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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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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 숲에 들어간 당신

등록 2012-10-16 18:22 수정 2020-05-03 04:27

잔인한 범죄가 점점 일상으로 들어오는 세태 속에서 웹툰 <인간의 숲>은 당신은 괴물이 되지 않고 자신을 지킬 수 있는가를 묻는다. <인간의 숲> 16화의 장면들.

잔인한 범죄가 점점 일상으로 들어오는 세태 속에서 웹툰 <인간의 숲>은 당신은 괴물이 되지 않고 자신을 지킬 수 있는가를 묻는다. <인간의 숲> 16화의 장면들.

아이들을 납치해 채찍으로 때리고 배를 가른 노인, 할아버지·할머니 나중에는 친어머니까지 죽이고 성폭행한 청년, 환자들에게 독극물을 주사한 뒤 죽기 직전 그들을 살려내는 것을 취미로 삼은 간호사, 남녀노소 대상을 가리지 않고 20명을 죽이고 성폭행한 연쇄살인범. 이들은 사람이 아니다. 직립보행하는 괴물이다. 그러나 생물학적으로는 우리와 같은 종, 인간이다.

의미 없는 살인 뒤의 당신은?

포털 사이트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하는 은 사람이 아닌 사람, 쾌락을 위해 같은 종을 아무렇지도 않게 살해하는 10명의 살인자들을 한 폐쇄된 건물에 모은다. 서류상으로는 이미 사형당한 걸로 돼 있는 살인자들이다. 당초엔 이들을 대상으로 약물 투여나 어떤 뇌실험을 하고 그 실험이 끝나자마자 죽여버릴 계획이었다. 그러나 만화가 시작되자마자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간단한 도구나 작은 틈만 있어도 손쉽게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살인마들은 연구원들을 죽이고 수용소를 접수한다. 오늘 막 교수의 실험을 도우려고 수용소에 들어온 여주인공 하루만 살아남는다.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그들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유일한 증인인 하루를 해치우고 밖으로 나가면 된다. 그런데 살인자들은 닫힌 수용소에서 입구를 찾아 보안카드로 문을 여는 그 간단한 절차를 해내지 못하고 마냥 건물 안을 떠돈다. 못한다기보다는 그리 할 생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우선 자신을 믿게 했다가 나중에 배신감으로 몸부림치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관음증적 즐거움에 중독된 재준은 단지 그 재미를 위해 하루가 살아남도록 돕는다. 하루에게 살인 도구를 쥐어주며 “당신이 죽여라. 당신이 죽이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부추긴다. 그러나 하루는 누구를 죽여야 하느냐고, 누가 내 편이냐고 묻는다.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돕고, 생명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사람들의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것은 살인자들이다. 그러나 살인자들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그들처럼 살인자가 되거나 살인자의 편을 들지 않고서는 살아날 길이 없어 보인다.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를 해치는 경험, 나아가서는 의미 없는 살인에 동참하는 경험, 만약 그 경험을 치른다면 그때도 그는 사람일 수 있을까. 목이 잘리고 송곳에 찔리며 피가 튀는 은, 당신은 살아남기 위해 괴물과 인간의 경계를 넘을 수 있는지 묻는다. 여기에 H. G. 웰스의 말이 발목을 잡는다. “언젠가 우리가 몸서리치게 잔혹한 행위를 보거나 듣게 된다면 우리는 그 잔혹한 행위를 저지른 짐승만도 못한 놈과 자기 자신은 다르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잔혹 행위를 가능케 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동류의식의 결여입니다.”

새로운 회가 올라오는 매주 월요일이면 웹툰 은 포털 사이트 네이버 검색어 순위 상위에 오른다. 이 만화는 이미 한 영화 제작사와 판권계약을 맺었다. 이 잔인한 만화가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이유는 단지 괴물과 인간을 경계짓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는 어떻게 하면 괴물에게 잡아먹히지 않을 수 있는가, 우리 안의 어둠에 지배당하지 않을 수 있는가를 묻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우리가 우리 안의 어둠을 들여다보는 시간이다. 최근 신문 사회면에 보도되는 날로 잔혹해지는 사건과 함께 이유 없는 살인기계들, 연쇄살인범에 대한 관심도 깊어졌다. 도처에 만연한 폭력. 괴물이기도 환자이기도, 어쩌면 사람이기도 한 주인공을 내세운 웹툰들의 질문과 토론은 사회보다 한발 더 앞서 걷고 있는지 모른다. 2011년 네이버 웹툰에 연재됐던 웹툰 은 우발적으로 사람을 죽인 뒤 무차별적 살인을 저지르는 주인공을 통해 정의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은 지난해 ‘오늘의 우리 만화’로 선정됐다. 지금 포털 사이트 다음 ‘만화 속 세상’에 연재 중인 는 가혹한 우리 역사에 비추어 괴물은 어떻게 태어나는가를 그리고 있다.

연쇄살인범 연구 바탕한 캐릭터들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난 황준호 작가는 “이 만화를 이라고 부른 이유는 인간이란 참으로 알 수가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그 바닥을 알 수 없는 어둠에 대해 그리려 했다”고 말했다. 2009년 사이코패스 남자가 사이코패스 여자를 사랑한다는 이야기 을 통해 만화가로 데뷔한 황 작가는 에서는 교육 문제를 다루었고, 을 통해 다시 살인마 이야기로 돌아왔다. 황준호 작가는 주로 연쇄살인범을 다룬 연구 자료와 영화에서 힌트를 얻고 캐릭터를 구상했다고 한다. 에드먼드 켐퍼, 앨버트 피시 등 세상을 시끄럽게 한 살인마들이 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실제 모델이다. 황 작가는 “작가라면 누구나 독자의 마음을 크게 흔들고 싶어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사이코패스라는 주제가 유용했다. 폭력을 미화하면 포르노가 되겠지만 이건 폭력을 통해 생각해보자는 거니까 유해한 만화를 그리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을 연재한 꼬마비 작가는 전자우편 인터뷰에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불만이나 불안이 무의식적으로 표현되었다는 판단이나 한순간의 추세, 유행으로 분석되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며 “자극적인 소재 또한 작가 개인의 상상력으로 인정해달라”는 뜻을 보내왔다. 10월12일 현재 18회까지 올라온 웹툰 은 30회를 끝으로 연재를 종료할 예정이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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