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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형상을 입으니… 보기에 좋았더라

자기소개서부터 보고서·뉴스·선전물까지… 모바일 시대 새 매체로 각광받는 인포그래픽의 세계
등록 2013-09-06 14:15 수정 2020-05-03 04:27

최근 모 정보기술(IT) 업체로 회사를 옮기려던 김아무개(31)씨는 참고 삼아 비슷한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이력서 형식을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하다가 깜짝 놀랐다. 백지에 질러놓은 칸 안에 주소, 출신 학교, 경력 사항을 채워넣는 이력서는 고릿적 것이 돼버린 걸까. 딱딱한 표정의 증명사진 말고는 이미지라고는 찾아볼 수 없던 기존 이력서와 달리 정보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인포그래픽 이력서는 보는 이의 눈을 매료했다.

지난 8월29일 서울 마포구 상상마당전시장에서 열린 ‘어바웃 코리안: 인포그래픽으로 보는 대한민국 사람들의 24시간’전에서 관람객이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지난 8월29일 서울 마포구 상상마당전시장에서 열린 ‘어바웃 코리안: 인포그래픽으로 보는 대한민국 사람들의 24시간’전에서 관람객이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대학에서 환경공학을 전공한 라용(25)씨는 졸업 뒤 전공과 관련된 일을 하다 현재 소셜마케팅 회사에서 그래픽디자인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전공을 바꿔 디자인을 공부하던 중 여러 영역 가운데 인포그래픽에 매력을 느꼈다. 복잡하거나 긴 이야기를 단순하고 쉽게 정리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라용씨의 인포그래픽 이력서에는 그가 전공을 살려 해온 일, 디자인을 새로 공부하며 기울인 노력, 자신의 관심사(환경)와 엔지니어와 디자이너의 역량을 어떻게 발휘할지에 대한 목표 등이 한 페이지 안에 요약돼 있다.

원조는 구석기 시대 동굴벽화

인포그래픽은 정보를 뜻하는 인포메이션(Information)과 시각적 형상물인 그래픽(Graphic)의 합성어다. 단어 그대로 ‘정보를 담은 시각물’이라는 뜻이다. 사실 인포그래픽은 어디에나 있었다. 캐나다의 소셜미디어 전문가 마크 스미시클라스는 기원전 3만년, 구석기 시대의 동굴벽화에서 인포그래픽의 역사를 찾는다. 상형문자도 좋은 인포그래픽의 예이고, 수학 시간에 배운 밴다이어그램, 교통표지판, 지도, 신문과 TV 뉴스에서 숱하게 접하는 각종 도표도 인포그래픽이다. 문자메시지를 보낼 때 글자 대신 사용하는 이모티콘이나 표정 아이콘 같은 것, 최근 술집에서 떠도는 ‘소맥잔’도 인포그래픽의 한 예다. 인포그래픽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해온 것은 신문·잡지 등 전통적인 매체였다. 한정된 지면 안에서 압축적으로 정보를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소셜미디어가 각광받기 시작하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경로가 무수해지면서 인포그래픽이 제공되는 채널 또한 다양해졌고, 제공자와 이용자의 관심도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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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포그래픽 이력서가 한 사람의 이력과 인생사를 한 페이지에 담고 있다면 도시 한쪽에서는 한국 사람들의 하루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8월23~29일 서울 마포구 상상마당 전시장에서 열린 ‘어바웃 코리안: 인포그래픽으로 보는 대한민국 사람들의 24시간’전은 통계청 자료를 기반으로 한국 사람들의 24시간을 여러 주제로 나눠 인포그래픽으로 표현했다. 한국인의 수면 시간, 잠버릇, 평균 식사 시간, 외모 관리에 쓰는 시간, 근로 시간, 남녀 간 집안일에 소요하는 시간, 공부 시간, 출퇴근 시간 등을 표현한 도표와 그림이 전시됐다.

흥미로운 것은, 각 주제에 대한 시각물을 보고 우리의 일상이 어떻게 구성되고 어떤 변화를 거쳐왔는지 유추를 통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예컨대 한국인의 평균 수면 시간은 2013년 현재 총 6시간45분으로, 2004년에 비해 1시간1분이 줄었다. 그렇다면 줄어든 수면 시간을 우리는 어디에 사용하는 걸까. 2004년과 2009년의 출퇴근 시간 변화를 나타낸 도표를 보니, 어쩌면 우리는 잠자는 시간을 줄여 길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인의 하루 평균 출퇴근 시간은 2004년 평균 61분에서 2009년 평균 65분으로 늘었다. 제주·전북·광주를 제외한 대한민국 전 지역에서 출퇴근에 소모되는 시간이 해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었다.

시각물이 만들어내는 풍부한 이야기들

이외에 급격히 줄어가는 공부량의 변화도 흥미로웠다. 한국인 중 가장 공부를 많이 하는 연령층은 고등학생으로 하루 평균 554분 공부했고 그 이후로 급격히 줄어간다. 초등학생 때부터 서서히 키를 높여가는 그래프는 고등학생에서 정점을 찍고 이후 급하강하는 모양을 보였다. 대학생은 227분으로 초등학생 374분보다 적었고, 성인은 11분, 노인은 0분 공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나라 사람들의 일상과 비교한 도표도 눈길을 끌었다. 한국 사람들의 식사 시간이 짧은 편이라고 하는데 정말일까? 하지만 결과는 의외였다. 한국인의 하루 평균 식사 시간은 간식 먹는 시간을 포함해 총 1시간45분으로, 멕시코·캐나다·미국·핀란드·노르웨이 등보다 길고 프랑스·뉴질랜드·일본보다는 짧았다. 비교한 17개국 중 한국인의 식사 시간은 10위로 중간 정도에 위치했다.

관람객은 전시를 보면서 자신의 도표와 비교하며 자신의 일상을 이야기했다. 인포그래픽이 데이터를 시각화한 기존 도표나 그래픽과 다른 점은 이렇게 스토리텔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석진·김미리)에서는 기존 데이터 시각화와 인포그래픽을 다음과 같이 구분했다. “정보가 사실-통계-시각화-비교의 단계까지 거치는 것이 데이터 시각화, 여기서 더 나아가 콘셉트와 스토리가 있으며 수용자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인포그래픽”이라는 것이다.

‘어바웃 코리안’전을 기획한 인포그래픽 전문 회사 바이스버사스튜디오 김묘영 대표 또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인포그래픽의 중요한 부분은 정확한 핵심 메시지가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인구통계를 그래픽으로 나타낸 것은 메시지가 없다, 그냥 수치를 그래픽으로 나타낸 것일 뿐. 하지만 만약 한국 인구가 전세계에서 가장 빨리 줄어들고 있다, 이런 게 있다면 그래픽에서 그 내용을 반영해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것은 핵심 메시지가 있으므로 인포그래픽이 된다.”

인포그래픽이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디자인 및 마케팅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소비되는 정보의 양이 많아짐에 따라 사람들이 매체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마크 스미시클라스는 책 에서 웹 전문가 제이콥 닐슨의 말을 빌려 이렇게 설명했다. “인터넷 사용자들의 온라인 활동을 20년째 연구해온 그는 우리가 온라인에서 글을 거의 읽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보통 웹페이지를 보면서 글 부분은 20% 정도밖에 읽지 않는 것이 평균이었다.” 더불어 인터넷 사용자는 여러 사이트에 동시에 접속해 최대한 다양한 면을 통해 정보를 얻으려는 경향을 보이는데, 그 결과 “더 많은 콘텐츠를 접하게 되지만 주의가 분산되면서 관심의 깊이는 얕아진다”고 말한다.

기업·정부기관도 도입에 적극적

태블릿PC와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소셜 매체를 사용하는 사람이 급증하면서, 인포그래픽에 깊이 관여하기 시작한 쪽은 기업들이다. 인포그래픽은 빨리 전파되는 특성이 있다. 미국 소셜미디어 서비스 LLC의 최고경영자(CEO) 제이슨 폴스는 “인포그래픽을 올릴 때는 사람들을 붙잡고 장문의 글을 읽어달라고 부탁할 필요가 없다. 매력적인 인포그래픽에 핵심 메시지를 요약해놓으면 사람들이 한눈에 보고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며 인포그래픽에 유용한 정보가 담겨 있으면 사람들이 지인과 공유할 확률이 매우 높음을 설명했다. 기업은 제품 설명, 기업 이미지 구축을 위한 캠페인, 보고서 발표 등에 인포그래픽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최근 정부기관에서도 정책 설명을 위해 인포그래픽을 활용하는 추세다. 미국 버락 오바마 정부가 후보 시절부터 인포그래픽을 적극 활용했던 예를 눈여겨본 듯하다. 오바마는 2012년 미국 대선에서 ‘줄리아의 인생’이라는 인포그래픽을 만들어 가상의 인물 줄리아가 오바마 정부를 선택하거나 밋 롬니 정부를 선택했을 때 실제 삶에 어떤 영향을 받을지, 3살부터 67살까지의 생애주기를 12개 시기로 나눠 보여줬다. 롬니 쪽에서 격렬한 반발이 일어나고 논란에 휩싸였지만 어쨌거나 전략적으로는 성공한 셈이다. 공화당이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여성 정책에 대해, 어려운 내용을 쉽게 설명해 유권자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더불어 인포그래픽은 사람들이 그림을 통째로 공유하기 때문에, 텍스트처럼 일부를 잘라 인용하거나 와전될 가능성이 적어 메시지를 있는 그대로 전파하는 것이 가능하다.

인포그래픽은 숫자와 글로 이뤄진 복잡한 정보를 메시지를 담아 시각화한 작업이다. 해외 유명 축구·야구 구단의 가치, 라디오부터 페이스북이 사용자 5천만 명을 돌파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 블로거 라용씨의 이력을 한 페이지에 정리한 인포그래픽.

인포그래픽은 숫자와 글로 이뤄진 복잡한 정보를 메시지를 담아 시각화한 작업이다. 해외 유명 축구·야구 구단의 가치, 라디오부터 페이스북이 사용자 5천만 명을 돌파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 블로거 라용씨의 이력을 한 페이지에 정리한 인포그래픽.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는 2012년 10월 ‘모바일 뉴스의 미래’라는 자료를 발표했다. 사람들이 태블릿PC와 스마트폰을 이용해 가장 많이 하는 활동을 조사한 결과, 전자우편 수신 다음으로 높은 비율이 뉴스 검색이었다. 한국인터넷진흥원이 발표한 2012년 상반기 스마트폰 이용실태 조사에서도 이용자의 79.2%가 ‘뉴스나 새로운 소식을 더 빨리 알게 되었다’고 답해 사람들이 뉴스나 정보 습득 활동에 스마트폰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는 점이 나타났다. 디지털 기기로 뉴스를 접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기존 뉴스 제공 매체 외에 새로운 뉴스 유형을 시도하는 매체가 나타났다.

쌍방향성 구현한 ‘인터랙티브 인포그래픽’도

복잡한 뉴스 사안을 한눈에 이해할 수 있다면 어떨까. 혹은 내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뉴스를 누군가 인포그래픽으로 가공해준다면? 지난 7월 문을 연 ‘비주얼다이브’는 인포그래픽 뉴스 플랫폼이다. 비주얼다이브 은종진 대표는 “점점 통신 속도가 빨라지고 좋은 기기가 나타남에 따라 사람들은 오히려 텍스트를 읽고 싶어 하지 않는 경향이 나타난다. 텍스트형 기사가 사라질 수는 없겠지만, 앞으로 구글 글래스 같은 것이 실생활에 도입된다면 한눈에 빨리 보고 빨리 취할 수 있는 형태로 변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며 인포그래픽 뉴스 사이트를 개설한 배경을 설명했다. 몇몇 국내 언론매체에서 인포그래픽 뉴스를 전달하고 있지만 비주얼다이브는 뉴스를 제공하는 정통 언론사의 역할보다는 일반 독자도 기자가 될 수 있는, 뉴스 플랫폼의 역할에 집중할 계획이다. 예컨대 이용자가 시민기자와 같은 형식으로 참여해 뉴스를 비주얼다이브에 제공하고 회사는 이를 무료로 인포그래픽으로 가공해 더 많은 이용자들과 공유하는 방식이다. 내년쯤에는 디자이너가 아니더라도 직접 인포그래픽을 제작할 수 있도록, 인포그래픽 툴 서비스도 제공할 계획이다.

기존에 인포그래픽 뉴스를 제공해오던 전통 매체들도 주로 통계 수치를 이미지화해 정리하는 수준의 인포그래픽을 이용 매체의 변화에 따라 발전을 꾀하고 있다. 모바일 기기에서 보기 편하도록 아래로 긴 형태로 이미지를 제작하는가 하면, 독자가 마우스의 움직임에 따라 상호 소통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인터랙티브 인포그래픽’도 시도한다. 이외에도 원데이터부터 그것이 어떻게 선택되고 활용되고 해석되는지의 과정 전체를 공유하는 ‘오픈 데이터’ 운동을 2009년부터 지속해온 영국 일간지 의 데이터 블로그 등도 국내 매체들의 벤치마킹 대상이다.

“스토리텔링 뛰어나야 좋은 인포그래픽”

사람들의 일상을, 한 사람의 이력을, 넘치는 뉴스며 어려운 정책이나 구구절절한 캠페인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표현한 인포그래픽은 앞으로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될 전망이다. 누구나 이해하기 쉽다는 장점도 앞으로 대중화하는 데 기여할 듯하다. 점점 더 많은 정보가 인포그래픽으로 가공되는 가운데, 가치 있는 인포그래픽과 아닌 것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바이스버스스튜디오의 김묘영·정다은 대표는 과의 인터뷰에서 “잘 만든 인포그래픽은 스토리텔링을 잘하고, 그 스토리를 뒷받침하는 계산된 그래픽이 따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좋은 인포그래픽은 오류를 주지 않는 인포그래픽이기도 하다. 주제를 전달하는 데 방해하는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나쁜 인포그래픽이다. 두 대표는 인포그래픽 이용자가 주의해서 봐야 할 부분이 있다고 전했다. “예컨대 업계에 있는 사람들끼리 속되게 그래프로 사기 치기 정말 쉽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실제 지난해 선거 인포그래픽을 보면, 예컨대 지지율을 막대그래프로 표현했다. 막대만 잇으면 재미없으니까 후보 사진을 막대 위에 얹어놓는다. 그러면 그래프의 끝을 어디로 봐야 할까. 막대 끝일까, 사진의 끝일까. 지지율이 50%가 넘지 않는데, 절반이 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이런 경우 정말 잘못된 인포그래픽이다. 독자에게 친절하게 보여주려 한 것이겠지만 조그만 부주의가 실제로는 엄청난 착오를 일으킬 수도 있는 것이다.”

*참고 문헌: (마크 시미시클라스 지음, 에이콘 펴냄), (우석진·김미리 지음, 샌들코어 펴냄), 11호 ‘빅데이터 시대에 효과적인 시각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인포그래픽 연구’(최진원·김이연)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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