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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도착한 가장 원초적인 서바이벌

긴 설명 없이도 보는 이를 흥분하게 만드는 춤이라는 언어… 춤출 무대에 목마른 프로들의 경연 tvN <댄싱9>
등록 2013-08-21 13:22 수정 2020-05-03 04:27

“왜 본선에 올라가는 사람들은 죄다 댄서들일까요?” 지금은 폐지된 tvN 가 한창 방송되던 시절, 사람들은 종종 내게 댄서들의 선전 비결을 물었다. 마치 한때 한국 프로야구를 ‘8개 팀이 내내 공놀이를 하다가 가을이면 SK가 우승하는 종목’으로 거칠게 요약할 수 있었던 것처럼, 는 다양한 재능을 지닌 사람들이 나와서 경쟁하다가 결국 댄서가 이기는 종류의 오디션이 되었다. 시즌1의 우승자 주민정, 시즌2의 우승자 BWB 모두 댄서였다. 대답은 간단했다. “한국엔 (, 미국 FOX 채널) 같은 댄스 오디션이 없으니까요.”

괴짜 캐릭터 등장할 틈도 없이

노래하는 이들이야 Mnet 나 SBS , MBC , KBS 처럼 대중 앞에 자신을 선보일 창구가 많았지만 댄서들은 사정이 달랐다. 세계 대회에서 1등을 하고 돌아와도 한국에선 행사나 학원 교습 외에 춤으로 수익을 내기가 어려운 상황. 대중과 한 번이라도 더 만나는 것이 댄서들에겐 절실한 일이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지난해 대선 무렵엔 단순 공연인 줄 알고 행사장에 갔던 비보이들이 얼결에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지지선언에 동원된 해프닝도 있었다. 댄서들이 대중과 접점을 확보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창구는 처럼 참여 종목에 제한이 없는 프로그램 정도였다. 내로라하는 댄서들이 이 프로그램에 몰린 것도 이상할 일이 아니었다.

은 실력파 댄서들이 만드는 밀도 있는 무대로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나머지는 댄서들이 그려내는 선을 제작진이 얼마나 고민해 담아내느냐에 달렸다. tvN 제공

은 실력파 댄서들이 만드는 밀도 있는 무대로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나머지는 댄서들이 그려내는 선을 제작진이 얼마나 고민해 담아내느냐에 달렸다. tvN 제공

같은 CJ 계열의 Mnet에서 란 프로그램을 준비한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많은 이들이 댄스 프로그램의 성공 전례가 없는 한국에서 과연 이게 가능할까 반신반의하면서도 일단은 환영한 것에는 그런 속사정이 있었다. 뚜껑을 열어본 는 과연 밀도가 굉장한 프로그램이었다. 어디서 실력파 댄서들이 그렇게 많이 등장했는지, 낸시랭 정도를 제외하면 김용범 CP의 전작인 처럼 괴짜 캐릭터들을 예선에 등장시킬 틈도 별로 없었다. 본질적으로는 아마추어들의 경쟁이던 와 달리 는 이미 거의 프로에 가까운 댄서들이 주를 이룬다. 자연스레 프로그램의 밀도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무엇보다 춤이라는 예술이 지닌 장르 자체의 특성이다. 박자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단순하면서도 원초적인 예술인 춤은 긴 설명이 없이도 보는 이들을 흥분시키는 파괴력을 지닌다. 노래나 문학과는 달리 춤에는 언어의 장벽이 없고, 박자를 느끼며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 소통이 가능하다. 마치 격렬한 스포츠 경기를 관람할 때 딱히 응원하는 팀 없이 선수들의 육체가 움직이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것처럼, 훌륭한 춤은 보는 이들의 육체에 자극을 전염시킨다. 크럼핑을 추는 음문석이 온몸의 근육을 튕기며 넘치는 힘을 표현할 때, 현대무용의 이선태가 뱀처럼 몸을 도사리고 있다가 독수리처럼 허공으로 솟구쳐오를 때,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보던 시청자의 몸도 함께 꿈틀거린다.

댄서가 도약하는 순간 카메라는

아직 풀피규어(댄서의 전신을 보여주는 화면 구도)를 운용하는 법이나 심사위원들의 반응 쇼트를 삽입하는 장면에서 타이밍 오류를 보이는 등 시행착오가 눈에 띄긴 한다. 하지만 제작진은 춤이란 예술을 화면에 어떻게 담아낼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듯하다. 이 또한 가 지닌 힘이다. 춤은 음악과 달리 시선을 다른 곳에 두고 즐기는 게 애초부터 불가능한 예술이다. 그만큼 시청자의 집중력도 올라가지만, 춤의 리듬과 흐름을 제대로 잡아내지 못한다면 그 집중력은 금세 흐트러질 수밖에 없다. 한국무용으로 참가한 최한빛의 무대에서 제작진은 최한빛이 치마를 너풀거리며 무대 전체를 활용하는 모습을 풀피규어로 보여주되, 표정과 팔이 움직이는 선을 강조해야 하는 순간엔 상체 위주의 쇼트로 타이트하게 들어간다. 김홍인과 김분선이 함께 아델의 (Rolling in the deep)에 맞춰 꾸민 무대에서 각자의 안무를 추던 두 사람이 함께 춤을 추며 무대 오른쪽 허공으로 도약하는 순간, 카메라는 미리 무대 오른쪽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달려오는 두 사람을 향해 함께 전진하며 속도감을 강조한다. 결국 댄서들의 힘과 그들의 몸이 그려내는 선을 얼마나 잘 담아내느냐가 프로그램의 생명인 것이다.
시청자의 귀와 감성을 자극하던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이 우후죽순 생겨났다가 져버린 이후 한쪽에서는 tvN 처럼 보는 이들의 두뇌를 자극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성공을 거뒀다. 다른 한쪽에선 올리브TV 처럼 TV로는 직접 경험할 수 없는 맛을 말로 설명해 풀어주며 상상력을 자극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그 모든 프로그램의 끝에, 마침내 보는 이들의 육체를 자극하는 가장 원초적인 프로그램이 도착했다.
이승한 TV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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