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 썼던 MSX 컴퓨터 게임 2탄. 1980년대 어느 해 여름방학. ‘난닝구’ 차림의 형과 동생은 8비트 컴퓨터 대우 아이큐 1000이 놓 인 교자상 앞에 양반다리로 나란히 앉았다. 귀퉁이가 나간 교자상 은 컴퓨터 책상으로 제격이었다. 팬이 없는 자연 공랭식 컴퓨터는 몇 시간째 켜놓은 탓에 뜨끈하게 열을 뿜어냈다. 얼음팩을 수건에 둘둘 감아 컴퓨터 방열구에 올려놓지 않았다면 성질 급하게 터져버 렸을지 모를 일이었다. 난닝구는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이유 없이 싸우던 형제는 이럴 때는 친해졌다. 동생은 컴퓨터 게임 잡지에 실린 깨알 같은 외계어를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주문 읽듯 중얼거렸고, 형은 그 외계어를 톡톡톡 키보드로 열심히 받아쳤다. 예를 들어 이런 거다. 01 3A 5E 42 64 B7…. 이게 뭐냐 하면 0~9, A~F를 이리저리 조합해 만든 16비트 기계어다. 뭔 말인지 모르겠다 면, 그냥 영화 에서 신내림을 받은 주인공 네오의 눈에 비 친 세상을 생각하면 된다. 형과 동생은 네오가 아니었기에 롱코트 대신 목이 늘어진 롱난닝구 를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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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동안 저런 말을 불러대 고 받아쳤다. 엄마는 신흥종 교에라도 빠진 듯한 두 아들 을 걱정스럽게 쳐다봤다. 지 친다 싶으면 이번에는 자리를 바꿔 형이 불러대고 동생이 받아쳤다. 문제는 숫자 2와 알파벳 E의 발음이 같다는 거였다. ‘5E’를 ‘오이’로 발음하면 ‘52’, ‘42’는 ‘4E’로 알아먹을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애들이 야 A는 알파, B는 브라보, C는 찰리, D는 델타, E는 에코라고 부르겠 지만, 어린 형과 더 어린 동생은 알파벳 E를 자기들 마음대로 ‘페’라 고 부르기로 했다. ‘오페’는 ‘5E’였고, ‘사이’는 ‘42’였다.
고난의 행군 끝에 기계어 코딩이 모두 끝났다. 두근두근하는 마음으 로 실행을 시켰다. 삑. 에러 메시지가 떴다. 젠장. 예상은 했지만 짜 증이 확 솟는다. 도대체 어디가 틀렸는지 알 수 없다. 이번에는 형이 모니터를 보며 첫 줄부터 외계어를 읽어 내려가고, 동생은 외계어가 적힌 게임 잡지를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뭐가 틀렸는지를 대조한다.
그렇게 개고생을 해서 얼마나 대단한 게임을 했냐고? 불끄기 게임. 커서 크기의 ‘불’처럼 보이는 덩어리가 움직이면, 커서 크기의 소방수 처럼 생긴 것을 움직여 불을 잡으면 된다. 지구방위 게임. 지구처럼 보이는 것 위로 인공위성처럼 생긴 게 떠 있다. 포대처럼 생긴 것의 각도를 조절해, 레이저라고 생각하기로 마음먹은 것을 발사하면 끝 이다.
게임의 수공업 시대였다. 그 시대는 일찍 끝났다. 느려터진 카세트 테이프 레코더에 이어, 드디어 5.25인치 플로피디스켓을 득득득 하 는 소리와 함께 ‘초고속’으로 읽어대던, 더럽게 크고 무거운 플로피디 스크드라이브(FDD)가 집에 들어왔다. 이제는 스마트폰에 앱을 깔면 그 옛날 MSX 컴퓨터 게임을 모조리 다 할 수 있다. 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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