는 아들 윤재 때문에 서둘러 짐을 부린 뒤 석대인 부자와 출발했다. 중간에 승주네 식구를 태우고 점심까지 때운 뒤 꿈의마을 캠핑장에 도착하니 오후 2시가 넘었다. 캠핑장은 오픈한 지 얼마 안 돼 깨끗하고 호젓했다. 화장실과 샤워실도 쾌적했다. 와잎과 승주 엄마는 애들을 데리고 근처 냇가로 물놀이를 가고 승주 아빠와 둘이서 베이스캠프를 설치했다. 한낮의 뙤약볕에 1시간30분 동안 야무지게 타프와 텐트를 쳤다(‘뼛속까지 캠퍼’는 나밖에 없었으므로 ‘가오’를 위해 완전 빳빳하게 쳤는데 나중에 아무도 몰라보더라는). 곧바로 서군인 기자와 지인이 사무실에 놓여 있던 술과 짐을 싣고 도착했다. 서군인은 텐트를 쳐본 적이 없다고 했다. 군인 맞니? 옆에서 거들고 있는데 기세영 기자 가족, 이미녀 팀장 가족이 속속 당도했다. 아이들과 물놀이 갔던 와잎과 승주 엄마도 돌아왔다. 이리 가서 줄 잡으랴, 저리 가서 못 박으랴, 여기 와서 소개하랴 정신이 없었다.
남철·남성남의 상모 돌리기와 면벽 수도정은줘 팀장 그룹과 편집장이 도착하고 이싱싱 기자와 둘레길 팀장 그룹도 도착했다. 마지막으로 김태웅(25), 김성진(34), 최영민(36), 정선경(34) 등 독자 그룹과 양쥐를 비롯한 내 지인들이 도착했다. 독자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자리를 잡아드렸지만, 저기 가서 폴 잡으랴, 여기 와서 불 피우랴, 난리부르스통에 독자들을 챙길 겨를이 없었다. 해가 지기 전에 (가려 했지~) 어느 정도 세팅을 마쳐야 했다. 다른 텐트의 설치를 돕다가 보니 대학생 독자 김태웅씨가 홀로 고기를 굽고 있었다. 다들 정신없는 상황에서 독자가 고기를 구워 다른 독자와 기자들을 먹이고 있던 것이다. 와잎과 승주 엄마에게 부탁하려 해도 그들도 저녁 준비에 바빠 보였다. “아이고~ 독자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라고 집게를 빼앗아 대신 고기를 굽는데 저쪽에서 현수막을 걸어야 한다며 나를 불렀다. 나도 모르게 집게를 김태웅씨에게 넘기고 달려갔다. 현수막을 보며 종처라 정치인이 이런 건 운동권 출신이 잘 건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돌아보니 김태웅씨는 다시 고기를 굽고 있었다. 조금씩 집어 먹고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는 고기를 구우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해가 지고 있었다. 자리를 잡고서 제대로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일 보고 돌아온 석대인이 텐트를 치자고 부른다. 석의 소라개껍데기 같은 텐트를 치고 돌아오니 애들이 불꽃놀이를 하게 해달라고 조른다. 종이박스로 발사대를 만들어 불을 붙여줬다. 좋아라 하는 아이들 뒤로 보니 이제는 승주 아빠가 고길 굽고 있었다. 아 놔~, 그 많은 기자들은 어디로 갔을까? 35명의 떼꾼들은 몇 군데로 무리지어 고기를 굽고 술을 마셨다.
착한 독자들은 와잎을 보고 정말 아름다우시다면서 괜한 인사치레를 했다. 와잎은 “제가 좀 되죠? 그동안 이 인간이 쓴 모든 칼럼은 내란음모 수사에 버금가는 철저한 날조예요”라고 일갈했다. 표현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를 옹호하는 난 잠자코 듣기만 했다. 쩝.
밤 10시,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자 어른들은 본격적인 음주캠핑에 돌입했다. 편집장의 요청에 따라 전원이 큰 원을 둘러 모여 앉았다. 가운데에는 모닥불을 지폈다. 불콰한 편집장이 인사말을 했다. “이 자리를 만드느라 고생한 X기자와 와잎에게 고맙다. 앞으로 킬링캠프는 취소다.” 취소? 폐지도 아니고? 논란만 남겨놓고 편집장은 앉은 자리에서 바로 숙면에 돌입했다. 논란을 뒤로하고 난 가져온 스케치북에 속담을 적어 내려갔다. 몸으로 속담 설명하기 게임이었다. 고기만 굽느라 살이 쪽 빠진 김태웅 독자와 내 칼럼을 다 읽고 왔는데 생각보다 엉뚱하지 않아 놀랐다며 엉뚱한 얘길 한 30대 여성 독자를 짝으로 모셨다. 귀여운 몸집의 김태웅 독자가 꿀렁꿀렁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흐린다’를 몸으로 잘도 설명했다. 짝을 바꿔 몇 번 게임을 진행했는데 다들 웃고 떠드느라고 개판 오분전이었다. 느닷없이 나무를 해오겠다고 맨손으로 산에 올라 10분 만에 통나무를 짊어지고 온 황 법조팀장의 상남자다움에 다들 한바탕 웃었고(역시 남자는 힘!), 술에 취해 2시간 동안 남의 차 범퍼 앞에서 상모돌리기를 하며 차 넘버를 외우는 이술혁 기자와 그 옆에 앉아 면벽수도하듯 끊임없이 말을 거는 석대인의 모습에 폭소를 금치 못했다(남철·남성남? 뚱땡이와 히쭈구리?). 준비해온 게임들이 애석했지만, 이런 난장판에서 더 이상의 게임은 불가능했다. 아쉬움을 달래며 캠핑지기로서 참가자들과 술잔을 나눴다. 다들 생각보다 와잎이 조용하다며 의아해했다. 제 아내도 사회생활 하는 사람이라는 거~. 본색은 필요할 때만!
“내가 겪는 고통 남들도 똑같이 겪어야”시간이 자정을 넘기고 잠들지 못한 캠퍼들 10여 명이 고기를 굽고 라면을 끓였다. 엔간히 좀 먹자~. 몸 키우냐? 와잎은 “미쳤나봐? 이 시간에 왜 이렇게 먹혀?”라고 방백을 하면서 먹방을 찍어댔다. “저녁 안 먹었니?”라고 반문하면서 나도 어느새 집어먹고 있었다. 그사이 남은 인원 가운데 유일하게 미혼이던 김태웅 독자를 상대로 유부남·유부녀들의 말도 안 되는 결혼학 강의가 이어졌다. 나무꾼 황 팀장은 평생 연애만 하고 살라고 했고, 종치는 진보정치인은 결혼하면 외로워진다고 의미심장한 멘트를 날렸고, 석대인은 뜬금없이 이선희의 노래를 부르며 허리춤을 췄으며, 와잎은 결혼은 미친 짓이라고 말했다. 나만 유일하게 결혼을 권했다. 왜? “내가 겪는 고통 남들도 똑같이 겪어야 하니까!” 김태웅 독자는 박수를 치며 좋아라 했다. 넌 예외일 거 같으니? 심야 술자리는 새벽 3시까지 이어졌다. 여행스케치의 를 들으며 쏟아지는 별을 헬 때, 하루 종일 사람 챙기느라 고생한 이싱싱 기자가 제대로 힐링을 받았다.
다음날, 아침부터 뛰어다니는 아이들 덕분에 새벽같이 일어났다. 다들 떡진 머리와 개기름 작렬의 몰골로 좀비처럼 밥을 해먹었다. 난민캠프가 따로 없었다. 쳤던 그대로 1시간30분 동안 타프와 텐트를 철수하고 양평 옥천냉면에서 뒤풀이를 했다. 와잎은 냉면을 들이켜며 내 자리의 맥주까지 가져다가 따라 마셨다. 어제 안 마셨니? 와잎은 집에 오자마자 가서 개고생만 하고 술도 못 먹었다며 술판을 벌였다. 킬링캠프는 끝이 없었다. 난 절규했다. 와잎아~ 이제 칼럼도 끝인데 그만 좀 마시면 안 되겠니~.
장소협찬: 양평 꿈의 마을 오토캠핑장
* ‘X기자 부부의 킬링캠프’ 연재를 마칩니다. 3년여 동안 재미난 글을 써준 필자 부부와 애독해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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