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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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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를 보며 각자가 그린 것

일본의 제안으로 시작됐지만 출판되지 못한
위안부 그림책 <꽃할머니>, 출판 과정에서 부딪히는 반일과
여성주의, 양심과 현실 다룬 다큐 <내가 그리고 싶은 것>
등록 2013-08-14 16:50 수정 2020-05-03 04:27

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를 그리는 권윤덕 그림책 작가의 작업 과정을 ‘그리는’ 다큐멘터리다. ‘위안부’라는 역사적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이제 이것을 해석하는 문제가 남는다. 여기엔 단순하지 않은 정치학이 개입한다. 한국인 안에서도 반일 감정과 여성주의가 섞이고 경합한다. 일본에는 우익이 있고, 사죄를 원하는 이도 있지만, 우익의 압력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이도 있다. 권효 감독의 다큐멘터리 에는, 이런 입장에서 각자 ‘그리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담겨 있다.
‘괜찮은’ 일본인의 한계와 현실의 벽
“가해자인 우리 쪽에서 제안하는 것이 좋겠다.” 일본의 저명한 그림책 작가는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가 날로 심각해지는 것을 보면서 한·중·일 그림책 작가들에게 평화를 주제로 그림책을 그리자고 제안한다. 권윤덕 작가는 이런 제안을 받고 ‘위안부’ 문제를 그리겠다고 한다. 일본 작가들은 “가슴이 철렁한 일이지만” 기꺼이 반긴다. ‘위안부’ 피해자 심달현 할머니의 증언집을 읽은 작가는 그의 이야기를 그리기로 작정한다. 꽃을 말려서 작품을 만드는 할머니의 마음을 닮아 그림책은 ‘꽃할머니’라는 이름을 얻는다.

욱일승천기 문제를 놓고 한국 출판사 관계자, 작가와 논쟁을 벌이는 권윤덕씨(위 맨 오른쪽). 그가 그림책  헌정식에서 심달현 할머니께 책을 드리고 있다.시네마달 제공

욱일승천기 문제를 놓고 한국 출판사 관계자, 작가와 논쟁을 벌이는 권윤덕씨(위 맨 오른쪽). 그가 그림책 헌정식에서 심달현 할머니께 책을 드리고 있다.시네마달 제공

작품은 환대받지 못한다. 특히 일본 출판사는 그림 스케치를 보고 난색을 표한다. 그들이 원한 것은 “힘든 일을 겪었지만 힘차게 사는 개인사”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었다. 그러나 권 작가는 ‘국가폭력’을 그리고 싶어 한다.

콘돔과 일왕의 얼굴을 대비하는 그림 같은 것에 일본 출판사는 우익의 반발, 일본의 성문화 등을 대며 우려를 표한다. ‘위안부’ 그림책을 출간하려는 의지를 가진 ‘괜찮은’ 일본인들이 가지는 한계와 이들이 부딪히는 현실의 벽이 얼핏 보인다. 결국 작가는 그림을 수정하기로 하는데, 그림을 본 아이들의 반응이 기대와 달랐기 때문이다.

그림책을 그려가며 조금씩 변해가는 작가의 관점이 보인다. 작가는 갈수록 ‘전쟁’의 문제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기운다. 반일 문제에 가려진 전쟁의 책임을 묻는 그림을 그리려 한다. 이번엔 한국 남성들과 충돌이 생긴다. 같이 일하는 남성들은 군함에 욱일승천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 왜 없느냐고 묻는다. 작가는 “세계 어딘가에서 일어난 끔찍한 일”이자 “전쟁에 따라오는 폭력”으로 ‘위안부’ 문제를 그리려 하지만, 이해를 얻기란 쉽지 않다.

몰이해 속에서도 작가는 알고 있다. “대중과 내 감정 사이의 공백을 메우는 일”이 자신의 역할이란 것을. 이렇게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을 그려도 충분한 이해를 받지 못하지만, 그가 작품에 몰입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피해 기억도 또렷하지 않고 말도 더듬거리는” 심달현 할머니를 택한 이유를 통해 작가의 상처가 드러난다. 그도 생각나지 않을 만큼의 고통을 가지고 살기 때문이다. 그가 “누구보다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이유가 밝혀지면서, 은 ‘위안부’ 다큐멘터리로 새 층위를 얻는다. 그리고 다큐는 작가의 치유 과정을 그리는 작품이 되기도 한다.

김여진 목소리, 소규모아카시아밴드 음악

은 ‘위안부’ 문제를 다룬 그림책 가 왜 일본에서 출간되지 않느냐는 문제를 다룬 것처럼 보이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복잡한 문제 를 담고 있다. 의 그림에서 할머니를 향하는 건 일본군의 총구만이 아니다. 돌아온 땅에서, 손가락질 하는 손들도 할머니를 향한다. 총알과 손가락질, 남근을 닮은 형상들이 국경을 넘어 여성을 괴롭혀왔음을 그림 은 증언한다. 가 출간되고 심달현 할머니에게 헌정식을 하는 날, 함께 애써온 일본의 여성 작가가 할머 니의 손을 잡고 우는 장면은 지금껏 보아온 화해의 장면 가운데 드물게 심금을 울린다. 할머니와 작가가 서로 손 잡고 반가워하거나 병실에 누운 할머니를 찾아가는 모 습은 피해자와 피해자가 서로를 위로하는 자매애의 다 큐로 읽힌다.

몇 년에 걸친 작업 끝에 는 일본 작가의 표 현처럼 “조용한 아름다움으로 충만한 작품”으로 태어난 다. 평화를 주제로 한·중·일 작가들이 그린 그림책이 모 두 동시에 출간된 것과 달리, 는 아직까지 일 본에서 출간되지 못했다. 이런 사정을 통해 일본의 ‘괜찮 은’ 이들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이들이 처한 ‘후쿠시마 재앙’ 이후의 상황이 어떤지도 보인다.

8월15일 개봉하는 은 시민의 힘 으로 상영된다. 지난 7월4일 시작된 개봉 후원 프로젝트 에 400여 명의 시민이 참여한 것이다. 여기에 유명인들 도 힘을 보탰다. 배우 김여진은 동화 구현에 목소리를 보 태고, 소규모아카시아밴드는 음악을 더하고, 권해효는 후원에 참여했다. 1990년대부터 이어져온 ‘위안부’ 할머 니 다큐멘터리의 계보를 기억하며 영화를 보는 것도 좋 겠다. 할머니들을 다룬 최초의 다큐 3부 작이 있었고, 재일조선인 위안부 송신도 할머니의 생애 를 그린 도 있었다. 은 ‘세상에 자신을 알린 위안부 피해자는 237명이고, 현재 58명의 생존자가 남았다’는 자막으로 끝난다. 지금, ‘위안부’ 문제를 둘러싸고 우리가, 내가 그 리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다큐는 묻는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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