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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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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의 육감

언제나처럼 ‘캐릭터’ 싸이와 ‘프로듀서’ 싸이가 똑똑하게 공존하는 새 앨범 <싸이6갑(甲)>
등록 2012-07-26 13:56 수정 2020-05-03 04:26
싸이가 6집 발매 뒤 첫 무대인 7월15일 SBS <인기가요>에서 <강남 스타일>을 부르고 있다. SBS 제공.

싸이가 6집 발매 뒤 첫 무대인 7월15일 SBS <인기가요>에서 <강남 스타일>을 부르고 있다. SBS 제공.

, 싸이의 새 앨범 제목이다. ‘육갑’이란 말은 싸이와 더없이 잘 어울린다. 육갑은 왠지 싸이의 전매특허인 ‘난장 공연’과도 연결돼 있는 듯하고, ‘신’(神)이란 한자가 잘못 변형돼 인터넷에서 주로 쓰이고 있는 ‘갑’(甲)의 활용 역시 싸이답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싸이는 늘 그래왔다. 그는 음악을 위해 자신의 희화화하길 주저하지 않았고, 유행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줄도 알았다. 이런 이미지에 가려 음악적으론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지만 이번 음반에서도 그는 자신의 음악을 스스로 책임졌다.

‘엽기’란 말에 가려진 사실

내가 ‘싸이’란 이름을 처음 본 건 2000년이었다. TV 무대가 아닌 (Psy From The Psycho World)라는 앨범을 통해서였다. 그 앨범에는 엽기 코드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싸이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그냥 아무렇게나 만든 것 같은 앨범 커버 디자인부터 노래 제목, 그리고 의 뮤직비디오까지, 인기를 얻기 이전부터 그에게는 ‘저예산’ 혹은 ‘쌈마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려 보였다. 그리고 이 ‘쌈마이’ 정서는 ‘엽기’라는 당대의 유행과 맞물리며 지금의 인기 가수 싸이를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싸이가 민소매 옷을 입고 겨드랑이를 드러낸 채 막춤을 추는 순간 싸이에 대한 모든 음악적 판단은 날아가버렸다. 그는 첫 정규 앨범에 수록된 20곡의 노래를 만들고 프로듀싱한 젊은 음악가였지만 ‘엽기’란 낱말에 이 모든 사실은 가려졌다. 그는 이상하게 생겨서 이상한 춤을 추는 이상한 가수였을 뿐이다. 사람들은 그 이상함을 즐겼을 뿐이다. 하지만 그의 음악까지 이상하진 않았다. 그는 힙합에 대한 관심을 음악을 통해 표현할 줄 알았고, 쇼킹블루의 를 샘플링해 만든 에서 알 수 있듯 샘플링이나 노랫말에서의 라임(rhyme) 운용 등 힙합에 대한 이해도도 높은 편이었다.

한마디로 그는 음악을 곧잘 하는 가수였다.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대중에게 직선적으로 전달할 줄 아는 영민한 음악가였다. 두 번째 앨범 를 통해 더욱 직설적으로 더욱 힙합에 가까운 음악들 들려주고자 했던 그의 의도는 대마초 흡연으로 인한 구속과 함께 묻혀버렸지만, 재기작 을 통해 확고하게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행사에서 사랑받는 가수, 하지만 행사용 음악만을 만들지 않는 가수’, 싸이였다.

지난 5집 앨범 (Psyfive)에서부터 그에게는 작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현재 한국에서 가장 ‘핫’한 레이블인 YG엔터테인먼트에 합류하며 YG패밀리의 일원이 된 것이다. 힙합적인 성향이 강한 YG엔터테인먼트와 데뷔 때부터 힙합 음악에 관심을 보여온 싸이의 결합이 어떤 결과를 낼까가 많은 관심거리였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5집 , 그리고 6집의 첫 번째 파트인 에서 음악적인 변화를 발견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이번 음반에 빅뱅의 지드래곤이 참여하고, 음반 커버에 깨알만 하게 YG 수장인 양현석의 모습이 삽입된 것을 제외한다면 YG엔터테인먼트를 통한 음악적 변화나 영향을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여전히 ‘행사에서 사랑받는 가수, 하지만 행사용 음악만을 만들지 않는 가수’ 싸이의 모습을 한결같이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허세 부리는 남자, 낭만 아는 멋진 남자

오히려 이번 음반에서 더욱 눈에 띄는 건 작곡가 유건형의 참여다. 유건형은 과거 아이돌 그룹 같기도 하고, 힙합 그룹 같기도 하던 언타이틀의 리더였다. 초창기부터 싸이의 음반에 참여해온 유건형은 지난 앨범 에서부터 이번 까지 싸이와 함께 대부분의 곡을 만들며 자신의 지분을 대폭 확장했다. 싸이와 유건형 모두 힙합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그 틀에 얽매이지 않고 싸이란 캐릭터를 통해 다양한 스타일과 여러 가지 장치를 표현해낸다. 강렬한 기타 연주를 전면에 내세운 트랙들을 소개하기도 하고, 1977년생 동갑내기 친구들과 함께 을 부르며 과는 또 다른 (노골적인) 추억을 소환하기도 한다. 그리고 여전히 싸이스러운 이나 같은 노래들이 있다.

어쩌면 싸이의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캐릭터’일지 모른다. 엽기 가수, 대마초를 피운 전과자 가수, 청담동 호루라기와 친구인 가수, 군대를 두 번 갔다 온 가수, 싸이는 이 특수한 상황들을 모두 더해 능청스런 하나의 캐릭터를 만들었다. 그래서 그가 “오빠는 강남 스타일”이라며 허세를 부릴 때도, “네가 나를 딱딱하게 만들었잖아”라고 19금스러운 얘길 할 때도 싸이란 캐릭터 안에서 용인이 된다. 그리고 그 캐릭터는 때로는 이나 같이 낭만을 노래할 줄 아는 멋진 남자가 되기도 한다.

이 캐릭터를 통해 음반에 참여한 가수들 역시 싸이를 닮아간다. 토이의 노래를 커버한 에서 ‘발라드의 황제’ 성시경은 “잘 자요”란 버터 멘트를 기꺼이 제공하고, 에 참여한 김진표와 리쌍 역시 싸이를 따라 좀더 솔직하고 노골적인 얘기들을 랩으로 풀어낸다. 지드래곤, 성시경, 윤도현, 박정현, 리쌍, 김진표, 이 쟁쟁한 인물들을 적재적소에 제대로 ‘부릴’ 수 있었던 건 프로듀서 싸이의 재능이었다. 앨범 안의 ‘캐릭터’ 싸이와 앨범 바깥의 ‘프로듀서’ 싸이는 늘 그렇게 똑똑하게 공존하고 있다. 앨범 안에서건 행사장에서건 스튜디오에서건 싸이는 여전히 명석하다.


김학선 웹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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