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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들에겐 조국이 없다

세금 피해 벨기에로 향하는 프랑스 부자들의 행태 꼬집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7월호
등록 2012-07-11 16:41 수정 2020-05-03 04:26

“프랑스 기업들이 세금을 피해 영국으로 온다면, 레드카펫을 깔고 환영하겠다.”
지난 6월19일 멕시코 로스카보스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만찬장에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에게 건넨 말이란다. 올랑드 대통령이 선거운동 기간에 내세웠던 연 100만유로 이상 고소득자에 대한 75% 과세 공약을 거론한 게다. 남의 나라 조세제도를, 그것도 면전에서 비꼬았으니 분위기가 험악해질 수밖에. 결국 영국 정부는 공식 브리핑에서 ‘영국식 농담’이라며 말을 주워담았다.

김칫국 들이켠 캐머런 영국 총리

그런데, 이를 어쩐다. 한국판 7월

호를 보면, 프랑스 부자들은 영국보다 벨기에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프레데리크 파니에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부의 직접적 산물인 이자와 배당금은 최상위 부자들의 소득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며 “벨기에에서는 자본가치의 증가와 배당금의 대부분이 과세소득 신고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프랑스 부자들의 조세 피난처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 지적했다. 캐머런 총리께서 김칫국을 제대로 들이켜셨다.

통행료 걷어 대기업에 주는 고속도로 민영화는 한국의 ‘특산품’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언론인 필리프 데스캉은, 리오넬 조스팽 좌파 정부에서 시작돼 니콜라 사르코지 우파 정부에서 일반화된 고속도로 민영화 정책을 두고 ‘프랑스식 유착자본주의’라고 꼬집었다. 데스캉은 “민영화가 국가 부채 감축에 지금 당장 가져올 눈앞의 이익만 보고, 앞으로 민자회사들에 나눠줘야 할 배당금은 애써 잊고 있다”며 “공공서비스에 반대하는 적들 간의 영합 관계를 가감없이 드러내주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방글라데시 그라민은행을 통해 전세계로 알려진 마이크로크레디트(소액대출)의 ‘변심’을 다룬 ‘인도 마이크로크레디트의 역겨운 돈놀이’ 기사도 눈길을 끈다. 마이크로크레디트는 극빈층에게 약간의 종잣돈을 빌려줘, 영리활동을 통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을 목적으로 탄생했다. 인도에선, 되레 가난한 이들의 고혈을 짜내 업체들이 자산을 불리고 있단다. “돈을 벌려면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에 가야 한다. 그들은 돈은 적지만 머릿수가 많다”던 유머작가 알퐁스 알레의 농담을 실행에 옮긴 셈이다. 대출받은 이뿐 아니라, 연대보증을 선 이웃들까지 독촉과 협박에 시달리다 못해 분신을 하는 경우까지 나왔단다. 상황이 고약하다.

한국판에 비중 있게 실린 김진철 경제부 기자가 쓴 ‘글로벌 삼성의 역설’은 울림이 크다. 최근 경영권 다툼 과정에서 벌어진 막발 공방과 뒤이은 이건희 회장의 유럽 출장, 그룹 ‘2인자’인 미래전략실장 전격 교체 과정을 세밀히 추적한 김 기자는 ‘자산 280조원’의 글로벌 기업 삼성의 본질을 ‘주군과 가신의 봉건문화’에서 찾는다.

한국 경제의 비극, ‘CEO 리스크’

김 기자는 “총수의 한마디가 기업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게 하는 것처럼, 총수의 단 한 번의 실수가 커다란 기업집단을 거꾸러뜨릴 수도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른바 ‘최고경영자(CEO) 리스크’다. 이미 삼성 내부에서 “미래전략실이 그룹의 사령탑 구실을 제대로 못하고 회장의 눈치만 본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단다. 이쯤 되면 김 기자의 표현처럼, “그 자체로 한국 경제의 비극”이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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