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이라고 쓰고, ‘동네북’이라고 읽는다. 명절 때는 특히 그렇다. 30년 넘게 안 한 결혼을 집안 어른의 말 한마디에 할 리 없는데도 얼굴만 보면 “올해는 결혼해야지”다. 피할 곳도 없는 싱글에게 집안일은 덤이다. 밸런타인데이·화이트데이보다 더 큰 시련, 민족의 명절을 맞아 싱글들이 집을 나섰다.
“아름다운 절에서 좋은 인연”
지난 9월22일 경기도 수원 광교산에 있는 봉녕사에서 템플스테이를 열었다. 7월부터 매월 마지막 주에 해오던 템플스테이지만 이번에는 좀 다르다. ‘추석을 맞아도 집에 가기 곤란한 미혼들을 위한’ 템플스테이란다. 추석을 한 주 앞두고 열린 템플스테이에 참여한 사람은 추석 명절 당일 절에서 쉬었다 갈 수 있도록 했다. 봉녕사는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처이자 승가대학을 운영하고 있는 곳으로 외부 사람들이 머물다 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던 절이다. 행사를 진행한 법경 스님의 말이다. “미혼 남녀가 절을 찾으면 비구니 스님들의 도량이다 보니 다른 절에서는 느낄 수 없는 동세대 의식을 느끼게 된다. 결혼연령대가 늦어졌다고 부모님의 걱정을 들어야 하는 그분들의 마음을 헤아리다 보니 하룻밤 산사를 비워드리는 것은 어떨까, 같은 연령의 수행자들이 비구니 스님과 동료들을 보면서 내 마음과 모습을 비춰보는 게 어떨까 해서 행사를 마련했다.”
행사를 처음 기획한 정원 스님은 이렇게 설명했다. “봉녕사 템플스테이에서는 팔관재계를 받드는 의식을 지내고 참가자들에게 법명을 내린다. 팔관재계는 불교의 5계에 보태 오후에는 식사를 하지 말고, 높고 편안한 침상에서 자지 말 것이며 치장하고 화장하지 말라는 좀더 엄격한 법도다. 하룻밤 하룻낮 동안 법명을 지니고 8가지 계율을 지키며 수행의 삶을 살아보는 행사다.” 마가 스님은 ‘자기 행복 창조’를 주제로 강연했다. 들뜬 명절 대신 엄격하고 고요한 수행처로의 초대에 반응이 뜨거웠다. 템플스테이 시작을 3일 앞두고 미혼 남녀 30명 정원이 거의 다 찼다. 다음번에는 명절 당일에 열어달라는 부탁도 많았단다. 35살, 금융계 회사에 다닌다는 한 참가자는 “‘추석이 와도 곤란한’이라는 문구가 가슴을 쳤다”며 “아름다운 절에 좋은 인연까지 만난다면 더없이 좋을 것 같습니다. 생애 첫 템플스테이가 설렙니다”라고 참가 이유를 밝혔다.
지금 싱글들은 결혼을 망설이는 대신 혼자 살아가는 자신의 삶을 튼튼하게 만든다. 여행·숙박 예약 사이트 인터파크투어가 집계해보니 지난여름 휴가 때 혼자 여행을 떠난 사람이 1년 새 22% 늘었다. 2011년에도 10명 중 3명이 혼자 여행을 떠났고 그중 여성의 비율이 64%로 훨씬 높았다. 인터파크투어에서는 추석엔 아예 나홀로 여행을 위한 좌판을 폈다. 싱글족 겨냥 기획전 ‘잔소리 피해 떠나는 추석 연휴 여행’ 상품으로 중국·일본·필리핀·대만·홍콩·마카오 등의 여행상품을 판매한다.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에게 영화표도 주는데 물론 1장이다. 인터파크 이은영 마케팅팀 대리는 “나홀로 여행이 증가 추세인데다 이번 연휴는 짧아서 특히 싱글 여행객 비중이 높다”며 “가까운 대만·홍콩·마카오 등이 잘 팔린다”고 말했다.
휴양형도 있다. 서울 팔레스호텔에서는 나홀로 명절을 보내는 사람들을 위해 9월27일부터 10월3일까지 반값 객실전을 연다. 호텔업계에서는 명절 연휴가 비수기지만 명절을 피해 호텔을 찾는 사람도 많다. 패션 브랜드 에트로 홍보팀에서 일하는 박지은(35)씨는 추석날 아침 일찍 차례를 지내고 저녁에는 결혼한 언니와 함께 호텔에서 잘 예정이다. 박지은씨는 “고모·이모·삼촌까지 ‘시집은 언제 가냐’고 이야기하니 이젠 친척들 모임에 잘 안 가게 된다”며 “명절치레에 고생한 언니를 위해서기도 하고 나도 쉬려고 호텔의 여러 가지 서비스를 이용하려고 한다. 전날 밤부터 꼬박 명절을 준비하니 싱글도 피곤한 것은 마찬가지”라고 한다.
영화관에 싱글 남자가 더 많은 까닭은
미리 도피로를 정하지 않았다면 영화관이 제격이다. 영화 예매 사이트 맥스무비를 통해 보면 명절 연휴 ‘나홀로 관객’ 비율은 꾸준히 늘고 있다. 2011년 설 연휴 때 나홀로 관객은 9.2%로 40만 명이 조금 못 됐는데, 2012년 설 연휴 때는 43만 명으로 2%가량 늘었다. 맥스무비 김형호 웹사업실 실장은 “특히 30대 관객이 명절 연휴에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는 조용히 극장에서 영화를 보며 쉬는 시간을 가지려는 경향이 커진 것으로 보인다”며 “이들은 장르 취향이 강해 비평가들의 평점이 낮더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장르나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한 영화를 챙겨 보는 관객”이라고 말했다. 특이한 것은 남자 관객의 비중이 점점 커진다는 점이다. 2012년 설 연휴 때 혼자 영화를 본 사람들 중 남자가 50.4%로 처음으로 여자 관객 비율을 앞섰다. 김형호 실장은 “싱글이든 커플이든 아직까지 명절 노동은 여자들의 몫이다. 명절 연휴에 상대적으로 일이 적은 남자들이 영화관을 찾는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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