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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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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제국에서 최초의 인간을 보다

대안 공동체 찾아 지구 끝까지 가본 다큐 <최후의 제국> PD 인터뷰
별을 GPS 삼아 다다른 아누타섬 등에서 공존의 열망을 보다
등록 2012-12-15 02:39 수정 2020-05-03 04:27

그곳에서 무엇을 보았느냐고 묻는다면 그는 ‘공존’이라고 답하겠다고 했다. 6개월의 여정이었다. 벼랑 끝에 선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망을 들여다보고, 시대의 대안을 찾아나선 SBS 이 4부작을 완결했다. 1년 전 기획을 하고 지난 4월부터 9월까지 제작진은 두 팀으로 나뉘어 미국, 중국, 파푸아뉴기니, 남태평양 한가운데 아누타섬, 인도의 브록파 마을, 유럽을 돌았다. 경제 전문가 인터뷰가 1초도 나오지 않는 은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는 지금, 우리를 현상 그대로 들여다봤다. 그래서 은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 다큐멘터리이면서 일견 한 편의 여행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12월5일 서울 목동 SBS 방송사에서 연출을 맡은 장경수 PD를 만나 제작기를 들어봤다.

(위부터) 연민·사랑·협동·나눔의 정신을 뜻하는 ‘아로파’를 공동체의 핵심 가치로 내세운 아누타섬의 아이들, 부자와의 맞선에 나선 중국 상하이에 사는 준리. 돈의 제국이 된 중국에서는 부를 세습받지 못한다면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쟁취하겠다는 욕망이 들끓고 있었다. SBS 제공

(위부터) 연민·사랑·협동·나눔의 정신을 뜻하는 ‘아로파’를 공동체의 핵심 가치로 내세운 아누타섬의 아이들, 부자와의 맞선에 나선 중국 상하이에 사는 준리. 돈의 제국이 된 중국에서는 부를 세습받지 못한다면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쟁취하겠다는 욕망이 들끓고 있었다. SBS 제공

 

이틀 동안 조각배를 타고 이른 아누타섬

은 자본주의의 최전선 미국, 허물어져가는 보호 시스템 속에서 함께 내려앉은 시민들을 들여다본다. 부자 나라 미국에서 사는 어린이 5명 중 1명은 밥을 굶는다. 크리스토퍼 페이건의 가족은 월세 보증금이 부족해 집이 아닌 도로변 모텔촌에 산다. 페이건의 엄마와 아빠는 모두 일하지만 그들은 언제나 가난하다. 아이들은 언제나 배가 고프다. 페이건은 학교에서 체육 수업을 받고 배가 고파 물로 허기를 채웠다고 말했다. 지구 반대편 중국 상하이의 번화가는 밤이 되면 더 화려하다. 부동산으로 벼락부자가 된 젊은이들이 수십억원의 슈퍼카를 몰고 밤의 도시를 누비는가 하면, 부를 세습받지 못한 다른 한쪽은 부자와 결혼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학원에 다닌다. 중국 사람들은 아무런 보호 장구도 쓰지 않은 채 밀려 들어오는 자본을 받아들였다. 그들에게 돈은 현세의 욕구를 실현시켜줄 수 있는 유일한 수단, 돈은 곧 신이다. 돈 위에 세워 올려진 제국들은 자기가 병든 줄도 모른 채 위태롭게 서 있었다. 낭떠러지를 향해 질주하는 이 시스템을 붙들 대안은 없을까. 제작진들은 오래된 공동체에서 해답을 찾아보기로 했다.

장 PD는 “경제인류학의 관점으로 국내외 온갖 종류의 책, 논문, 영상물을 섭렵했다. 자본주의의 반면교사가 될 수 있는, 가치가 있는 곳이 어디가 있을까” 고민했다. 자료를 찾고 경제를 들여다볼수록 “다시 인간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나”라는 말이 속에서 맴돌았다. 추리고 추려 찾은 곳이 공생하는 삶이 두드러지는 파푸아뉴기니의 작은 산골마을, 인도 라다크의 브록파 마을, 남태평양의 아누타섬이었다.

돈이 휘몰아치는 혼돈의 지구 속에서 대안을 찾기가 쉽지 않았듯 그곳을 찾아가는 길 또한 멀고도 험했다. 특히 바다 한가운데 점처럼 찍힌 아누타섬은 가기 어려울 것이 눈에 선했지만 여정은 예상 이상이었다. 두 달 동안 모터보트를 알아보다 실패하고 우여곡절 끝에 화물선을 얻어타고 아누타섬 옆 인구가 1천 명 정도 되는 티코피아라는 섬까지 가서 거기서부터 길이 12m의 조각배를 탔다. 위성항법장치(GPS)는 잡히지 않았고, 위성전화도 터지지 않았다. 아누타섬까지 안내하는 항해술사는 하늘의 별을 보며 바람을 타고 가면 된다고 했다. 황당해진 제작진이 별이 보이지 않고 바람이 섬 방향으로 불지 않으면 어떡하냐고 하자, 느긋한 항해술사는 바닷물에 손을 집어넣더니 파도의 흐름을 느껴 배의 방향을 조정하며 가면 된다고 했단다. 문명의 이기에 의지하지 않아도 결국 갈 곳엔 가게 돼 있었다. 꼬박 이틀 동안 조각배를 타고, 육지에서 출발한 것부터 꼽으면 총 13일이 걸려 아누타섬에 도달했다.

겨우 당도해 들여다본 아누타섬에서 제작진들은 무엇을 보았을까. 아누타섬은 ‘고립된 작은 지구’였다. 지름 2km도 되지 않는 섬에는 약 300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평화로운 공동체인 그곳에도 권력 투쟁이 있고 빈부 격차가 존재했다. 300년 전에는 피를 부르는 살육전이 벌어져 남자들은 대부분 죽고 겨우 4명만 남은 적도 있었다. 이러다 섬이 멸망하겠다 싶어 주민들이 핵심 가치로 내세운 것이 ‘아로파’(연민·사랑·협동·나눔)였다. 서로 사랑하고 공평하게 나누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그곳의 문화를 경험하며 장 PD는 다큐멘터리의 핵심 키워드를 ‘공존을 열망하는 사회적 분위기, 그리고 그 가치를 수호하는 리더’로 삼기로 했다.

 

과거로 돌아가자는 게 아니다

태초에 가까운 환경, 현실에서 너무 먼 이상향과 같은 공간을 대안으로 제시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미국에서 만난 어떤 부자는 돈이 많아지면 사람이 독립적이게 된다고 했다. 모든 가치가 돈이 되고, 돈이 있으면 관계나 연대와 멀어지는 사회다. (작은 공동체에서 본 대안들을 보고) 과거로 돌아가자는 게 아니다. 그 속에서 잊어버린 인류 보편의 가치를 돌아보자는 것이다. 맹목적인 이윤 추구가 아닌 함께 잘 사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면 자본주의의 가치와 공동체적 협력을 함께 실천할 수 있는 제도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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