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들초등학교 6학년 3반 아이들의 첫 번째 ‘쿠데타’는 실패로 돌아갔다. 무조건적인 복종을 강요하는 독재 담임 마여진(고현정)에 맞서 “단합된 모습으로 싸우자”던 아이들의 계획은 그녀의 계략으로 와해되었다. 실패는 더 참담한 결과를 불러왔다. 아이들은 “이길 수 없는 상대에겐 굴복하라”는 마여진의 말에 순종하고 그녀의 ‘꼭두각시’가 되고 만다. MBC 3회 내용이다. 이쯤 되면 이 작품은 학원물이라기보다 전체주의 세계를 그린 디스토피아적 우화처럼 보인다.
한국판, 억압과 통제의 이야기 두드러져
은 2005년 방영된 동명의 일본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다. ‘부조리한 사회를 닮은 권력’이 되어 아이들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담임교사와 냉혹한 현실을 깨달아가며 성장하는 초등학생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꿈과 희망을 이야기하는 착한 학원물과는 정반대편에서, 승자독식의 냉엄한 현실을 일깨워준다는 명목 아래 아동학대에 가까운 교육 방식으로 교실을 지배하는 독재 교사의 모습은 방영 당시 일본에서도 큰 논란을 빚었다.
한국판 의 특징은 억압과 통제의 이야기가 좀더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첫 회 도입부부터 ‘금지’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건 우연이 아니다. 주인공 하나(김향기)는 남자친구에게 배신당하고 마음속으로 이야기한다. “음주나 흡연은 미성년자에게 법적으로 금지돼 있을 뿐 아니라 건강에도 해롭다. 아직 초딩인 나에게 가능한 건 고작 혼신의 힘을 다한 저주 정도.” 드라마는 이렇듯 아이들의 한계 상황을 명시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마여진의 첫 등장도 상징적이다. 높은 육교에서 도심을 내려다보는 뒷모습은 마여진의 ‘빅브러더’로서의 성격을 암시한다. 실제로 아이들의 “숨기고 싶은 비밀이 뭔지까지도 전부 다” 파악하고 있는 초월적 시선은, 마여진이 교실을 지배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된다. 마여진은 교실을 장악한 이후에는 교실 내부에 밀고자를 두고 아이들이 서로 감시하게 만들면서 통제를 유지해나간다.
요컨대 이 작품 속 교실은 통제사회의 압축판이며 아이들은 생각과 자유가 축소된 왜소한 존재들의 은유와도 같다. 3회에 잠시 등장한 가이 포크스의 가면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세계 곳곳의 시위 현장에서 자유와 저항의 상징처럼 사용되는 이 가면은 근미래의 전체주의 사회를 배경으로 한 영화 를 통해 유명해졌다.
옳고 그른 건 내가 정해이처럼 한국판 의 더욱 심화된 통제와 억압에 대한 문제의식은, 이 작품에서 비판적인 학원 드라마로서의 의미를 넘어 우리 사회의 유사 파시즘적 현실을 환기하게 만든다. ‘모두가 행복한 학교를 만들어요’라는 교문의 현수막과 달리 상위 성적 1%가 아니면 말할 기회도 통제되는 마여진의 교실에는, 검열은 강화되고 표현의 자유는 갈수록 축소되는 ‘국민대통합’과 ‘국민행복시대’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사실 에는 중요한 반전이 있다. 비록 하나의 악몽으로 모호하게 처리되지만,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쓴 사람이 바로 마여진이었다는 사실은 그녀가 지닌 이중의 얼굴에 대한 복선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마여진을 냉정한 독재자로 묘사하면서도, 그녀의 행동이 실은 아이들을 각성시키기 위한 위악일 가능성을 함께 열어둔다. “억압의 상황에서 맞서 싸우기보단 피하고 도망치는 것을 선택”하곤 했던 동구(천보근)가 마여진의 독설에 자극받아 처음으로 “목숨을 걸고 싸우는” 법을 택함으로써 한 단계 성장한 에피소드는 그 대표적 사례다.
그러한 가능성은 마여진의 화법에서도 드러난다. 교과서가 알려주지 않는 불편한 진실을 그대로 전달하는 그녀의 독설은 주로 되묻기 화법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령 우등생에게 주어지는 특권에 “차별 아닌가요?”라고 묻는 학생에게 마여진은 되묻는다. “그게 어때서? 경쟁에서
이긴 사람들이 특별한 혜택을 누리고 낙오된 사람들이 차별대우 받는 거, 그거 너무 당연한 사회 규칙 아닌가?” “선생님이라고 항상 옳은 건 아니”라는 학생에게도 묻는다. “옳은 게 어떤 거지? 옳고 그른 건 진리가 아니야. 그건 누군가에 의해 정해지는 거야. 중요한 건 누가 정하느냐 하는 거고. 우리 반에서 옳고 그른 건 내가 정해.”
이러한 화법은 그 뒤에 따라오는 불편한 독설의 충격 효과를 배가하면서 아이들을 계속 자극한다. 반 아이들 중 처음으로 “선생님이 틀렸다”고 이야기한 서현(김새론)의 저항이나, “동구는 선생님이 모르는 좋은 점이 많”다고 용기 있게 손을 치켜들었던 하나의 반박처럼. 결국 마여진의 되묻기는, “행복한 특권층에서 배제된 나머지 99%”의 아이들이 차츰 부조리에 분노하고 스스로 다른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변화시키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김선영 TV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