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대한민국 10대의 학창 시절을 인생의 가장 평온하고 순수한 때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자가 있을까. 만약 그렇게 말하며 향수와 추억에 젖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은 스스로를 속이고 있거나 망각과 외면의 길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혹은 그들은 진정 운 좋게도 지금보다는 낭만이 허락된 시대에 10대를 보냈을 것이다. 부모의 경제력에 좌우되는 아이들의 성적과 위상, 그렇게 서열화된 아이들이 한편에서는 그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다른 한편에서는 상실감을 버텨내기 위해 벌이는 온갖 악행과 비극의 현실은 이미 그 어떤 영화적 상상보다 더 ‘영화적’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들이 그 세계를 어른 세계의 축소판으로 도식화하거나 근심과 비판과 계몽의 대상으로 내려다보며 소비하고 있지만, 정작 그 세계 속의 우리는 자신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을까. 아니, 과연 우리는 현재진행형인 그 세계에 대해 얼마나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font size="3">“성장이 아니라 파괴에 대한 이야기”</font>
영화의 시작과 함께 교복을 입은 한 소년이 뒷산에서 죽은 채 발견된다. 그는 명문 사립고에서 전교 1등을 도맡았던 유진(성준)이다. 경찰은 ‘진학재’라는 우등생 특별반에서 유진과 함께 공부한 학생들의 진술에 따라 유진의 전 룸메이트 김준(이다윗)을 용의자로 지목한다. 하지만 김준은 어딘지 비밀스러운 표정으로 이를 부인하고 풀려난 뒤, 사제폭탄을 만들어 진학재의 비밀 스터디 그룹 ‘토끼사냥’ 멤버들을 인질로 잡는다.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토끼사냥’ 내부의 비밀과 김준이 이 조직의 일원이 되기 위해 한 일들, 그리고 결국 이렇게 그가 분노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밝힌다.
신수원 감독의 은 태양계 행성에서 퇴출된 명왕성의 운명을 상위 1%에 속하지 못하고 버려진 학생들의 현실에 빗댄다. 딱히 새로울 것 없는 진단이지만, 명왕성의 처지에 대한 김준의 논리만큼은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그는 명왕성을 퇴출된 별로 규정하는 시선에는 태양을 중심으로 행성의 크기와 질량, 궤도를 판단하는 전제가 있다고 반박한다. 달리 말해 전제와 중심을 뒤집으면 우리에게는 상위 1%와 거기 속하지 못하는 다수의 획일적인 현실이 아니라 무언가 전혀 다른 방식의 현실이 가능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을 보는 우리는 묻고 싶다. 이 영화는 그 전제를 부수려고 애쓰는 영화인가. 하지만 감독이 이 영화를 “성장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파괴에 대한 얘기”( 912호)라고 말할 때, 그는 전제의 파괴가 아니라, 그 전제 안에서 살아남으려는 자들의 자기파괴에 더 매혹을 느낀 것 같고, 현실적인 시급함보다 영화적인 흥미에 더 이끌린 것 같다.
에서 아이들이 자신들이 당면한 세계를 인식하고 대응하는 방식은 철저히 장르적으로 풀어진다. 배신과 음모와 살인의 먹이사슬로 유지되는 스터디그룹 ‘토끼사냥’의 메커니즘, 그룹에 속하기 위해 먹이사슬의 도구가 되어 가해자와 피해자를 오가는 아이들의 생존 방식 등은 (감독의 말대로) 극단적이고 위악적이다. 감독은 제도권 교육의 폭력성을 전면화한다는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 학교를 작위적인 행위와 비약이 허용되며 자동적으로 굴러가는 장르적 공간으로 그리는 방식을 택한다. 반면 간혹 등장해서 학교를 맴도는 어른들의 현실은 아이들이 겪는 극단적 장르의 세계를 결코 따라잡지 못한다. 어른들은 그저 방관하거나 그 세계에 개입하는 길을 찾지 못한다.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아이들의 세계에 근접하는 형사도 결국 지하실의 쇠창살 앞에 가로막혀 아이들의 자멸을 목도하고 무력하게 도망치고 만다.
영화는 이 극단적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들의 아우성을 제거하고 ‘토끼사냥’ 멤버들의 살려달라는 외침마저 제거한 다음, 그 어떤 방해도 받지 않는 진공상태에서 김준이 나지막이 속삭이는 죽음의 카운트다운 소리를 듣는다. 그 음성은 다른 누구도 아닌, 그 자신을 향한 것처럼 들리며 시스템에 대한 반란이 아닌 자기소멸의 충동에 가까워 보인다.
<font size="3">장르적 쾌감에 대한 욕망은 아닌가</font>이 두 세계의 괴리를 어쩔 것인가. 영화는 끝내 이 둘을 만나게 할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에서 가장 끔찍한 건 김준이 택한 파괴적인 엔딩이나 죽고 죽이며 살아남으려는 무한경쟁 체제 자체가 아니다. 영화로 보기에 잔혹하기는 해도, 우리가 지금껏 그런 현실을 몰랐다는 듯 구는 건 우스운 일이다. 정작 끔찍함은 다른 데 기인한다. 은 오늘날 아이들의 세계는 장르의 극단적 시선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는 데 반해, 어른들의 현실은 그 세계의 장르적인 외설성을 마치 괴이하고 낯선 게임을 보듯 쳐다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영화는 두 세계 사이의 간극을 필연처럼 내버려둔 채 전자는 장르의 끝으로 밀어붙여 자폭시키고 후자는 바리케이드 안쪽에서 그 폭발을 불안하고 무기력하게 바라보는 결론에 이른다. 하지만 영화가 한편에서는 이와 같은 간극을 마치 어쩔 수 없다는 듯, 실은 무리 없이 승인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아이들이 장르 밖으로 나오는 길을 끝내 차단할 때, 하나의 질문이 고개를 든다. 이 영화가 붙잡고 있는 건 현실에 대한 날선 근심을 외피로 쓴 장르적 쾌감에 대한 욕망 아닐까. 물론 우리가 이 영화를 조금이라도 즐겼다면, 우리 역시 그 물음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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