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의 김성수 감독이 10년 만에 ‘감기 바이러스’를 가지고 돌아왔다. 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치사율 100%의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창궐하자 봉쇄와 격리 조치가 취해진다는 설정의 대규모 감염 재난 영화다. 영화는 재난과 더불어 국가가 재난을 관리하는 방식을 보여주며, 근원적인 정치영화의 성격을 띤다. 김성수 감독을 만나 영화를 보고 풀리지 않은 의문을 묻고 답을 들었다.
“만인을 향한 만인의 만행이랄까”
황진미(이하 황): 수애와 장혁이 만나는 앞부분이 좀 어수선하다. 도 만들었지만 로맨틱 코미디가 주 종목은 아닌데 왜 넣었나.
김성수(이하 김): 로맨틱 코미디를 잘 못 만든다. 원래 도입부에 컨테이너가 출발해서 오기까지 끔찍한 장면이 있었는데, 시작은 가벼워야 한단 생각에 덜어냈다. 태평성대에 재난이 터져야 대비가 되니까. 수애 모녀와 장혁이 유사가족을 이루려면 급격히 친해지는 과정이 필요하고, 장혁이 얼마나 순박한 사람인지 보여주고 싶어서 로맨틱 코미디를 넣었는데, 과잉으로 보일 수도 있다.
황: 병기(이희준)와 국환(마동석)의 캐릭터는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병기는 왜 그리 폭주하는가. 국환은 경력, 능력, 권한 등이 모두 미스터리하다.
김: 병기는 불법 이민 일에 동생을 끌어들여 죽게 했다는 죄책감을 느끼는 인물이다. 바이러스 보균자인 몽싸이를 찾고 죽이는 과정에서 두 명의 군인과 엮이는데, 그게 편집됐다. 국환은 재난 상황을 지휘한 경험이 있는 전직 군인인데, 자기가 감염되자 혼자 살겠다고 선전·선동을 하며 그 틈에 빠져나가려는 권력지향적인 인물이다.
황: 몇몇 단점이 있지만, 압도적인 장면 두 개로 다 용서가 된다. 하나는 살처분 장면인데, 홀로코스트 영화나 좀비 재난물에서도 한 번 본 적 없는 끔찍한 장면이다. 인간에 대한 모멸감으로 잊히질 않는데, 어떻게 구상한 건가.
김: 칭찬으로 들린다. 구제역 파동 때, 동물보호협회가 찍은 영상을 보고 해머로 맞은 듯 일주일간 멍했다. 비닐백도 마취제도 떨어져 구덩이에 생매장당하는 돼지들. 소리랑 돼지 입김이랑 냄새까지…. 4D 영상을 보는 듯했다. 너희 인간도 똑같이 당하게 되리라는 돼지들의 저주가 들렸다. 질병관리본부에서 일한 분께 자문받으며 인간에게 이런 질병이 퍼지면 어찌되나 물었더니, 잡아다 묻고 불태워야 한다고 말하더라.
황: 감염재난 영화를 많이 보았나. 정교한 재난영화인 보다 국가에 의한 봉쇄와 살육을 그린 가 연상됐다.
김: 두 영화 정말 잘 만들었더라, 그 외에도 많이 봤다.
황: 감염전문의 수애와 구조대원 장혁이 재난 상황에서 자기 자리를 이탈해 개인 자격으로 감염캠프에 간다. 전문가들이 제 역할을 못하는 것은 전문성을 떨어뜨리는 구조 아닌가.
김: 원래 재난이 무차별적이다. 재난 앞에서 사람들은 본분을 잃고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치게 된다. 만인을 향한 만인의 만행이랄까. 수애는 가장 먼저 재난을 알고 뭔가 해보려 하지만 할 수 있는 게 없다. 난 수애가 그 자리에 있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일부러 낙오시켰다. 수애는 딸이 감염되자 의사의 본분을 완전히 잃고 이기적으로 행동한다. 반면 장혁은 개인이 되어서도 이타적으로 행동한다. 주로 이기적인 개인과 어쩌다 이타적인 개인이 만나 연대하는 것, 난 이게 더 맞다고 생각한다.
“개인으로 만나 시민으로 연대하는 힘”황: 할리우드 영화에선 소방서장이 영웅이고 일본 영화에선 간호사가 영웅적으로 순직하지만, 한국 재난영화에선 직업을 걸고 영웅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없다. 에선 하층민 가족이 노숙자와 연대해 싸우고, 에선 주인공이 원래 과학자이지만 그냥 트럭으로 들이받고 공장노동자와 연대한다. 한국 사회의 정서를 반영한 특징이라고 봐야 할까.
김: 할리우드 영화에서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영웅적으로 행동하는 건 거짓이라고 생각한다. 고급정보를 가진 이들은 정보를 사유화하지 공익에 기여하지 않는다. 일본은 재난 대비가 잘된 사회라고 하지만, 주어진 틀 안에서 수동적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급격히 우경화되는 것도 시민사회적 자율성이 부족한 탓일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선, 흔히 계급장 떼고 붙자고 말하지 않나. 현실에서든 영화에서든 계급장 떼고 개인으로 만나 시민으로 연대하는 식이다. 마지막 대치 상황에서 시민들이 스크럼을 짜고 아이를 보호하지 않나. 그런 것이 진짜 건강한 힘이라고 생각한다.
황: 대치 상황에서 광주 민주화운동을 연상하는 관객도 많더라. 그런데 가족이 상봉하고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으로 중계되는 건 너무 신파적이지 않나.
김: 광주를 염두에 둔 건 아니었다. 미술감독이 때 작업한 사람이라 비슷한 느낌이 날 수도 있지만. 신파적인 건 인정한다. 정보를 가졌지만 이기적인 모성으로 행동한 개인, 선한 의지를 지닌 남자, 그리고 그들에 의해 살아남은 아이. 여기서 아이는 보호받아야 할 약자이자, 다른 이들을 살릴 수 있는 항체, 즉 희망의 상징이다. 아이가 엄마를 향해 뛰고, 엄마가 아이를 향해 달려오는 건 본능이다. 총격이 벌어지는 위기 상황에서 시민들이 군인과 맞서며 유사가족을 지키고, 대통령은 반대 세력과 싸워 폭격을 막아내는 것을 교차편집했다. 시민들의 힘과 지도자의 정의감이 벌이는 두 개의 싸움이 같은 것으로 비치길 원했다.
황: 거기서 미국인의 직급은 뭔가. 주한미군사령관이라면 왜 양복을 입었나. 주한미대사인가, 아니면 무슨 특사인가.
김: 일부러 애매하게 처리하려고 했다. 주한미군사령관은 뒤에 있는 군복 입은 사람이다. 그는 미 국무부나 미 육군 소속의 익명의 존재로, 미국 정부의 권한을 위임받은 특사쯤 되는 인물이다.
황: 대통령중심제인 나라에서 어떻게 총리가 임명권자인 대통령에 맞서 발포 명령을 내릴 수 있는가.
김: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 있다. 원래는 총리와 미국인의 회동 장면이 있었는데 편집됐다. 총리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자기 책임을 모면하기 원하고, 누군가의 강력한 결정에 따라가기 원하는 관료집단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는 재난이 빨리 수습돼 대한민국의 근간이 흔들리지 않기를 원해 분당 봉쇄에 찬성해왔다. 분당에서 통제선이 무너지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폭동 상황이 오자 그는 또 빨리 대처하느라 발포 명령을 내린 것이다. 구제역 때 왜 300만 마리의 돼지가 생매장을 당해야 했는지도 생각해보면 그런 관료적인 인물들의 결정에 의한 것이다. 대통령(차인표)은 그런 관료들과는 좀 달리 사고하는 인물이고.
“내가 살처분 명령 안했다고 책임 없나”황: 대통령을 묘사하는 데 모델이 있었나.
김: 존재하기 불가능한 인물이다. 2011년 초에 구제역이 있었고, 2011년 말에 제작이 구체화됐는데, 그때부터 대권 주자들에 대한 관심이 치솟더라. 난 누구를 염두에 둔 건 아니고, 지난 정권을 경험하면서 저 위치에 좀더 선량하고 정의롭고 잘생긴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맘때 차인표가 나오는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진짜 괜찮은 사람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캐스팅했다. 본인은 연기 톤을 걱정했지만, 진정성이 느껴져서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나 생각된다.
황: 군작전통제권까지 언급할 줄 몰랐다. 신인감독이었다면 엄두 못 냈을 뚝심이다.
김: ‘테러와의 전쟁’을 비롯해서, 미국이 어떤 세력에게 무력을 제공하는지가 세계질서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우리나라에 대규모 감염 사태가 벌어져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면 미국에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다. 미국은 이를 동아시아 정치, 안보, 외교, 군사 문제로 파악해 미국의 이익에 근거해서 판단할 것이다. 누가 적이고 언제가 전시 상황인지 판단하는 권한도 미국에 있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군작전통제권까지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황: 재난영화라기보다 정치영화 같다. 감염보다 감염에 대처하는 국가의 방식을 보여주는 영화지 않나. 하기야 방역, 검역, 격리 등이 국가의 통치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지점이지만.
김: 재난 상황에서 국가는 국가 자체의 논리가 있다. 울타리를 치는 순간 끝이다. 울타리 밖에선 울타리가 부서지지 않는 범위에서 문제가 해결되길 원한다. 울타리 안에서 느끼는 것과 완전히 다르다. 누가 발포 명령을 내리는가, 누가 살처분을 지시하는가는 문제가 아니다. 이런 식의 해결 구조가 문제다. 내가 살처분을 명령하지 않았다고 책임이 없는 게 아니다. 울타리를 치고 그 안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처리하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것!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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