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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로 돌아왔으나 민심이 예전 같지 않구나

탁구 치는 것만으로 시청률 끌어올린 강호동의 위력, 그러나 시청자는 ‘압도적 중간자’를 편하게 받아들이지 못해
등록 2013-05-11 16:17 수정 2020-05-03 04:27

핑, 퐁, 탁, 윽! 방송은 긴 시간 동안 아무런 대사 없이 탁구공 오가는 소리와 선수들의 외마디 탄성으로 채워졌다. 이것은 스포츠 방송이 아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토록 고요한 순간이 자주 찾아온 적이 있었던가. 경기를 배경으로 좌충우돌 준비 과정과 왁자한 수다가 이어지지만 (KBS)은 철저하게 아마추어 선수들과 MC들 사이의 단순한 경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TV평론가 이승한씨의 말을 빌리면 “한 문장으로 정리하기 힘든 애매한 쇼”다. 그런데 화요일 밤 11시20분, 이 단순하고 소박한 구성의 프로그램이 방송 4주 내내 꾸준히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많은 시청자가 방송인 강호동이 을 통해 비로소 ‘진정한 복귀’를 했다고 평가한다. 그가 돌아온 건가.

복귀 뒤 부진을 면치 못하던 강호동은 결국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으로 돌아왔다. ‘일요일이 좋다-맨발의 친구들‘(위)과 ‘우리동네 예체능‘에서 강호동은 특유의 친화력과 승부사 기질을 보이며 주어진 미션을 수행한다. SBS 제공, KBS 제공

복귀 뒤 부진을 면치 못하던 강호동은 결국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으로 돌아왔다. ‘일요일이 좋다-맨발의 친구들‘(위)과 ‘우리동네 예체능‘에서 강호동은 특유의 친화력과 승부사 기질을 보이며 주어진 미션을 수행한다. SBS 제공, KBS 제공

주도에서 조율로, 패착의 원인

강호동은 이미 지난해 11월 SBS 으로 스튜디오에 다시 섰다. 2011년 9월 탈세 논란으로 잠정 은퇴를 선언하고 모든 예능 프로그램에서 하차한 지 1년여 만이다. 귀추가 주목되던 (MBC)에 돌아왔고, 새 프로그램 도 시작했다. 그러나 는 예전의 명성을 잃었고 ‘착한 예능’ 책읽기 프로그램 에서 강호동은 이미지 변신에 실패했다. 설상가상으로 는 시청률 고전을 면치 못하고 첫 방송 뒤 2개월여 만에 폐지됐다. 방송가에서 강호동은 ‘대체할 수 없는 존재’로 일컬었지만 금세 위기론이 대두됐다. 은퇴 전부터 조짐을 보이던 강호동식 예능 문법의 쇠퇴를 논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승한씨는 “상황을 주도하던 사람에서 상황을 조율하는 사람으로 거듭나고 싶어 했다”며 패착을 짚었다. TV평론가 윤이나씨 또한 “강호동에게 대중이 기대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을 배반함으로써 새로운 것을 보여주려고 했으나 결국 실패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래서 결국 강호동은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으로 돌아왔다. 과 리얼 버라이어티 코너인 (SBS)에 차례차례 출연을 결정했다. 두 프로그램 모두 강호동이 지금의 위치로 올라오게 한 친근한 형태의 버라이어티다. 강호동은 과 에서 각각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특기를 살린다. 에서 강호동은 특유의 친화력으로 일반인 출연자들에 섞여든다. 과 에서 갈고닦아온 능숙함이다. 방송의 기승전결을 쥐락펴락하던 강호동은 소싯적 샅바 싸움에서 수를 읽던 승부사 기질을 여전히 놓지 않았다. 예능도 승부로 하던 강호동은 에서 아마추어들 간의 느슨한 경기에 팽팽한 긴장감을 부여하고, 에서는 낯선 외국의 마을 한가운데에서 주어지는 미션을 거침없이 받아들인다.

에서 슈퍼주니어 은혁에게 “예능에서 정색하면 안 된다”며 정색하며 지적하는 강호동의 모습은 여전한 ‘형님 포스’를 내뿜는다. 에서 그랬듯, 강호동은 함께 출연하는 이들을 자신의 서열 아래 배치하며 프로그램을 이끌어나간다. 강호동의 ‘기 센’ 리더십은 다수의 출연자가 등장하는 요즘 예능 포맷에서 다소 부산스러워질 수 있는 현장을 정리하는 힘이기도 하다. 복귀 전 강호동은 (SBS)에 초대된 여러 출연자들의 수다를 평정하듯 정리했고, 에서 만나는 예기치 못한 상황을 힘으로 지배해왔다. 유재석처럼 친절하거나 신동엽처럼 유려하진 않지만 강호동만의 압도적인 소통 방식이 있었다.

힐링 트렌드 속 ‘형님 포스’와 ‘기 센 리더십’

하지만 1년의 시간을 두고 돌아온 강호동에게 힘으로 무언가를 누르는 방식의 진행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기도 하다. 별다른 이슈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를 보면서 우리는 강호동이 힘센 대화법 대신 MC로서 새로운 역량을 찾아야 할 때임을 짐작할 수 있다. TV평론가 김선영씨는 “물의를 일으키기 전 강호동과 그다음 강호동 사이의 이미지 간극”을 지적했다. 누군가의 말에 귀기울이고 ‘당신 편이 되어주겠다’고 응원하는 ‘힐링’이 트렌드가 된 탓도 있겠지만, 시청자는 더 이상 출연진과 시청자 사이에서 압도적 중간자 역할을 했던 강호동을 편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전의 강호동은 토크쇼에서 자신감 있게 사람들을 휘어잡는 입담으로 자기 역할을 해왔지만 지금의 강호동에게 시청자가 바라는 것은 “출연자와 힘겨루기를 하는 강호동이라는 거대한 호스트”(윤이나)는 아닌 듯하다.

돌이켜보면 지난 1년, ‘강호동 없는 텔레비전’은 의외로 잘 굴러왔다. 강호동의 복귀가 예능계의 판도를 바꿀 카드라는 방송가의 예측도 무너졌다. 탁구 치는 것만 4주 연속 방영하면서 시청률을 끌어올리는 것은 강호동의 위력임을 무시할 수 없다. 강호동은 여전한 대세일까. 어쨌거나 2013년은 강호동이 결말을 예측할 수 없는 예능 인생 2막을 연 첫해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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