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서울 신촌 대학가가 축제에 들떴을 때, 마포구 상수동 뒷골목에서도 축제가 열렸다. 5월26~28일 당인리발전소 앞 일대에서 열린 상수동 골목축제다. 이 축제는 풍기는 냄새도 좀 다르다. 참기름집에서 파전 부치는 고소한 냄새와 ‘핸드드립 커피 강좌’를 하는 커피집에서 풍기는 커피향이 한데 섞였다. 스마트폰으로 축제 풍경을 찍는 젊은이들 사이사이로 통장과 부녀회장이 거리에 앉아 동네 이웃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인다. 올해로 두 번째를 맞은 ‘오월 어느 날 축제’는 거리에 오래전부터 터 잡고 사는 터줏대감인 상인들과 얼마 전부터 이주해오기 시작한 새로운 가게 주인들이 함께 벌이는 축제다.
새롭고 특이한 가게 많은 상수동
홍익대 앞에서 신촌이나 합정동으로 뻗어가는 개발도 한켠으로 비켜선 이 거리에는 어느덧 새롭고 특이한 가게가 하나둘 늘고 있다. 자신의 작업실이나 매장을 갖고 싶은 젊은 예술가들이 홍대 앞의 비싼 월세 때문에 그쪽으로 갈 엄두를 내지 못하는데다, 붐비는 문화특구보다는 옆집과 앞집이 얼굴을 익히는 다정한 동네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골목축제 기간에 열린 ‘동네 한 바퀴’ 프로그램을 따라가보니 새로 생긴 가게와 주인장들의 표정이 다채롭다. 이 동네에서 요즘 사람이 가장 몰린다는‘제비다방’은 건축가 오상훈씨가 고친 집에 들어선 술집이자 공연장이다. 건축가가 다방 주인인 셈이다. LP판이 가득한 카페‘LP愛’의 주인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이고,‘상수동카페’는 여성영화를 만들던 사람들이 의기투합해 차린 카페라고 했다. 전시회를 기획한 김남균씨도 상수동 골목 끝에 있는 ‘그문화’ 갤러리의 주인이자 실험예술가다.
가게 주인들은 축제 기간에 자기가 좋아하는 이야깃거리를 들고 와서 프로그램을 열었다. 일식집‘쇼낸’에선‘일식 셰프의 록음악 이야기’가, 이탈리아 식당‘달고나’에서는 가게를 열고 싶어 하는 예비 창업자를 대상으로 한 목공 강좌가 있었다. 축제는 일상적인 공간에서 색다른 일을 도모하는 행위다. 이곳이 아니라도 정보와 강의를 들을 곳이 넘쳐나겠지만, 카페에서 요가 수업을 받고 술집에서 세무 강의를 듣는 일은 흔치 않을 테다. 머리를 다듬는 미장원‘장싸롱’에서는 일본 화가 스기하라 유타의 전시회가 열렸다. 카페 ‘느림’에서는 송호석 작가가 찍은 커피 사진만 모아 전시했고,‘슬런치 팩토리’에서는 밴드 트램폴린의 공연과 회화전이 함께 열렸다. ‘그문화’ 갤러리에서는 팝아티스트 강영민 작가가‘사랑은 테러다’(Love is Terror)라는 주제로 전시회를 열었다. 작은 찻집 겸 전시 공간인 이곳에 ‘조는 하트’로 알려진 강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걸자 음악사 ‘카바레’가 날을 잡아 소속 가수들의 공연을 이곳에서 열었다. 당인리발전소 굴뚝이 올려다보이는 좁은 골목에서 밴드 ‘오! 부라더스’와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의 공연이 열리자 골목이 들썩였다. 5월28일 가수 한대수씨도 이곳을 찾아 ‘정신없는 세상에서 정신 차리고 살기’라는 주제로 미국과 한국을 떠돌며 가수로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었다. ‘동네 한 바퀴’ 프로그램을 진행한 김남희씨는 “예전 같으면 유명 작가나 알려진 밴드들은 중심가의 큰 전시·공연장만 선호했는데, 지금은 카페에서 작품 활동을 한다. 문화가 정말 많이 바뀌었다”고 했다.
“재개발하지 않게 해달라”
홍대 앞 등 여러 곳에서 축제를 기획한 문화기획자 김남균씨는 “골목으로 들어오면 현학이 통하지 않는다”고 했다. 거창한 문화적 자산보다는 오래 다져온 일상이 중요한 이곳에서 벌어지는 축제의 모토는 ‘일상이 예술’이다. 주민 모두를 위한 공동체 축제는 크고 작은 축제들의 꿈이지만 어떻게 가능할까? 상수동 골목축제가 찾은 해법은 ‘따로 또 같이’다. 30년 가까이 이곳에서 가게를 하며 살아온 상인들도 축제에 합심했다.‘의성참기름’에서는 참기름 짜는 강좌와 주막장터가 열렸고,‘명성이발소’나‘광양사세탁소’‘성원여관’등에서는 가게 주인과 손님들이 이야기판을 벌이는 ‘터줏대감 비트박스’가 열렸다. 골목의 작은 공원에서 놀던 동네 10대들은 ‘비속어 배틀’로 존재감을 과시했다.
주민들이 축제에 팔을 걷고 나선 이유는 따로 있다. 당인리발전소가 50년 넘게 석탄발전소로 가동돼 낙후된 덕분에 이곳은 옛 모습을 오래 간직하고 있었다. 의성참기름집 앞에서 파전을 부치던 부녀회장 박춘선(60)씨는 “합정동 개발 바람이 여기까지 밀려들자 주민들이 찢어지고 친구들은 다 떠났다”고 했다.“연탄 아궁이에 밥해먹어도 내 집, 우리 골목이라고 할 수 있는 이곳에서 살고 싶다. 재개발하지 않게 해달라고 좀 적어달라.” 손님으로 이곳을 찾은 청미래재단 임진철 이사장이 “골목을 재개발하면 공동체가 깨진다. 꼭 부수고 재건축해야겠느냐. 이렇게 좋은 가게들을 열고 재창조하면 어떻겠느냐”는 생각을 보태자 듣던 주민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축제의 모토는 주민들의 입을 타고 ‘일상이 축제’로 바뀌었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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