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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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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현실 보이게 만드는 힘

정부와 기업 후원 안 받고 후원회비로만 열리는 서울인권영화제…독립 후 첫 영화제 성공, 당장 내년 영화제 비용 걱정
등록 2013-05-28 22:34 수정 2020-05-03 04:27

서울인권영화제에 처음 간 사람들은 객석 의자를 보고 멈칫하기 십상이다. 영화가 상영되는 광화문 청계광장에 놓아둔 의자마다 붙은 ‘VIP’라는 글자가 먼저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여기는 앉으면 안 되나’ 하는 순간, 전체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사람은 누구나 VIP입니다.’ 안심하고 자리에 앉아 스크린을 보면, 양쪽에 적힌 이름들이 뭔가 싶다. ‘강경석… 서혜림, 서원주.’ 빼곡히 적힌 333명은 서울인권영화제를 후원하는 이들의 이름이다. 인권영화는 무료로 누구나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로 무료 상영을 한다. 인권을 탄압하는 이들의 후원을 받을 수 없기에 정부 지원과 기업 후원을 받지 않는 인권영화제의 정신은 그렇게 ‘청계광장 야외극장’에 들어서면 한눈에 보인다.

지난 5월23일 제18회 서울인권영화제 개막식에서 상영작의 한 장면을 소개하고 있다. 올해의 상영작에는 ‘레드 헌트‘도 있었다. 1997년 경찰은 이 영화가 이적표현물이라며 당시 이 영화를 상영하려던 제2회 인권영화제 장소인 서울 홍익대 주변을 봉쇄했다. 한겨레 정용일 기자

지난 5월23일 제18회 서울인권영화제 개막식에서 상영작의 한 장면을 소개하고 있다. 올해의 상영작에는 ‘레드 헌트‘도 있었다. 1997년 경찰은 이 영화가 이적표현물이라며 당시 이 영화를 상영하려던 제2회 인권영화제 장소인 서울 홍익대 주변을 봉쇄했다. 한겨레 정용일 기자

해마다 오던 이들이 후원활동가로

제18회 서울인권영화제가 시작된 5월23일 오후 3시, 평일 낮인데도 70명이 넘는 이들이 객석을 채우고 있었다. 스크린에는 가면을 쓴 이들이 나와 울음을 터뜨렸다. 성범죄 피해자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문정현 감독의 다큐멘터리 다. 비어 있던 광장에 야외극장을 만들었으니 손잡고 거닐던 연인들도, 청계천을 지나던 중국인 관광객도 잠시 멈춰 스크린을 응시한다. 서울인권영화제는 날마다 주제를 정해 작품을 상영하는데, 이날은 ‘이주_반성폭력의 날’이었다. 다음날은 ‘노동_소수자의 날’, 마지막 날은 장애_표현의 자유의 날’로 이어졌다.

서울아트시네마 등에서 열리던 서울인권영화제가 거리로 나온 지 여섯 해를 맞았다. 인권영화제는 2008년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영화 및 비디오물에 관한 법률’에 반대해 서울 마로니에공원으로 나섰다. 영화제에서 영화를 상영하려면 영화진흥위원회의 추천을 받아야 하는데, 이 제도가 사전검열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거리 상영 장소를 청계광장으로 옮긴 2009년에는 경찰이 촛불시위 우려가 있다며 영화제 개최 허가를 취소했다. 순순히 받아들일 영화제가 아니었다. 개막 당일 광장을 경찰차로 봉쇄했지만, 상영을 포기하지 않자 결국 경찰이 취소를 취소했다. 김일숙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는 “비자발적으로 거리로 나왔지만, 나오고 보니 좋은 점이 많다”고 전했다. 거리를 지나다 우연히 대사 하나에, 어떤 장면에 이끌려 인권영화제와 만나는 이들이 생긴 것이다. 김일숙 활동가는 “거리 상영 3년째를 지나니 후원이 확 늘더라”고 전했다. 해마다 오던 이들이 3년쯤 지나니 후원활동가가 되더란 것이다.

좌(左) 쌍용, 우(右) 팔레스타인평화연대. 영화제 뒤편에 부스를 차리고 활동을 알리는 단체들이 있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2만 개의 부품을 조립해 다시 자동차를 만드는 프로젝트 ‘쌍용자동차 H-20000’를 알리는 이들 앞에서 핵무기 모양의 분장을 한 평화운동가들이 국민연금의 불법 무기 투자를 반대하는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었다. ‘홈리스행동’은 활동기금 마련을 위해 컵밥과 과일을 팔았다. 올해 영화제 슬로건은 ‘이 땅에서 무엇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 그곳에 가니 영화로, 사람으로, 풍경으로 지금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가 보였다.

“인권영화제가 나를 키웠다”

다큐멘터리 이 상영된 이날 오후 5시30분, 객석에서 조용한 박수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한 주인공이 마침내 법원의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1심 법원은 아버지에게 무죄를 주었지만, 2심 법정은 친족 성폭력을 인정해 7년형을 선고했다. 은 말로만 듣고, 글로만 보았던 친족 성폭력 피해 여성의 인정투쟁을 살아 있는 인간의 피와 살로 그리고 있었다. 서울인권영화제가 아니면 보기 힘든 영화가 많았다. 영주댐 건설을 강행한 한국수자원공사에 맞서 투쟁을 벌이는 장진수씨 이야기(), 2차 세계대전 와중에 태어나 1960년대 동성애자 권리를 위해 싸운 프랑스 게이들의 이야기()는 알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현실을 보이게 만드는 힘에 감동한 이들이 적잖다. 이화정씨는 “인권영화제가 나를 키웠다”고 말했다. 이씨는 2009년 ‘표현의사(死)’라는 인권영화제 슬로건의 중의적 의미에 끌렸다. 그는 “볼수록 내가 확장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영화를 놓치지 않기 위해 직장에 휴가를 낸 적도 있었다. 그는 “영화 보다 몸살 나서 빠진 날 말고는 5년을 개근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그에게 인권영화제는 세상을 보는 창이다. 고마운 마음에 후원도 하고, 친구도 초대해 함께 보았다. 물론 열성 관객만 있지는 않다. 아이와 함께 영화를 보는 여성이 있어서 물었더니, “서점에 갔다 지나는 길에 들렀다”고 답했다. “교수님이 추천해서 보러 왔다”는 대학생들도 만났다. 저녁 시간이 되자, 영화제 뒤편에서 인권교육센터 ‘들’ 활동가들이 도시락을 나눠먹고 있었다. 공식 개막식이 시작된 저녁 7시, 어느새 400석이 가득 찼다.

2013년 1월11일, 서울인권영화제는 분리·독립을 선언했다. 그러니까 올해는 독립하고 치른 첫 영화제다. 원래 인권운동 단체들이 함께하는 영화제로 기획됐지만, 재정 문제를 책임질 단체가 필요해 인권운동사랑방에 사무국을 두고 있었다. 2007년부터 독립하려 했지만, ‘명바기’ 때문에 여건이 못 됐다. 올해는 용기를 낼 기운이 생겼다. 김일숙 활동가는 “300명 후원인이 내는 월 300만원 후원금 목표를 이뤄서”라고 말하며 웃었다. 사실 그것보다 더 많은 인권활동가,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나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한 해 4천만원씩 들어가는 영화제 비용을 어떻게 모으나 걱정이 앞선다. 내년에 스크린 옆에 이름이 들어갈 새로운 사람들을 애타게 기다리는 이유다.

영화 들고 지역·공동체·현장으로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는 “300% 더해져” 3명. 레고, 은진, 일숙이 30명의 자원활동가와 함께 영화제를 만든다. 영화제를 보러 왔다가 다음해 자원활동을 하는 이가 적잖다. 이들이 함께 기획하고 일손을 나누지 않았다면, 거리에서 무료로 영화를 상영하는 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올해 영화제가 끝났지만, 내년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서울인권영화제는 상영작을 들고 지역으로, 공동체로, 고통받는 현장으로 찾아간다. 가장 가까운 기회는 5월29~31일 서울 성산동 ‘인권중심 사람’에서 열리는 제18회 서울인권영화제 앙코르 상영회다. 개막식 사회를 본 김정아 인권중심 사람 상임이사는 “상영회를 위해 인권중심 사람의 다목적홀에 방음 커튼도 설치했다”고 말했다. 자세한 상영 일정은 서울인권영화제 홈페이지(hrffseoul.org)에 나온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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