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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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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을 짓는 집

획일적 주택 아닌 건축주 생각 담는 ‘유쾌한 집짓기-하우스 스타일’

건축가·시공사·인테리어 디자이너 모여 ‘토탈 솔루션’ 제공하는 네트워크
등록 2012-09-26 14:43 수정 2020-05-03 04:26
구청 앞에서 인허가를 대행해주는 사무실 ‘허가방’이 천편일률적으로 찍어내는 표준주택이 절대다수인 풍토에서 협업으로 집짓기 문화를 바꾸자는 건축가들이 나왔다. 김개천 국민대 조형대학 교수가 손으로 그린 경기도 양평집 설계도와 조감도. 김개천 교수 제공

구청 앞에서 인허가를 대행해주는 사무실 ‘허가방’이 천편일률적으로 찍어내는 표준주택이 절대다수인 풍토에서 협업으로 집짓기 문화를 바꾸자는 건축가들이 나왔다. 김개천 국민대 조형대학 교수가 손으로 그린 경기도 양평집 설계도와 조감도. 김개천 교수 제공

건축주는 소박하고 작은 사랑방을 하나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더 나이 들어서 오랫동안 머물 수 있는 곳, 찾아오는 사람들이 부담 없이 쉬었다 갈 수 있는 곳을 원했다. 건축가는 작지만 무한처럼 느껴지는 집을 짓고 싶었다. 국민대 조형대학 김개천 교수는 사람의 삶과 지향을 확장하고 증폭할 수 있는 공간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구상된 집은 ‘한칸집’. 평면을 들여다보노라면 집의 모양새가 궁금해진다.

9칸 집이 1칸 되는, 1호 주택

이 집은 실은 9칸짜리다. 가로세로 3m씩 되는 공간이 9개가 붙어 정사각형을 이루었다. 그러나 9칸 사이사이 문이 열리면 문은 벽 속으로 숨고 집은 1칸이 된다. 곧 집주인이 될 이는 이내옥 국립중앙박물관 연구원이다. “김 교수가 이번에 그러더라고요. 9칸을 나누었는데 열어버리면 하나가 되는 거예요. 9에 1을 더하면 10이 되지 않습니까. 에서 말하듯 10은 완벽한 숫자 아닙니까. 하나 속에 우주가 다 들어 있고, 우주가 하나로 수렴되는 공간, 그런 걸 건축학적으로 구현하려는 것 같습니다. 저는 더 소박한 사랑방을 생각했는데요, 김 교수가 자꾸 권하길래 당신 뜻대로 하라고 했습니다.” 유교식 사랑방에서 출발해 불교적인 방장으로 가는 집, 이곳은 내년 봄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에 있는 397m²(120평) 남짓한 땅에 지어질 집이다. ‘유쾌한 집짓기-하우스 스타일’의 1호 주택이기도 하다.

‘하우스 스타일’은 건축가들과 인테리어 디자이너 김주원씨, 시공사 등 집 짓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네트워크다. 집을 지으려는 사람에게 맞는 건축가와 시공사를 추천하고, 예산계획과 디자인 품질 관리를 해주겠다는 회사다. 권형표·김순주, 김개천, 김동희, 김창균, 문훈, 서승모, 서현, 신희창, 오영욱, 유현준, 윤재, 이강수·강주형, 이중원, 이충기, 이현욱, 임형남·노은주, 장형철, 정기정, 정수진, 조남호, 조재원, 조정구, 지정우·서주리, 최-페레이라 등 24명의 건축가가 한데 모인 이유는 ‘집 짓는 문화를 바꾸자’는 것이다.

지난 8월15일 문을 연 ‘하우스 스타일’의 김주원 대표는 이렇게 설명한다. “단독주택 붐이 일어 2008년 한 해 지어진 단독주택이 3만 채라고 하면 올해는 5만 채의 집이 새로 지어진다고 해요. 이 중에서 건축가가 짓는 집은 1%도 안 되죠. 대부분의 집은 구청 앞에서 인허가를 대행해주는 ‘허가방’이라고 하는 사무실에서 짓습니다. 건축계는 곧잘 ‘전국토의 집장사화’를 안타까워하지만, 설계비는 적고 품은 많이 들어가는 탓에 건축가들도 개인 주택에는 관심이 많지 않았어요. 집짓기 문화를 바꾸자는 소명의식 같은 것이 퍼졌습니다.”

올해 5만 채의 집이 새로 지어진다고 해도 그중 1만 채는 목조주택이다. 흙집, 나무집, 빨간 벽돌집 유행과 경제적 사정에 따라 일률적으로 지어지는 표준주택들에는 그곳에 사는 사람의 삶과 생각이 들어설 여지가 별로 없다. 건축가는 집이 사람의 생각을 일러줄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집이 누군가의 삶에 구석구석 관여하고, 다른 사람들과 이웃하는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건축가 김원의 말에 따르면, ‘하우스 스타일’에 참여하는 건축가들은 “집장사의 획일적인 집들은 물론이고, 건축주의 독특한 삶의 방식을 고려하지 않은 이른바 대가들의 멋진 집들도 치우자”는 선동에 넘어간 셈이다. 김개천 교수도 말한다. “10년 전부터 1년에 한 채씩은 저렴한 시공비를 받고 살림집을 지어왔다. 그런데 어느 순간 보니 그것만으로는 되지 않고 더 많은 사람이 함께할 수 있으면 싶었다. 우리의 주거환경은 문화적인 삶과 퍽이나 거리가 멀다. 대부분의 건축가들은 이런 기회가 주어지기를 원한다. 이것은 건축가들이 사회와 소통하고 싶다며 보내는 신호다.” ‘금산주택’으로 이름을 알린 임형남 가온건축 대표는 “작은 집을 짓고 싶어 찾아오는 사람들은 대체로 예산이 다 적었다. 설계는 그 돈에 맞춰줘도 공사비는 감당이 안 돼서 맨날 전전긍긍했다. 노하우가 많은 사람들을 만나 큰 시름을 덜었다. 집 짓는 사람들의 사정에 맞춰 적당한 돈으로 지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말한다.

존경과 행복은 어떻게 생겼나?

건축가들이 집짓기 문화에 눈을 돌릴 동안 집주인들의 마음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하우스 스타일’을 찾는 사람들은 우선 시공비에 관심을 갖지만 50대가 가격을 먼저 물어본다면, 30대는 설계 과정과 스타일을 우선시한다. 젊은 층일수록 집 짓는 정보를 많이 갖고 있으며 원하는 집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리는 사람이 많단다. 30대 중반인 유명훈 코리아 CSR 대표는 임형남·노은주 부부 건축가에게 ‘존경과 행복의 집’을 주문했다. 지속 가능한 경영, 친환경 경영, 기업의 사회적 책임 등을 강연하고 컨설팅하는 남편은 존경의 집을, 아내는 행복의 집을 원했다. 임형남 가온건축 소장에겐 “존경의 건축적 어휘는 대체 어떻게 생겼는지”, 김주원 대표에겐 “존경과 행복의 마감재는 대체 무엇인지”가 숙제로 떨어졌다. 경기도 가평 아침고요수목원 근처에 지어질 이 작은 집에 부부는 자신들이 가진 1천 권의 책을 동네 사람들과 돌려볼 작은 도서관, 부부가 함께하는 사무실, 살림집들이 한데 들어서는 공간을 꿈꾸고, 임형남·노은주 건축가는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을 집 곳곳에 숨길 생각이다. 둘의 생각이 만나 뼈대를 갖추는 내년 봄쯤 집이 들어선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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