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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광란의 9월’

미국이 대학농구에 열광하는 ‘광란의 3월’의 한국판 ‘광란의 9월’

대학농구 ‘홈 앤드 어웨이’로 재학생 관중몰이, 9월부터 6강 플레이오프
등록 2012-09-25 17:07 수정 2020-05-03 04:26

미국에선 ‘광란의 3월’이라는 말이 있다. 해마다 3월에 열리는 미국 대학농구 64강 토너먼트의 열기를 뜻한다. 언론과 팬들은 각 팀들이 토너먼트를 통과할 때마다 시의 운율에 맞춰 ‘달콤한 16강’(Sweet Sixteen), ‘엘리트 8강’(Elite Eight), ‘파이널 포’(Final Four·4강) 등의 이름을 붙인다. 그 인기는 미국프로농구(NBA)에 버금간다. 직장인들은 휴가를 내고 자신이 응원하는 팀과 같은 숙소에 머물거나, 같은 대학 동문끼리 티셔츠를 맞춰 입고 응원하는 경우도 많다. NCAA는 미국대학체육협회(National Collegiate Athletic Association)를 뜻하지만 대학농구의 인기가 워낙 뜨겁다 보니 NCAA는 미국 대학농구의 대명사가 됐다.
 
응답하라 1997, 대학농구 
우리나라도 한때 대학농구의 인기가 성인 농구를 앞선 적이 있다. 한기범·김유택·허재·강동희의 중앙대, 이상민·문경은·우지원·서장훈의 연세대, 전희철·김병철·현주엽·신기성의 고려대 등은 ‘오빠부대’라는 신조어를 만들며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10년을 대학농구의 전성기로 수놓았다. 그러나 대학농구는 프로농구 인기와 반비례했다. 2000년대 들어 1년에 4~5차례 열리는 대학 대회는 관중석이 텅 빈 썰렁한 체육관에서 치러졌다.
 ‘아! 옛날이여’를 외치던 대학농구의 패러다임이 2010년부터 획기적으로 바뀌었다. 2010년 3월26일 고려대 화정체육관에서 열린 연세대와의 라이벌전을 시작으로 ‘한국판 NCAA’가 태동한 것이다. 전국대회를 통·폐합해 대학농구도 프로농구처럼 홈 앤드 어웨이를 통한 리그제와 플레이오프로 챔피언을 가린다. 대학농구리그는 올해도 12개 대학이 참여해 홈 앤드 어웨이로 팀당 정규리그 22경기씩 치러 6강 플레이오프 진출팀을 가렸다.
지난 9월18일 오후 2010 대학농구리그 연세대와의 6강 플레이오프 2차전이 열린 동국대 체육관은 관중석을 가득 메운 1천여 명의 열기로 가득 찼다. 동국대 응원동아리 ‘백상’ 학생들의 주도로 줄기차게 응원전이 펼쳐졌고, 박빙의 승부가 이어질수록 동국대생들의 박수와 함성 소리도 커졌다. 대학농구가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바뀐 뒤 달라진 풍경이다. 이상원 대학농구연맹 사무차장은 “오늘보다 관중이 더 많이 온 경우도 많았다”며 “1·2위 대결로 관심을 모은 고려대와 경희대의 경기는 고려대 화정체육관에 양교 학생 3천여 명이 응원전을 펼쳤고, 한양대와 경희대의 경기에서도 그 이상의 관중이 몰려 열기가 뜨거웠다”고 전했다.
대학농구리그가 선을 보이기 전까지 대학농구대회는 스폰서 때문에 대부분 지방에서 짧은 기간에 치러졌다. 이 때문에 재학생들이 경기장에 응원 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요즘 대학농구 경기장은 축소판 프로농구 경기장이다. 프로농구처럼 장내 아나운서나 치어리더가 나서 흥을 돋우는 대학도 있고, 연세대에선 독수리 모형의 캐릭터 인형까지 등장했다. 형식만 프로를 따라하는 건 아니다. 경기 내용도 흥미롭다. 올해 최고의 관심은 경희대의 2년 연속 우승 달성 여부다. 경희대는 지난해 정규리그와 플레이오프에서 26전 전승으로 우승했고, 올해도 21승1패로 정규리그 1위를 차지했다. 경희대를 무너뜨릴 팀으로는 조직력이 뛰어난 정규리그 2위 고려대와 경희대의 41연승을 저지했던 3위 중앙대가 꼽힌다.
 
중앙대 vs 한양대, 운명의 재대결
6강 플레이오프에서는 중앙대와 한양대의 재대결도 눈길을 끌었다. 두 대학은 지난해에도 6강 플레이오프에서 만나 예상을 뒤엎고 정규리그 6위로 올라온 한양대가 정규리그 3위를 차지한 중앙대에 2연승을 거뒀다. 당시 중앙대는 주전 센터 장재석의 부상 공백으로 쓴잔을 마셨다. 중앙대는 한양대와의 악연을 올해 정규리그에서도 끊지 못했다. 정규리그 마지막 상대인 한양대를 물리쳤더라면 정규리그 2위를 확정해 4강에 직행할 수 있었는데 지난 9월11일 경기에서 한양대에 71:80으로 지는 바람에 고려대에 2위 자리를 내주고 6강 플레이오프부터 치렀다. 중앙대는 대학리그에서 3년 동안 한양대를 상대로 정규리그 5승1패로 우위를 보였지만 그 1패가 결정적일 때 나왔다. 그러나 중앙대는 지난 9월17∼18일 6강 플레이오프에서 한양대를 상대로 1차전 83:74, 2차전 97:76의 완승을 거두고 아픔을 깨끗이 씻어냈다.
경희대와 연세대, 고려대와 중앙대의 4강 플레이오프는 9월24일부터 3전2선승제로 홈과 어웨이를 오가며 열리고, 챔피언결정전은 10월3일부터 장소를 용인체육관으로 옮겨 역시 3전2선승제로 펼쳐진다. 농구팬들이라면 한국판 NCAA의 열기를, ‘광란의 9월’을 현장에서 한번쯤 느껴보면 어떨까.

김동훈 기자 한겨레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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