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하앓이’라는 말이 있다. 요즘 SBS 드라마 에 나오는 수하(이종석)에 빠진 언니들의 하악거림을 일컫는 말이다. 고등학생인 수하가 20대 후반인 장혜성(이보영) 변호사에게 어린 시절부터 꽂혀 순정과 헌신을 바치는 내용이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게다가 수하의 생김새가 결코 범상치 않다. 186cm의 기럭지에, 65kg의 호리호리한 체형. 어깨는 쫙 뻗었고, 얼굴은 작고, 이목구비는 연필소묘처럼 가늘고 섬세하다. 수하는 생김새도 우월하지만 오묘한 느낌이 있다. 극중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는 캐릭터에 걸맞게 뭔가 진중하고 아련한 신비감이 있다.
이종석은 올해 25살이지만, 여전히 교복이 잘 어울린다. 권상우가 데뷔 시절 교복이 무척 잘 어울렸던 것이 연상된다. 이종석은 소년 같은 미소가 있어서 10대인지 20대인지 잘 구분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10대의 얼굴에 성인 남자의 몸을 지녔기 때문에, 교복을 입으면 교복이 잘 어울리고, 슈트를 입으면 슈트가 잘 어울린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다. 이종석은 16살 때 서울 컬렉션 무대에 섰던 최연소 모델로 5년간 톱모델로 활동하다가 배우로 갈아탄 케이스다. 이종석은 가수가 되기 위해 3개월간 아이돌 래퍼로 연습한 경력도 있다고 하니, 모델·가수·배우 그랜드슬램을 달성할 뻔했다.
이종석이 연기자로 관객에게 각인된 것은 (2010) 때였다. 천재적 뮤지션이자 마성의 미소년 게이인 썬으로 분한 이종석은 극중 윤상현과 기묘한 감정의 줄다리기를 했다. “비켜, 바빠, 꺼져” 세 마디만 내뱉는 까칠하고 도도하며 싸가지가 없는 썬의 쿨하다 못해 서늘한 그 느낌까지 포함해, 이종석은 야오이 순정만화에서 방금 튀어나온 듯한 게이 캐릭터에 정말 잘 어울렸다. 그에 반해 에서 고남순 캐릭터는 살짝 힘을 뺀 듯한 담담한 표정이 일품이었다. 고남순은 일반적인 꽃미남 캐릭터와는 달리, 자의식을 내려놓은 듯 은근하고 심심하다. 그는 심드렁하고 무심한 듯한 표정을 짓는데, 그가 편안한 눈매로 상대와 지그시 눈맞춤을 할 때, 장난기를 머금은 듯한 입꼬리가 비죽이 올라가면서 박하사탕처럼 눈부신 치아가 여러 개 드러난다. 얼굴과 몸매에서 여백이 느껴지는 자연스러움이랄까. 이런 이미지는 여자로 치자면 이나영 같은 느낌인데, 그래서일까. 그는 이상형을 이나영이라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에서도 이종석과 커플을 이룬 사람은 김우빈이었다. 사랑하고 미워하고 용서하고 다시 절절히 그리워하는 두 남자의 멜로는 기막히게 잘 어울리는 ‘남남 케미스트리’를 낳았다. 영화 <r2b:>에서도 이종석은 남자와의 교감이 주효했다. 어리바리하면서 보호 본능을 불러일으키는 신참 조종사인 이종석은 구조대원인 정석원과 생사를 넘나드는 뜨거운(?) 감정을 교류했다.
때로는 동생처럼, 때로는 애인처럼
이종석은 남자와 잘 어울리는 한편 연상녀 킬러다. 그에게는 소년 같은 수줍음과 저돌성이 동시에 느껴진다. TV 단막극 에서 그는 띠동갑도 훨씬 넘는 유부녀를, 그것도 말기 암환자를, 그것도 남편과 여자친구를 지척에 두고, 첫눈에 반했다는 듯 사랑한다. 발랄한 또래 여친은 여자로 보이지 않고, 훌쩍 연상에 인생의 쓴맛을 아는 누나여야 진짜 여자로 느껴진다는 듯이. 영화 에서 이종석은 북한 탁구선수로 나왔다. 남북 단일팀에서 알게 된 남한 여자 탁구선수(최윤영)가 노골적으로 들이대자, 그는 수줍은 듯 무심한 듯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건 여자의 마음을 몰라서가 아니라, 더 깊이 정이 들까 염려하기 때문이다. 깊이 정들고 난 뒤 평생 만나지 못하고 그리워할까봐 마음을 주지 않는 속 깊은 순정이다.
이런 모든 이미지를 모아 의 수하가 탄생했다. 수하는 어린 시절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살인범을 단죄할 수 있도록 증언해준 용기 있는 누나를 10년 동안 그리워한다. 변호사가 된 장혜성을 다시 만난 수하는 껌딱지처럼 붙어다니며 장혜성을 살갑게 챙겨주고 든든하게 지켜준다. 때로는 동생처럼, 때로는 애인처럼. 눈을 보면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초능력을 지닌 그는 장혜성에게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길라잡이가 돼주고, 장혜성에게 복수하려는 살인자로부터 지켜주려 애쓴다. 담담한 응시로 마음을 읽고, 그 소리가 시끄러워 헤드폰을 끼고 다니는 그는 또래 여자와는 우정을 나누고, 연상의 여자와는 연민과 사랑과 이해를 나눈다. 쭉쭉 뻗은 다리로 격투기를 하고, 수묵담채화 같은 무표정과 오롯한 순정으로 한 여자를 지킨다. 적게 표현하지만 속이 깊고, 무덤덤하지만 넓은 배려심을 가진 몸 좋은 연하남이라니! 10대부터 30대까지 올킬이다.
황진미 영화평론가</r2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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