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도 길은 있다. 길이 길을 잃을 때 길은 더 이상 길이 아니다. 길은 길을 걷는 이에게 만 새 길을 열어준다. 발바닥으로 길을 더듬 는 자만이 자신의 길과 만날 수 있다. 2013 년 뜨거운 여름을 걷는 ‘길 위의 기자들’이 있다. 거칠고 험한 길 위에서 그들은 ‘길 잃 은 언론의 길’을 묻고 있다.
#오전 8시30분 평택 서정리역 출발
“이 기자, 여기.”
정유신(전 언론노조 YTN지부 대변인) 기 자가 손을 흔들었다. 흐르는 사람들 속에 그 들이 있었다. 건물이 머금는 이들과 길이 품 는 사람들의 차림새는 한눈에 구분됐다. 워 킹화를 신은 반바지 차림의 노종면(전 지부 장)·조승호·권석재(전 사무국장) 기자가 배 낭을 멘 채 기다리고 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얼굴들 위로 깎지 않은 수염이 삐죽했다. 태 양이 구워낸 낯빛들도 싱싱했다. ‘해직 5년 을 걷는다’란 몸자보를 등에 붙였다. ‘공정방 송’을 새긴 삼각형 깃대는 배낭에 꽂았다.
함께 걸으면 길이 난다. 6월13일 경기도 평 택시 서정리역에서도 그들은 함께였다. 5년 여의 시간 동안 그들은 늘 함께했다. 6명의 YTN 해직기자 중 4명이 이날도 같은 자리 에 있었다. 건강 문제로 잠시 귀가한 우장균 (전 기자협회장) 기자는 며칠 뒤 재합류할 예 정이다. 지난해부터 미국에 머물고 있는 현 덕수(전 지부장) 기자만 참여하지 못했다. ‘기러기 엄마’를 한국에 남겨두고 쌍둥이 두 아들의 미국 생활을 뒷바라지하고 있다.
이날 ‘공정방송 국토순례길’은 쌍용자동 차 평택공장으로 뻗어 있다. 쌍용차 해고노 동자 가족 치유센터 ‘와락’과 충남 아산 유성 기업까지 걷는 21.6km 코스였다. 나흘째 나선 길이었다. 6월10일부터 12일까지 사흘을 걸어온 그들은 전날 서정리역 인근에서 하루를 묵었다. 이날 순례단은 7명이었다. 언론노조의 탁종렬 조직쟁의실장과 김현익씨, 하성준 YTN 노조 사무국장이 동행했다. 나도 그들의 길에 끼었다.
뽕나무 가로수에서 떨어진 잘 익은 오디가 발에 밟혔다. 순례단 단장을 맡은 조승호 기자가 길을 이끌었다. “오늘 이동 경로를 확인하느라 어젯밤 늦게까지 비서들 퇴근을 막았다”며 웃었다. 그는 스마트폰 길찾기 애플리케이션 2개를 “고용해” 길을 확인했다. 전날 내린 비 덕분에 날씨도 원망스럽지 않았다. 노종면 기자가 눈을 비볐다. 길가에 핀 꽃향기를 맡겠다며 덤비다 눈 속에 꽃가루를 담고 말았다. 코 밑에 묻은 노란 꽃가루는 달걀 노른자 부스러기처럼 몽글몽글했다.
언론은 침묵함으로써 외면하고, 외면함으로써 왜곡하며, 왜곡함으로써 타락한다. 순례단은 서울 논현동 이명박 전 대통령 사저와 양재동 현대자동차 앞 비정규직 노동자 농성장을 거쳐 경기도 오산·송탄·용인을 통과해왔다. 경유지마다 ‘이곳은 언론이 왜곡하고 외면한 미디어 피폭지입니다’란 펼침막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미디어가 제대로 보도하지 않아 피해자의 고통을 가중한 대표적 장소들이란 뜻에서다. 이들의 국토순례는 기사 한 줄 쓸 수 없는 ‘내쫓긴 기자들’이 트위터와 페이스북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취재여행이기도 하다. 제주 강정마을(6월17일)과 울산 현대차 철탑농성장(6월18일), 진주의료원(6월19일), 여주 이포보(6월25일) 등이 순례길에 찾을 ‘미디어 피폭지들’이다.
#오전 10시40분 평택 쌍용자동차 정문 도착4년9개월이다. 2008년 10월6일 구본홍 사장 반대투쟁으로 해고된 그들은 ‘짐승의 시간’을 헤쳐왔다. 사 쪽은 사과 없인 복직 협상도 없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고, 대법원에 간 해고무효소송은 2년간 소식 없이 표류하고 있다. MB 정부 총리실의 노조 사찰 사실도 밝혀졌다. 박근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때 해직 언론인 문제 논의기구로 거론됐던 국민대통합위원회는 아직 구성조차 되지 않았다. 노종면 기자는 “출범 초기 박근혜 정권에 걸었던 일말의 기대도 포기했다. 기대하면 안 되는 것이었는데 기대했던 게 사실”이라고 했다.
3명의 부친이 사망하고 3명의 아이가 태어나고그사이 해고자 3명의 부친이 사망했고, 3명의 아이가 태어났다. 2009년 현덕수, 2010년 우장균, 2011년 권석재 기자의 부친이 세상을 떠났다. 2010년 7월과 2012년 9월 정 기자의 두 아이가 각각 태어났고, 2011년 11월엔 권 기자의 아들이 세상에 왔다.
권 기자는 자신이 해고자 신분이란 사실을 아들을 보며 느낀다고 했다. “보통 아이가 잠에서 깨면 엄마를 찾는데 우리 아들은 저를 찾아요. 저와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엄마’보다는 ‘아빠’라는 말을 먼저 배웠어요. 엄마가 출근할 땐 울지 않지만 제가 집 밖으로 나가면 바로 웁니다.” 그는 최근 “내가 부쩍 늙어버렸다. 어느 날부터 거울을 보면 내 앞에 딴사람이 서 있더라”고 했다. 그는 카메라 기자답게 소형 캠코더로 순례 장면을 꼼꼼히 기록했다.
출발 2시간여 만에 도착한 쌍용차 정문은 헌병 복장과 유사한 옷차림의 경비들이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정문 앞 노조사무실은 문이 잠겨 있었다. 6월10일 서울 중구청의 대한문 분향소 철거와 12일 경찰의 김정우 지부장 구속에 대부분의 조합원들이 상경투쟁을 떠난 탓이다. 조 기자는 와락 아이들이 노조사무실 앞 간이 계단에 심은 방울토마토의 곁순을 조심스럽게 땄다. “올해부터 주말농장을 시작했어요. 불필요한 순을 정리해줘야 토마토가 잘 자라거든요.”
다시 20분을 걸어 쌍용차 고공농성장이던 송전철탑에 도착했다. 한국전력이 원형 철구조물을 쳐 더 이상 사람이 올라가기 어렵게 돼 있었다. 정 기자는 “가끔 일상의 노예가 돼간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하는 무력감에 시달린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는 “반드시 돌아가야 할 곳을 생각하며 버틴다. 내겐 YTN이 돌아가야 할 곳”이라고 했다. 171일째 유지됐던 농성장이 사라진 송전탑 주위로 하얀 개망초꽃이 만개했다.
#오후 1시 와락 도착무릎과 발목이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노트북과 책을 쑤셔넣은 가방 무게에 어깨가 먹먹했다. 10km 남짓 걸었다고 울상인 저질의 육체에 분노했다. “지원 차량에 타라”는 정 기자의 제안은 달콤한 유혹이었다. “내 다리는 말 다리~.” 부실한 하체를 내려다보며 최면을 걸었다. 하루 일정만이라도 같이 소화하고 싶었다. 천변에서 왜가리의 날갯짓이 여유로웠다.
“국토순례는 지쳐 있는 조합원들에 대한 ‘말걸기’이기도 합니다.”
“복직보다 중요한 올바로 선 YTN”지부장으로서 YTN 공정방송 싸움을 이끌었던 노종면 기자는 가장 힘겨운 적은 “일상과 시간”이라고 했다. 그는 “조합원들이 많이 지쳐 있다”고도 했다. “조합원들과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아 두렵다”고 했지만, “우리가 조합원들에게 짐이 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는 “하루빨리 복직되기를 바라지만 복직 그 자체보다 보도 현장에서 올바로 선 YTN에 복직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려면 조합원 각자가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우리가 순례 과정에서 올린 글과 사진을 통해 그 고민을 나누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약속된 시각인 오후 1시에 정확하게 와락에 닿았다. 와락에서 마늘을 까던 해고자 가족들이 순례단을 반갑게 맞았다. 순식간에 점심 밥상이 차려졌다. 송전탑 농성을 마치고 내려온 한상균 전 쌍용차 지부장의 부인 장영희씨가 차린 ‘치유밥상’이었다. ‘굶주린 자들’은 밥 한 톨 나물 한 줄기 남기지 않고 완벽하게 먹어치웠다. 노 기자가 동료들을 불러모아 마늘 까기에 나섰다. 햇마늘은 눈이 아리지 않았다. 해고자 가족들은 김정우 지부장의 건강을 걱정했다. 권지영 와락 대표(쌍용차 가족대책위원회 대표)가 토로했다.
“인간의 가장 풀기 어려운 감정이 억울함이더군요. 그 억울함을 풀지 못한 채 우리는 길바닥을 떠나지 못해요.”
노 기자는 “언론인으로서 여러분의 아픔을 외면해온 것 같아 죄송하다”며 “해고자인 우리는 취재해도 기사를 쓸 수 없지만 최소한 YTN 후배들에게라도 진실을 알리겠다”고 약속했다.
#오후 5시30분 유성기업 도착오후 2시50분 와락을 출발했다. 구름이 걷혀 날씨가 후텁지근했다. 팽성읍을 지나면서 인도가 사라졌다. 길 옆으로 바짝 붙어 걷는 동안 대형 차량이 옆을 훑으며 지나갔다. 충남 아산시 둔포면 유성기업에 이르는 길은 이날 여정의 최대 난코스였다. 길 없는 길을 걸으며, 지친 앞꿈치가 잡아당긴 길을 뒤꿈치가 밀어냈다.
결국 석근리 정미소 앞에서 논길로 우회하기로 했다. 조승호 기자는 사람이 걸을 수 없는 길을 고개 넘듯 오가며 길을 만들었다. 그의 부인은 2010년 7월 뇌출혈로 쓰러졌다. 해고무효소송 2심 선고가 석연찮은 이유로 거듭 연기되던 시점이었다. 현재는 거의 회복된 상태다. 그는 “책임감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고 했다. “각자가 자신의 책임을 다하면 세상은 상식적 수준에서 굴러갑니다. 기자의 책임은 공정보도입니다. 단지 그걸 위해 싸웠고, 그걸 위해 견디고 있을 뿐입니다.”
그는 100km 거리의 ‘울트라마라톤’을 3번 완주했다. 그는 “순례 기간에 내가 해야 할 책임은 모두 탈 없이 완주하도록 하는 것이다. 일단은 그것만 생각하겠다”며 앞장서 걸었다. 그는 2009년 3월 낙하산 사장 반대투쟁 중 노종면·현덕수·임장혁 기자와 경찰에 체포됐다 풀려난 뒤 마라톤을 시작했다.
오후 4시6분. 길 앞쪽에서 두 명의 남자가 승합차를 세운 채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 상경투쟁을 가던 금속노조 충남지부 조합원들이었다. 순례단의 몸자보를 보고 가던 길을 멈춘 그들은 아이스크림과 꽝꽝 언 얼음물을 떠안기고 서둘러 시동을 걸었다.
노 기자는 휴식 시간마다 신발과 양말을 벗고 발을 쉬게 했다. 그의 발바닥에선 물집을 터뜨린 뒤 붙인 밴드가 보였다. 물집은 힘든 노동에 반응하는 발의 생존 방식이다. 순례단이 6월 말까지 찾게 될 ‘미디어 피폭지’는 우리 사회의 고된 삶들이 흘린 ‘눈물의 집’과도 같다. 물집이 생겨도 회피하거나 건너뛸 수 없는 길이 있다. YTN 해고노동자 6명이 이루려는 공정방송과 그 방송이 꿈꾸는 ‘상식의 사회’가 그렇다. 더디더라도 한발 한발 온전히 걸으며 다다를 수밖에 없는 길들이다.
또 다른 싸움이 기다리는 유성기업오후 5시30분. 마침내 유성기업이 눈앞에 보였다. 홍종인 노조 지부장이 151일간의 고공농성을 펼쳤던 굴다리가 순례단을 맞았다. 사주 처벌을 요구하는 대형 펼침막이 아직 역할이 끝나지 않았다는 듯 펄럭였다. 유성기업의 해고자 복직 문제는 사 쪽이 ‘재징계를 못박은 복직 통보서’를 발부하며 또 다른 싸움을 예고하고 있다. 노 기자가 홍 지부장의 고공농성장에 섰다.
글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사진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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