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 록 페스티벌을 열고 싶다는 막연한 계획에 백이면 백(아무리 양보해도 백에 아흔여덟)은 “멋지겠다!”고 탄성부터 질렀다. 일반 관객과 음악 관계자를 막론하고 반응은 마찬가지였다. 과장이 아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주변 사람들을 떠본 결과가 그렇다. 따지고 보면, 애당초 나 자신부터가 그랬다.
많은 사람들이 공통된 반응을 보인다면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나는 그것을 페스티벌에 기대하는 사람들의 욕구가 변화하고 있다는 방증으로 읽었다. 페스티벌이 많지 않던 과거에는 사흘 동안 200개쯤 되는 밴드의 공연을 한자리에서 섭렵할 수 있는 양적 풍성함을 기대했다면, 일주일 걸러 하나씩 페스티벌이 열리는 요즘에는 공연과 함께 여가를 만끽할 수 있는 질적 풍요로움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아이디어가 즉각적인 호응을 얻은 바탕에는 제주도라는 공간이 주는 낭만적 경험에 대한 바람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제주도에서 펼쳐지는 록 페스티벌을 상상에서 현실로 바꾸려 노력하는 동안 나와 동료 기획자들은, 코카콜라의 ‘뉴 코크’ 캠페인이나 마이클 치미노의 영화 이 그랬던 것처럼, 처음에는 근사해 보였던 계획이 막상 실행에 옮기는 과정에서 난항을 거듭하며 지옥의 입구를 어슬렁거리(다가 숫제 빨려 들어가버리)게 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을 체험하기 시작했다. 세상 모든 문제의 근원이 그렇듯이, 관건은 돈이었다. 제주도로 아티스트들을 데려오려면 항공료와 체재비 등이 필요하고 이는 곧 제작비 상승으로 이어진다. 서울시의 일개 구 정도에 불과한 제주도의 인구는 기본적인 시장성도 갖고 있지 못하므로 페스티벌은 언감생심이라는 것이다. 그게 현실이었다. 제주도에서의 페스티벌이란 아이디어는 이제껏 아무도 못했던 생각이 아니라 아무도 실행에 옮길 수 없는 생각이었다.
이쯤 되면 계획을 포기하는 게 수순이다. 우리는 그러지 않았다. 그건 결국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와 비슷한 일이 돼버릴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모두가 바꾸길 원하지만 아무도 바꾸려 나서지 않는 일. 현실적인 경제감각을 갖춘 사람들로 넘쳐나는 세상에서 이건 영원히 계획으로만 남아 제자리걸음을 할 것이 분명했다. 누군가는 움직여야 했다. 그게 왜 하필 우리냐고? 혹자는 우리를 무모하거나 바보거나 혹은 무모한 바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제주도가 고향인 나와 동료 기획자들은 생각이 다르다.
“멋진 록 공연 하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우리는 문화의 변방에서 성장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안다. 그건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보기 위해 10년쯤 기다리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다. 진짜 최악인 것은, 그렇게 10년쯤 지나면 더 이상 보고 싶은 가수고 나발이고 남아 있지 않게 된다는 점이다. 그 결과 제주도는 여전히 문화의 황무지로 남아 있고, 3년에 한 번쯤 이 와주길 바라는 것 외에 새로운 문화적 시도를 감행하는 일은 더더욱 어려워지고 말았다. 우리가 마침내 ‘젯 페스트’(JET Fest)를 감행하기로 결심한 결정적 이유가 거기 있었다.
오는 10월 열릴 예정인 젯 페스트는 ‘제주 익스피리언스 투어 앤 페스티벌’의 약칭이다. 페스티벌이 열리는 공간인 ‘제주’, 단순한 소비를 넘어 삶과 어우러지는 내용으로서 ‘경험’, 그리고 공연과 여행이 어우러지는 새로운 형식으로서 ‘투어와 페스티벌’을 의미한다. 단순히 여러 밴드들의 공연을 한자리에서 관람하는 수동적 이벤트가 아니라, 문화와 여가를 경험하는 능동적 축제를 지향한다. 자연스레 제주로 향하는 비행기를 연상시키는 이름 그대로, 여행과 공연을 통해 제주를 경험하도록 함으로써, 단지 제주에서 열리는 페스티벌이 아닌 오직 제주에서만 가능한 페스티벌을 만들자는 취지다.
젯 페스트는 앞서 언급했던 경제성의 한계를 관객과 직접 소통하는 방식으로 해소하기 위한 실험도 병행하고 있다. 텀블벅(tumblbug.com/jetfest)을 통한 ‘소셜펀딩’으로 잠재적 관객을 페스티벌의 후원자로 참여하게 한 것이다. 후원자들에게 출연 아티스트를 결정할 수 있는 추천권을 부여해 페스티벌의 기획에도 참여할 수 있게 했다. 후원금으로 제작비를 마련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후원 프로젝트에 내건 ‘목표 달성 금액’이 500만원에 불과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젯 페스트가 소셜펀딩을 통해 얻으려는 것은, 자금이 아니라 용기와 의지다. 후원자가 기획자가 되고, 관객이 주인이 되는 페스티벌을 만들기 위한 상징적인 장치인 셈이다.
그렇게 우리는 젯 페스트 실험을 통해 페스티벌의 본질과 지역 문화의 균형 발전에 대한 고민을 제안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어떤 성과를 거둘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영화 의 주인공 말마따나, “멋진 로큰롤 공연 하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실천하는 것만으로도 도전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스스로를 격려하며 전진할 뿐이다.
글·사진 박은석 대중음악평론가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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