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집 안에서 빗소리나 들으면 좋으련만 사회적 동물인 우리는 문밖을 나서야 한다. 회사로, 학교로, 누군가를 만날 장소로. 장마철, 나가기만 하면 온몸은 물에 젖은 스펀지 꼴이 되고 발은 고인 물에 한두 번은 빠질 것이 뻔하니 옷 입기가 망설여진다. 물에 젖어도 아깝지 않을 만한 것을 꺼내 입자니 하루 종일 구름 낀 날씨처럼 우중충한 기분이고, 그렇다고 새로 산 구두를 신고 나갈 수도 없는 일. 늦은 장마가 시작됐다. 올해는 장마가 끝나도 국지성 집중 호우가 잦을 것이라는 기상청 예보가 있었다. 패션업계는 레인부츠와 레인코트 등 장마철 아이템을 선택지로 제시했다.
케이트 모스, 프랑스 나막신, 영국군장마철 패션용품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 레인부츠다. 레인부츠는 2005년 영국 모델 케이트 모스가 록페스티벌에서 검정 고무 장화를 신은 모습이 사진에 찍혀 인터넷을 타고 돌며 전세계 패션피플을 자극해 유행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3~4년 전부터 신는 사람들이 눈에 띄더니 올여름엔 본격적으로 대중화했다. 장마철을 앞두고 레인부츠 행사 등을 마련한 롯데백화점 아동스포츠MD팀 윤성환 선임상품기획자는 “레인부츠 판매 초기 시점에는 개성이 강한 젊은 여성을 중심으로 착용했으나, 최근에는 패션성과 기능성이 인정받아 여름철 대표 아이템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레인부츠의 대표 격은 영국 헌터사의 웰링턴 오리지널 부츠다. 웰링턴 오리지널 부츠는 영국 웰링턴 공작이 굽이 낮고 길이가 무릎까지 오는 편안한 신발을 구두공에게 의뢰해 만든 신발에서 이름이 유래한다. 헌터사는 천연고무를 이용해 웰링턴 부츠와 같은 모양으로 수분을 견딜 수 있는 부츠를 제작했다. 헌터사의 제품이 이름을 알린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중 진흙 전투를 경험한 영국 군대가 200만 켤레의 부츠를 구매하면서부터다. 헌터사에 앞서 미국 기업가 히람 허친슨은 1853년 당시 신소재인 고무를 이용해 ‘웰리부츠’라는 이름의 초기 제품을 만들었다. 허친슨은 프랑스에서 사람들이 비와 진흙으로부터 발을 보호하려고 나막신을 신고 일하는 모습에서 시장 가능성을 읽고 웰리부츠를 제작했다.
19세기의 유래도, 21세기의 유행도 바다 건너에서 출발하다 보니 국내에서 패션 아이템으로 소용되는 레인부츠 제품은 대부분 수입 브랜드다. 군용 제품에서 출발한 웰링턴 오리지널 부츠는 2009년 한국에 패션 아이템으로 물 건너왔다. LG패션은 2009년 하반기 영국 헌터사와 수입계약을 맺고 본격적으로 국내 유통을 시작했다. 매출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LG패션 수입사업부 서철우 MD는 “매년 매출이 늘어나는데, 2010년과 2011년을 비교하면 1년 사이에 판매량이 3배 가까이 늘었다. 올해는 이미 49억원 매출을 올려, 지난해 대비 1.5배 수준인 매출 100억원을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허친슨의 웰리부츠는 프랑스 브랜드 에이글의 레인부츠로 이어졌다. 2005년 국내 론칭한 에이글은 2006년 봄시즌부터 레인부츠를 판매해왔다. 영원무역 홍보팀 박숙용 과장은 “첫 판매 때는 레저용으로, 기능에 주목하는 고객들이 주로 찾았다”며 “패션 아이템화하기 시작한 것은 3~4년 전부터”라고 했다. 시즌이 거듭될수록 레인부츠의 인기는 폭발적이다. 영국 브랜드 락피쉬를 수입하는 에이유커머스 온라인영업팀 김하나 대리는 “올해 판매 목표량을 지난해 대비 200%로 잡고 있다”고 밝혔다.
헌터와 에이글사에서 판매되는 레인부츠는 각각 10만원대에서 많게는 50만원대까지 가격대가 높은 편이다. 비교적 싸다는 락피쉬사의 레인부츠도 7만원대다. 시중에서 유통되는 레인부츠 중 저렴한 것은 1만원 이하로도 구입이 가능하다. 이에 각 브랜드들은 고유의 기술과 소재를 차이점으로 내세웠다. 헌터사는 천연고무를 28조각으로 재단한 뒤 다시 입체적으로 이어 부츠를 제작한다. 에이글사는 발 모양에 맞춘 부츠 형상의 틀에 녹인 고무를 부어 제작한다. 락피쉬는 고무를 원단처럼 재단해 패턴을 떠서 만든다. 더불어 세 브랜드의 관계자는 입을 모아 천연고무의 특성을 설명했다. 저렴한 제품군에서 주로 사용하는 PVC(폴리염화비닐)의 경우 화학 소재라 통풍이 잘 되지 않아 피부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전했다.
어느새 비오는 날의 단체화그러나 너도나도 비슷한 제품을 착용하는 ‘비싼 유행’을 보는 것만으로도 지친다는 의견이 있다. 패션브랜드그룹 에프앤에프 정보실의 민혜성씨의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클론 같은 느낌이라 신지 않는다. 그런데 패션업계 사람들도 비 오는 날이면 하나같이 레인부츠를 착용하고 출근한다. 이제는 레인부츠를 신는 것이 패셔너블하다는 인식은 끝났고, 다시 실용성에 주목하고 있다. 국내 브랜드의 제품군이 다양해졌고 저렴한 시중 제품 중 오히려 디자인이 독특한 것이 많으니 시도해보는 것도 괜찮다. 젤리슈즈, 레인코트 등 방수 기능을 가진 다른 제품으로 장마철을 대비하는 것도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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