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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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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에미나이들! 영화 좀 보게 조용히 하라우

의 비밀… <늑대소년> <7번방의 선물> 이어받은 ‘백치적인 것’의 힘? 바보가 될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배우의 힘?
등록 2013-06-19 16:54 수정 2020-05-03 04:27

처음엔 재밌었다. 매우 용의주도하게 콧물 자국을 완성한 ‘동구’가 하루 3번 어이없이 넘어지고, 인정사정없이 계단을 구르고, 동네 꼬마들이 던진 돌에 맞고 맥없이 픽 쓰러질 때. “오, 해품달 임금님 김수현! 바보 연기가 제법 리얼한데!” 솔직히 6살 지능의 딸 바보 ‘용구’보다 보기가 훨씬 편했다. 바보 연기가 어려운 게 연기처럼 보이면 안 돼서인데, 처음부터 ‘동네 바보로 위장한 간첩’이라는 설정 아래 보니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 없다. 게다가 김수현이 연기하는 바보는 류승룡과 달리 아무리 바보짓을 해도 거부감이 안 들 정도로 보송보송 잘생겼다. 머리통도 작고, ‘기럭지’도 우월하게 길고. 그 때문에 “아이고, 저 바보” 하는 안쓰러움이 사라지고 심지어 즐기면서 보게 된다. 속으로 “바보짓 잘한다. 좀더 세게!” 응원까지 하며.
내가 간첩이 된 듯한 관객들의 호들갑
하지만 그다음부터는 재미없었다. 서사의 공백이 어쩌고 개연성이 저쩌고 식으로 평론가적으로 비평하면 김수현을 사랑하는 10대, 20대 소녀팬들이 벌떼같이 달려들어 “그럼 그렇게 잘난 네가 한번 만들어보시지?” 하며 이판사판 덤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러니까 그냥 중반 이후부터 재미없었다고만 말해두겠다. 김수현의 바보 연기가 끝나는 순간부터 모든 게 시들해졌다. 그 바보가 자기만의 골방에서 웃통을 벗고 6개월 동안 웨이트와 닭가슴살로 단련한 몸을 유연하게 움직이는 그 짧은 순간 ‘번쩍’하는 섬광이 일기는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엄청난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가히 신드롬에 가깝다. 10대와 20대 여성 관객을 확실히 포섭한 바보 김수현의 힘이다.
왠지 다다의 창립자 트리스탄 차라가 1915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선언했던 말이 떠오른다. “이제 똑똑한 사람은 표준적 유형이 되었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백치다. 다다는 모든 곳에서 백치적인 것을 확립하는 데 온 힘을 쏟고 있다.” 생각해보면 부터 , 그리고 이 영화 까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흥행 기록을 세운 영화들의 공통점이 바로 여기 있는 것 같다. 백치적인 것. 똑똑하고 성공적인 삶에 대한 강박적 요구에 넌더리가 난 관객이 평단의 그저 그런 평에도 불구하고 어딘지 좀 백치스러운 영화에 몰표를 주고 있다는 거.

의 흥행 질주는 10대 소녀들의 팬덤 때문이라고 분석된다. 하지만 이 광풍의 진짜 이유는 젊은 배우 김수현의 ‘백치적 열정과 순수’인지 모른다.쇼박스 제공

의 흥행 질주는 10대 소녀들의 팬덤 때문이라고 분석된다. 하지만 이 광풍의 진짜 이유는 젊은 배우 김수현의 ‘백치적 열정과 순수’인지 모른다.쇼박스 제공

특히 의 흥행 광풍은 김수현에게 열광하는 10대 소녀들의 환호 속에서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 역시 중간고사를 마친 여고생들의 단체 관람 속에서 영화를 보고 있자니 ‘혹시 내가 간첩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들의 불에 덴 듯한 호들갑스럽고도 즉각적인 반응에 처음엔 적응이 잘 안 됐다. 속으로 “이 에미나이들! 조용해 좀 해라. 영화 좀 보게” 하면서도 왠지 그 모습이 처연하게 사랑스러워서 빙그레 웃고 말았다. 그때 문득 지난밤 트위터에서 본 문구가 떠올랐다. ‘나는 왜 성적 우수가 타 학생의 모범이 되고 공로가 되는지 이해할 수 없음.’ 이런저런 다른 글들을 살펴보니 대학생이 아니라 고등학생이 올린 글이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적 받고 일류대에 들어가고 대기업에 입사하는 걸 최고라 주입시키는 이 사회의 강박에서 이 탈해 스스로 깨우쳤을 그나마의 자각이 참 예뻐 보였다. 그래서 ‘그러게요. 표준화된 제도교육에 순응해서 점수 좀 받는 게 뭔 대수라고! 차라리 백치가 세상에 무해하 다는 점에서 더 공이 됐음 됐지!’라고 맞장구쳐주는 글과 함께 리트윗을 했다.

“자존심이 없는 거야, 순수한 거야”

영화의 완성도가 떨어지는데 주연배우 김수현의 티켓 파워로 가 흥행 질주를 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과연 그것뿐일까? 한 배우의 티 켓파워만으로 흥행작이 만들어지는 일이 이제 충무로에 서는 무척이나 드문 일이 됐다. 그런데 왜 유독 김수현에 게만 그 힘이 건재할까?

김수현이 처음 그 범상치 않은 존재감을 드러낸 건 2011년 TV 드라마 에서 음악에 뛰어난 고교 생 역할을 할 때부터였다. 잡지사에 근무할 때였는데 드 라마를 즐겨 보는 후배 기자를 통해 그 이름을 처음 들 었던 기억이 난다. 신예나 다름없는데 연기력이 빼어나 고 왠지 진솔하게 느껴지는 그 존재감이 장난이 아니라 는 말에 뒷조사를 했다. ‘공부에 뜻이 없는 고등학생 신 분으로 연기 학원에 갔다. 거기서 만난 연세대 연극동아 리 선배를 졸졸 따라다님. 그 형 덕에 연세대 학생도 아 닌 주제로 연극동아리 부원으로 활동하며 거의 연세대 에서 살다시피 함. 그러다 형들 따라 간 오디션에 합격하 는 바람에 시트콤 드라마로 데뷔.’ 웃음이 나왔다. 그 이 력이 하도 애틋해서. “뭐야, 이 녀석. 자존심이 없는 거 야, 순수한 거야” 중얼거리며. 그런데 자존심이 없지 않 았다. 아무리 페이지를 많이 준다고 해도, 프랑스 파리 든 이탈리아 카프리든 네가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데려 갈 수 있다는 식의 해외 화보 인터뷰 요청에도 그는 끄떡 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도 김수현이 만든 이 놀라운 팬 덤 효과의 뒤에는 사회의 낙오자가, 바보가 되는 걸 두려 워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과 역할에 망설임 없이 투신할 줄 아는 그만의 열정과 순수가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김경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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