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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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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고 또 뺐습니다

날개 없는 선풍기, 휴대폰보다 단순한 스마트폰 아이폰…
‘좋은 디자인’이 뭐냐고 질문을 던지는 디자인
등록 2012-06-06 15:58 수정 2020-05-03 04:26
애플의 아이폰

애플의 아이폰

2009년에 처음 다이슨의 날개 없는 선풍기가 나왔을 때, 디자인으로서의 반향보다 ‘별게 다 나왔네’ 하는 신기한 눈초리가 먼저 반겼다. ‘앙꼬 없는 찐빵’은 우스개라도 된다지만 그전까지는 날개 없는 선풍기란 숫제 불가능 자체가 아니었나.

호기심 영역에서 미감의 영역으로

소비자는 곧장 계산에 들어갔다. 저것이 돈을 주고 살 만한 물건인지 아닌지. 처음에는 날개 없는 선풍기는 쇼핑 목록에 포함되지 못한 채 그저 호기심 영역에 국한되는 물건인 듯했다. 다이슨의 날개 없는 선풍기가 뭔가 기록할 만한 수치로 팔리기 시작한 것은 세상에 나온 지 한 해 두 해가 지나면서부터였다. 그 시간은 온전히 대중이 새로운 뭔가를 알아채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즉, 그것이 어설픈 발명품이 아니라 한 제품의 디자인으로서 쓸모와 미감을 갖춘 것이라는 걸 받아들이는 데 걸린 시간이다. 다이슨의 날개 없는 선풍기는 뭔가를 더하는 디자인이 아니라 뭔가를 빼는 디자인의 극단이다. 최소의 불가결한 것만을 단순하고 간결하게 남기는 ‘미니멀리즘’이라는 경향과 양식이 있다. 예를 들어 조너선 아이브가 디자인한 애플의 아이폰은 그런 코드를 반영한 가장 현대적이며 대중적인 사례다. 기능에 기능을 더해 날로 복잡해만 가던 전자제품을 네모 속에 모두 집어넣고는 가뿐한 몸매로 시치미를 뚝 떼고 있는 형편이랄까?

하지만 지금 ‘미니멀리즘 대세’를 말하는 것은 무리다. 시대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다양하고 복잡한 세상이니, 7겹 드레스에 1겹을 더해 8겹을 만들어서야 디자인을 완성했다고 여기는 디자이너도 있고, 두 개의 선 중에 하나를 빼려고 고민하다가 아예 둘 모두를 삭제해버리는 디자이너도 있다. 그러는 사이 유행이 생기기도 유행이 지나기도 한다.

“그럼 지금 유행하는 디자인은 무엇인가요?” 성급하게 물을 수도 있겠다. 성급하다고 미리 판단한 이유는, 지금 시대는 결코 그런 질문에 똑 부러지는 답을 낼 수 있을 만큼 한 가지 유행에 국한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주목을 끄는 것은 트렌드가 아니라 어떤 이슈다. 패션 잡지에선 유행을 반영한 아름다운 화보가 아니라 ‘파격 화보’에 사람들의 눈이 모인다. 반복해서 말하자면, 지금은 어떤 것이 유행이라고 말하는 순간 영락없이 유행의 함정에 빠지고 마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다이슨의 날개 없는 선풍기는 어떤 디자인 트렌드도 아니고, 뭔가가 줄거나 없어졌다는 이유로 무조건 ‘미니멀리즘’이라 부르기도 어렵지만, 새삼 “디자인이란? 그리고 좋은 디자인이란?” 질문에 답하게 되는 이슈인 것만은 틀림없다.

다이슨의 날개 없는 선풍기

다이슨의 날개 없는 선풍기

휘황한 금빛과 자로 그은 직선이 한꺼번에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일까. 내가 일하는 잡지사 사무실의 책상들을 둘러본다. 커피콩을 담아둔 우일요 백자 공기, 달리아를 꽂은 바카라 크리스털 꽃병, 반쯤 마신 산 펠레그리노 초록 유리병, 동전이나 클립을 모으는 카펠리오 나무접시, 전시 오프닝을 알리는 PKM갤러리의 흰색 초대장들이 있다. 그러나 그중 새삼 눈을 끈 것은 연필깎이였다. 반지르르 손대면 차가울 것 같은 은색, 장난기가 있는 기관차 모양. 언제 구입했는지도 잊어버린 저 유명한 티티의 하이샤파 연필깎이다. 이것과 함께 살았구나 하는 회고적 감상이 다가왔다. 좋은 디자인에 대한 적나라한 힌트다. 보기만 해도 쓸모를 아는 물건, 그렇게 편안한 물건. 또한 정색하고 대하자니 전혀 새로워 보이기도 하는 생김생김.

지금은 베르사체의 휘황찬란한 금빛 곡선과 라프 시몬의 자를 대고 단번에 그은 직선이 각각의 매장이 아니라 한곳의 편집매장에 나란히 놓이는 시대다. 유행을 좇던 소비자가 각각 제멋대로의 고유한 개성을 추구하는 취향을 갖추는 시대다. 디터 람스가 몇 십 년 전에 브라운과 협업해 만든 간결한 선과 면을 보며 두 눈이 호강하다가도, 어젯밤 톰 딕슨이 만들어낸 빛의 우주 같은 찬란함에 또한 넋을 놓는다. 버려진 나무판자를 이리저리 붙여 따뜻한 럭셔리로 재가공하는 피트 헤인 에이크가 있는가 하면, 아예 금덩어리며 청동덩어리며 물성 자체의 파워로 밀어붙이면서도 ‘귀엽게’ 보이는 스튜디오 욥이 함께 놓여 있다.

‘디자인시티’ 서울 새청사가 저 모양이라니

어쩌면 트렌드는 이미 개인의 취향이 움직이는 속도보다 뒤처져 있는지도 모른다. 조선의 백자와 그것을 해석한 21세기의 백자를 한눈에 볼 수 있고, 덴마크 장인이 만든 하얀 그릇을 함께 보는 시대에, 티티의 하이샤파와 다이슨의 날개 없는 선풍기는 유행과는 무관한 채로도 다만 좋은 디자인이 아닐까? 더구나 사람들은 ‘디자인시티’라는 서울의 새청사가 저 모양이라는 것을 보며 도무지 앞뒤가 안 맞는 디자인 세상임을 스스로 간파한 마당이다. 오직 눈치 없는 이들만이 “저게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이에요” 항변할 것이다.

장우철 피처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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