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 부를 때의 이용은 정말 대단했다. 비록 ‘관제 행사’라는 오명이 붙긴 했지만 ‘국풍 81 젊은이의 가요제’에서 로 인기 가수의 대열에 합류한 이용은 이듬해 발표한 로 최고 가수의 자리에 올랐다. 한때 한 해의 마지막을 장식하며 거의 국민적인 관심을 모은 MBC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난공불락 같았던 조용필을 왕좌의 자리에서 끌어내린 것이다. 이 발표된 1982년을 제외하고 조용필이 1980년부터 1986년까지 내리 ‘최고인기가수상’을 받았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이 일이 얼마나 대단한 ‘사건’인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font size="3">아이유가 부른 의 위력</font>
하지만 잠시나마 조용필의 자리를 위협했던 이용은 얼마 뒤 불미스러운 일로 한국을 떠났고 그 자리에는 노래만이 남았다. 노래를 부른 이는 한국에 없었지만 매해 ‘시월의 마지막 밤’은 늘 이용의 것이었다. 10월31일이 되면 라디오에선 어김없이 이 흘러나왔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이라는 노랫말 덕분이었다. 노래의 힘은 노래를 부른 가수를 계속 소환하고 환기시켰고, 결국 그가 다시 한국에 돌아와 가수로 활동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는 여전히 을 부른 가수 이용이었다.
시월의 마지막 밤도 아닌 7월 한여름 어느 날, 이 노래는 다시 한번 화제가 됐다. 영원한 스테디셀러일 것만 같던 이 노래도 10대 중심으로 재편된 라디오에선 제아무리 10월31일이라 하더라도 예전만큼 힘을 못 쓰며 ‘잊혀진 노래’로 주저앉은 상황이었다. 그랬던 노래가 갑작스레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른 것이다. 노래 제목 옆에는 다른 이름이 함께 붙어 있었다. 아이유. 가수 겸 배우 혹은 배우 겸 가수, 그 아이유였다. 아이유가 드라마 에서 을 불렀다. 원곡의 주인공인 이용까지 함께 화제가 됐고, 이용은 “참 잘한 노래였고 새로운 맛이 났다”고 화답했다.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이유란 이름을 검색하면 연관검색어로 이 가장 먼저 뜬다. 서로에게 좋은 선택이었고 좋은 결과였다.
철저하게 10대의, 10대에 의한, 10대를 위해 맞춰 제작된 드라마 에서도 옛 노래가 계속 등장한다. 단순히 배경음악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젊은 출연진들의 입을 통해 다시 불린다. 다희, 강하늘 등 출연자들이 신승훈의 나 동물원의 같은, 자신들이 태어나기도 전 혹은 미취학 아동일 때 나온 노래를 직접 부른다. 드라마에서 불린 노래는 주 시청자층인 10대에 의해 전파되며 다시 한번 화제의 중심에 오른다. 과 을 떼어 바라볼 수 없듯 잘 ‘사용한’ 노래 하나는 극 자체를 화제에 오르게 한다.
이 노래들이 다시금 사랑받는 데는 특별한 이유를 찾을 필요가 없다. 이들 옛 가요에 깃든 보편적인 멜로디와 노랫말이 가진 감수성은 결코 시대를 타지 않는다. 좋은 노래의 힘은 생각보다 세다. 과거의 좋은 노래들이 지금 어린 세대와 만날 수 있는 접점이 없을 뿐, 어떤 계기만 주어진다면 그 노래들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다시 불리고 사랑받을 충분한 매력이 있다. 더해서 직접 노래한 이들의 매력 역시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아이유는 매력적인 음색을 내세워 30년 전의 노래를 원곡 특유의 쓸쓸한 분위기를 살려 조숙하게 잘 소화했고, 의 출연자들은 극중 캐릭터의 매력과 다양한 연출을 통해 노래를 더 젊게 만들며 비슷한 또래의 시청자에게도 거리감 없이 원곡이 가진 매력을 전한다.
노래의 힘만큼이나 추억의 힘은 세다. 팬덤과 팬이 아닌 사람들 사이에 호오가 크게 갈렸던 H.O.T와 젝스키스까지도 추억 마케팅으로 활용되는 세상이다. 직접 노래를 부르는 가수·연기자의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그들이 다시 부르는 노래는 이미 한 차례 검증이 끝난 ‘안전한’ 노래고, 노래의 전성기를 함께 지냈던 이들을 포함한 고른 세대에게 관심을 모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인디 음악을 보통 ‘그들만의 리그’라 부르지만, 기성세대에게 슈퍼주니어나 f(x) 같은 아이돌 그룹의 노래 역시 또 다른 그들만의 리그인 건 마찬가지다. 다희는 그들만의 리그에 속해 있던 아이돌 그룹 글램의 멤버이지만, 와 함께 새롭게 주목받으며 독자적으로 이름을 알릴 수 있었다. 아이유 역시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모든 세대가 좋아할 만한 자신의 ‘대표곡’이라 할 수 있는 것을 하나 더 얻은 셈이다.
하지만 이 현상을 마냥 긍정적으로 바라볼 순 없다. 앞서 얘기했듯 지금 다시 불리는 노래들은 이미 공인받은 좋은 노래다. 어떻게 해도 ‘중박’ 이상은 칠 수 있는 ‘안전빵’이라는 얘기다. 나 이 그런 것처럼 방송이 끝난 뒤 노래는 화제에 오르고 음원 차트에도 함께 오른다. 이는 잔뜩 왜곡돼 있는 지금 가요계 상황에서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 방송의 힘으로 음원 차트를 점령하고 기존 곡을 위협한 셈이 된 의 논란처럼, 1년 내내 준비한 음악이 하루짜리 방송의 후광에 밀려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면 분명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시청률과 청취율에 몰두하느라 새로운 노래를 소개하는 데 인색하고 좋은 노래를 외면해온 방송이라면 더더욱. ‘좋은 노래는 알아서 사랑받는다’는 말은 이제 거짓이 돼버렸다. 노래나 추억의 힘만큼이나 방송의 힘은 굉장히 세다.
<font size="3">옛 노래 리바이벌, 흐뭇하긴 하지만</font>에서 다시 불린 는 1995년에 나온 노래다. 김창기가 (히트시키고자) 작정하고 만든 이 노래는 고른 사랑을 받으며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서도 종종 모습을 보였다. 넥타이를 맨 아저씨들이 통기타를 둘러메고 TV에 나와 어색한 표정으로 노래를 부르곤 했다. 1990년대 중반까지는 이런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10대 시청층이 음악 방송을 점령하면서 이런 노래는 점차 모습을 감추었다. 지금 ‘다시 부르기’ 현상이 아쉬운 이유는 이 노래들이 다시 일회성으로 불리고 말기 때문이다. , 이 노래들은 스테디셀러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 방송에서 계속 불려야 한다. 난 이게 정상적이라고 생각한다. 이 다시 젊은 세대의 귀와 입으로 전파되는 건 흐뭇한 일이지만, 그것이 마치 신곡처럼 인식되는 걸 보는 마음은 한편으론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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