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가난한 사람들

큰 손바닥 부문 가작 이도원
등록 2011-12-07 18:55 수정 2020-05-03 04:26
일러스트 조승연

일러스트 조승연

생년월일을 적다가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68년생… 왜 거짓말 같습니까? 고생 많이 하면 나이도 더 빨리 듭니다.”

남자의 나이는 생년보다 스무 살은 더 넘어 보였다. 나는 물끄러미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남자는 이미 이런 일은 수없이 당한 일이어서 새삼스러울 게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알코올의존증이 있는 남자로서는 자활 참여를 신중히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미 두 번이나 술 때문에 참여가 중지된 전적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이번엔 쉽게 참여가 안 되겠어요.”

갑자기 남자가 눈물을 흘렸다. 웃음을 잃어버린 지 오래인 듯 팔자주름이 깊게 파인 남자는 아이처럼 손등으로 눈가를 문질러댔다. 남자는 부끄러움을 잊은 것일까, 내가 건네는 휴지를 받아들고는 흐느꼈다.

“죽는 게 차라리 나아. 자식만 아니면 지금이라도 목숨을 끊는 게 나아. 숨 쉬는 게 얼마나 힘든지 모를 겁니다.”

남자가 화난 듯 부르짖었다. 남자는 이혼한 전처의 행방을 모르고 지낸 지 오래이고, 고등학생인 외아들의 휴대전화 요금도 대기 힘들다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일제히 사람들의 시선이 내 쪽으로 향했다. 사무실 안 동료들은 아마 이 남자의 큰 목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골치 아픈 남자를 상대로 ‘어디 한번 그 잘난 혀를 놀려보시지’ 하는 차가운 눈빛이 멀리 떨어져 있는 위치에서도 느껴졌다. 가난의 막장에 와 있는 사람의 뒤치다꺼리에 지친 동료들은 이런 예기치 않은 소란에 쾌감을 느끼는 듯하다. 타인의 슬픔이 자신의 즐거움이 된 것은 나 또한 예외가 아니다.

남자는 뭉친 휴지를 손바닥으로 감싸안은 채 아래를 내려다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만 하잖아요.”

나는 늘 하던 말을 되풀이하였다. 상담 때마다 앵무새처럼 이 말을 반복하였다. 내 속마음과는 정반대의 말을 하였다.

‘죽을 용기가 당신에겐 없어. 죽으려는 사람은 이렇게 징징대지 않아. 단박에 죽고 말지. 죽는 것보다 사는 게 더 힘들어.’

남자가 이런 내 속마음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남자는 시청에 민원을 넣을 것이다. ‘자살을 부추기는 자활센터가 자활센터냐, 자살센터이지’ 하고 소리를 지르겠지. 어느 곳에서도 인간 대접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들은 이렇게 느닷없이 분노를 터뜨리곤 한다. 자신을 만나주는 유일한 장소임에도 말이다. 느닷없이 화내고, 느닷없이 흐느끼고, 느닷없이 소리친다.

남자의 민원은 말단 공무원을 자극하고, 그렇게 되면 나는 이 상담사 일을 할 수 없을지 모른다. 빈곤의 최고 밑바닥에 있는 사람과 공감하지 못하는 치명적 오류가 있는 사람은 퇴사시켜야 한다는 지침이 내려올지 모른다.

남자는 허위에 찬 나의 말에 고무됐는지 비장한 표정으로 말한다.

“맞는 말이오. 살아야 해요. 그러니 정부가 나 같은 비참한 사람에게 더욱 전폭적인 지원을 해줘야 한다는 말입니다.”

아뿔싸. 남자는 결국 이 말을 토해냈다. ‘정부’니 ‘복지’니 ‘지원’이니 이런 단어를 입에 떠올리는 사람은 감당하기 어렵다.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온갖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을 이길 방법은 없다. 남자는 내 눈빛이 불안하게 흔들린 것을 보았을까, 성난 짐승처럼 덤벼들었다.

“우리도 엄연히 국민의 한 사람이라고, 알아? 태어날 때부터 우리가 수급자인 줄 알아? 모두 게을러터진 당신과 같은 사람들이 우리 같은 사람들 권리를 찾아주지 않아서 그런 거라고.”

나는 남자의 화가 풀릴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남자는 한참 동안 불평한 뒤 나가려다가 다시 내 얼굴을 노려보며 말했다.

“일자리를 주지 않으면 난 자살할 수밖에 없지.”

남자가 유리문을 밀고 나갔다. 이번달만 해도 자살 운운하며 나간 사람이 모두 3명이다.

지난해엔 이렇지 않았다. ‘산 입에 거미줄 칠까. 살아보는 데까지 살아봐야지요’ 하며 상담하러 온 사람들은 쓸쓸한 웃음을 지으며 문을 나가곤 했다. 그들은 정부에서 주는 턱없이 낮은 생계지원금으로 위태롭게 버티고 있으면서도 분노나 원망은 적었다. 가난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재수 없는 태생을 자학하거나 불공평한 사회를 잠시 한탄할 뿐, 거의 모두 게으르고 무능력한 자신을 탓했다.

남자가 사라진 뒤에도 그가 한 말이 계속 떠올랐다. 남자가 자살할지 모른다. ‘자활센터에서 상담한 여자가 나를 자살로 밀어넣었어. 자살하겠다고 그렇게 말했는데도 나에게 일자리를 주겠다고 하지 않았어. 내가 자살한 것은 모두 그 여자 때문이야’ 하고 유언을 할지 모른다. 인구 25만 명의 소도시에서 이런 자살 사건은 엄청나게 쇼킹한 뉴스다.

남자의 개발새발 갈긴 유언장이 공개되면서 시청 공무원은 책임자인 센터장을 불러 문책할 것이다. 과거 민주화운동 전력이 있는 센터장은 바로 자신이 힘들게 구축해놓은 자활 현장에서 일어난 사실에 아연실색할 것이다.

나는 너무나도 억울한 나머지 자살로써 무고함을 입증해야 할지 모른다. 어이없게도 나는 남자를 따라 순장하듯 자살하는 내 모습을 몇 번이고 상상하게 되었다.

이런 노골적인 협박은 올해 두 번째다. 몇 달 전 한 여자는 칼을 들고 들어왔다. 여자는 내 이름의 자리가 어디인지 문 입구의 공익근무요원에게 물었고, 앳된 공익근무요원이 여자의 칼에 새파랗게 질려 후덜덜 떨며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나는 그때 화장실에서 변비를 해결하지 못하고 나오던 중이었다. 여자는 빈자리의 내 책상 위를 칼로 여러 번 내려찍었다.

“잡년, 개년, 남의 남편과 붙어먹은 년.”

나는 차마 내 자리로 돌아가지 못한 채 엉거주춤 문 앞에 서 있었다. 전화를 받거나 낮잠을 자고 있던 동료들은 얼어붙은 듯 앉아 있었다. 어느 누구도 여자의 행동을 제지하지 못했다.

여자는 입가에 게거품을 문 채 소리를 질렀다. 그때 현관문으로 한 남자가 다급하게 들어왔다. 남자는 바로 얼마 전 자활근로에 참여한 사람이었다. 남자는 난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집사람이 좀 문제가 있어서요” 하며 연방 머리를 꾸벅댔다.

그러자 여자의 칼 방향이 갑자기 내 쪽으로 바뀌었다. 남자의 말은 오히려 나에게 더 불리하였다. 여자는 빠른 걸음으로 내 쪽을 향해 달려왔다. 망부석처럼 앉아 있던 동료들이 ‘앗!’ 하며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나는 그저 서 있을 뿐이었다. 도망칠 수도, 저항할 수도 없을 정도로 무서웠다.

그때 남자가 여자의 칼을 든 손목을 잡아 낚아챘다. 남자는 칼을 멀리 내던졌다. 그러자 여자가 실신하듯 바닥에 널브러졌다. 남자는 여자의 어깨를 안으며 “나가자, 나가자” 하고 말했다. 그러나 여자는 남자를 향해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하며 남자의 티셔츠를 잡아당겼다. 그 서슬에 남자의 옷이 반쯤 벗겨지면서 야윈 몸이 드러났다. 남자의 배와 가슴은 온통 칼자국으로 선연했다. 남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러나 남자는 여자의 어깨를 잡고는 문 쪽으로 이끌었다. 여자가 남자를 따라나가며 나에게 말했다.

“다시 우리 남편하고 말하기만 해봐. 그럼 칼로 찔러 죽여버릴 거야.”

동료들이 내 책상으로 몰려들었다.

“와, 이것 좀 봐. 온통 칼자국이야. 끔찍해.”

그들은 나를 위로할 생각으로 몰려든 것이 절대 아닌 게 분명했다. 동료들은 내 책상 위를 손으로 쓰다듬으며 죽은 나방처럼 모여 있는 톱밥을 만지작거렸다.

“미친 여자야.”

바로 옆자리의 동료가 말했다. 나는 남자의 상담기록지를 찾았다. 가족관계란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아내 52세 정신분열증 있음.’

나는 처음 사무실로 들어오던 남자의 모습을 떠올렸다. 무기력한 표정과 지친 걸음으로 들어온 남자의 눈빛은 불안으로 영혼이 잠식된 것처럼 보였다.

“주식투자에 실패했어요. 10억원을 모으는 데 5년 걸렸는데 10억원을 잃는 데는 5개월도 채 걸리지 않았어요.”

툭 던지듯 말하던 남자는 지친 듯 의자에 깊숙이 몸을 파묻었다. 그러나 불안한 눈동자는 자꾸만 사무실 바깥으로 난 창문 쪽에 있었다. 대졸자에다 주식투자를 할 정도의 여유를 가지고 있던 남자가 자활센터에 왔다면 이 남자의 처지는 막장까지 온 셈이다. 태생부터 빈곤 유전자를 타고난 기초수급자와는 뼛속 깊이 다른 것이다.

이런 신분의 사람들은 자활센터에서 오래 버티지 못한다. 얼마 가지 않아 떠나고 만다. 처지가 아무리 빈곤해졌다고 해도 동일한 처지가 되기는 어려운 것이다. 아니 동일한 처지가 되지 않으려고 필사적인 힘을 발휘한다. 이런 사람으로 인해 가뜩이나 소외된 사람들은 더욱 열패감과 소외감에 시달리게 된다.

나는 이 남자를 계속 일하도록 놔둬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등했다. 망상증이 심한 아내가 자주 이곳 사무실을 드나든다면 업무방해도 물론이거니와 공적 기관의 체면도 우습게 된다. 물론 나에 대한 추문도 치명적 불명예로 자리잡을 우려가 있다.

자꾸만 와해돼가는 조직관리를 주제로 벌써 주간회의가 세 차례나 열린 상황에서 이런 주제 같지 않은 주제로 논의해야 하는 것이 짜증이 나 머리가 지끈지끈거렸다. 나는 온통 칼자국에다 톱밥 가루가 뽀얗게 올라온 책상 위를 손바닥으로 아무렇게나 문지르며 자리에 앉았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여자가 실신하듯 바닥에 널브러졌다. 남자는 여자의 어깨를 안으며 “나가자, 나가자” 하고 말했다. 그러나 여자는 남자를 향해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하며 남자의 티셔츠를 잡아당겼다. 그 서슬에 남자의 옷이 반쯤 벗겨지면서 야윈 몸이 드러났다. 남자의 배와 가슴은 온통 칼자국으로 선연했다.


“어디 입 좀 벌려봐요.”

여자는 소처럼 눈을 껌벅이며 입을 열었다. 나는 여자의 입가에 코를 들이댔다. 술 냄새가 확 풍겼다. 승합차에 올라탄 여자는 술 냄새를 숨기기 위해 거의 한 통이나 되는 껌을 씹고 있지만 냄새를 지울 수는 없었다.

“내려요. 오늘은 결근으로 처리합니다.”

여자가 차에서 내리며 내게 말했다.

“정말 억울해요. 어제 마신 술이 아직 해독이 덜 되어서 그런 건데. 나는 마시지 않았다고요.”

나는 여자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어제 몇 시에 마셨는데요?”

“설거지 다 끝나고 화투 한 판 치면서 마셨는데…. 한 12시쯤 되었을까?”

“그랬든 말든 이렇게 술이 덜 깬 상태로 농장에 들어가면 사고나기 십상이에요.”

“어디 억울해서 살 수가 있나?”

여자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골목으로 사라졌다. 여자의 발걸음이 위태로웠다. 나는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 여자의 신상을 찾아 읽었다. 여자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이라곤 수급자이며 소양교육 시간에 눈에 띌 정도로 글을 잘 쓴다는 것뿐이었다. 여자는 자격증이니 따는 것도 배우는 것도 필요 없다며 바로 몸을 써서 일하는 근로사업단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대개의 참여자는 어떻게 해서든 몸은 굴리지 않고 대충 움직이는 척하며 그저 정부에서 주는 생계지원금만 타려고 한 경우가 많아서 나는 여자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처음엔 어리둥절했다.

여자는 담배를 잘 피우고 말이 없다는 것 외에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는 여자가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단정짓고는 또다시 술에 절어 출근한다면 무조건 참여를 중지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여기선 의심과 거짓말, 불만과 하소연, 협박과 분노, 자책과 뻔뻔함, 배반과 절망이 난무한다. 온갖 악덕이 거미줄처럼 쳐진 곳에서 사람들은 일찍 지쳐버리고 그 지친 서로의 얼굴을 보며 더욱 지쳐간다. 나는 아침부터 한 여자의 고단한 일상을 더욱 깊은 늪으로 빠뜨린 셈이 된다. 가해자가 되어버린 나는 또다시 억울한 심정이 되고 만다. 나는 이 더러운 기분을 없애기 위해 목구멍 안으로 싸구려 인스턴트 커피를 들이붓는다. 빈속에 연거푸 마시는 커피는 점심시간 전까지 아쉬운 대로 밥의 역할을 대신해줄 것이다.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남자가 슬며시 눈치를 보며 일회용 막대커피 봉지를 한 움큼 쥐고는 배낭 안에 넣는다. 나는 모르는 체하며 자리를 피한다. 아마 저 남자도 나처럼 커피로 빈속을 채울지 모른다. 궁색하며 초라한 일상을 숨길 수 없는 것, 그것이 가난의 맨발바닥일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빈곤의 처절한 일상에 대해 매번 이렇게 낭만적 감상에 젖는 것 자체가 불경하고 불온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가난한 것은 불편의 수위를 뛰어넘어 모멸과 박탈의 감정이다. 우리는 모두 부자를 동경하며 부자가 되기 위해 평생 고군분투하는 존재임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나는 입안에 쓴 물이 괴어오르는 것을 느끼며 종이컵을 아무렇게나 구겨 휴지통에 버렸다. 해가 갈수록 생각하는 대로 사는 게 아니라 사는 대로 생각한다는 말처럼, 나 또한 합리화와 자기변명의 늪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것이다.

동사무소의 사회복지 담당자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지금 연락이 안 되네요. 전화도 안 되고.”

남자가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다. 남자가 목숨을 끊는다는 사실보다 자살을 방조한 혐의를 받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남자를 찾아다니는 행위를 해야만 남자의 자살로 인한 면죄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나에게 살인방조로 인한 업무과실이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자주 아픕니다. 아프니까 가난하게 되었을 뿐입니다. 가난해지니까 더욱 아프게 되었을 뿐이라고요.”

남자가 말한 이 대목도 신경이 거슬렸다. 정말 짜증나게 하는군. 마치 그동안 냉정하게 사람을 대한 대가를 이제 한꺼번에 치르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지역신문을 읽다가 나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감정에 휩쓸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는 남자가 사는 소재지 동사무소를 찾아갔다. 자살에 대한 암시를 동 담당자에게 넌지시 알려주고 책임을 떠넘겨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담당자 또한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이런 사람 뭐 한두 번 본 것도 아니고, 분명히 술을 엄청 마시고 어딘가에서 퍼질러 자고 있을 게 분명해요.”

담당자는 이렇게 말하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다 또 어딘가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으며 툭 던지듯 말했다.

“자활센터는 한가한 모양인가봐요. 우린 너무 바빠서 이런 사람 집까지 일일이 찾아갈 수는 없어요.”

하루 종일 도와달라, 어렵다, 도대체 공무원들은 뭐하냐고 따지는 사람으로 힘든 것은 여기도 마찬가지인가. 고작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회복지사의 표정이 지쳐 보인다.

“무조건 아들이 있다고 수급자가 될 수 없다는 게 말이 되냐고? 아들도 아들 나름이지, 당뇨병으로 인슐린 주사를 맞으며 놀고 있어서 내가 다 큰 아들 먹여살리는 셈이야. 책상 앞에서 맨날 연필만 굴리며 있으니 우리 사정은 도통 모르는 거지. 한번 집에 와보라고. 우리 꼴이 어떤지.”

나는 동사무소를 나오면서 막 들어오는 여자와 마주쳤다. 60대 여자는 입에 게거품을 뿜으며 들어오자마자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나와 이야기를 나누던 담당자의 표정이 더욱 짜증스럽게 변했다.

나는 남자의 주소가 적힌 쪽지를 들고 한참 동안 거리에 서 있었다. 자꾸만 남자의 눈물과 눈빛이 마음에 걸렸다. 언제였던가, 폭설에 갇혀 산의 대피소에서 듣던 야생짐승의 슬픈 울음소리가 연상되었다. 몸집이 큰 짐승에 눌려 낮 동안엔 제대로 울지도 못하던 짐승이 한밤중에야 꺼이꺼이 목 놓아 우는 듯 남자의 울음소리가 처연했다. 갑자기 나는 내친김에 남자의 집을 찾아가보기로 했다. 차가운 방에 죽은 지 오래된 남자의 사체가 구더기와 파리로 들끓고 있는 것이 연상되기도 하였고 문 앞에 흥건하게 젖은 피도 연상되었다. 무엇보다 피로 눌러 쓴 유언장이 시퍼런 칼과 함께 반듯하게 놓인 것이 상상되었다.

나는 진땀이 흘렀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다행히 밖으로 난 대문은 자물쇠로 채워져 있었다. 남자는 집에 없었다. 우물 앞에서 마당에 난 풀을 뽑고 있던 백발의 남자가 희미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남자의 이름을 말하며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며칠 전부터 보이지 않던데. 또 어디서 술을 퍼마시고 있는지도 모르지. 외상값을 받으러 몇 사람이나 찾아왔던데…. 쯧쯧.”

나는 남자가 집에 없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제 나는 할 만큼 다했어. 더 이상 마음 졸일 필요가 없어.’ 나는 부디 남자가 비슷한 처지의 과부를 안고 뒹굴며 자살 같은 것은 멀리 내던져버렸기를 상상하며 사무실로 돌아왔다.

일은 사무실 안에서 일어났다. 옆자리의 여자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나를 보았다. 나는 여자의 책상 위를 보았다. 책상 위에 날카로운 칼자국이 어지럽게 찍혀 있었다. 그 책상뿐만이 아니었다. 주위의 몇 개 책상에도 똑같이 칼자국이 나 있었다. 나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단박에 눈치챘다.

“이건 이렇게 놔둘 문제가 아니야. 경찰을 부르든지 여자를 정신과 병동에 넣든지 해야 한단 말이야. 이거 무서워서 살 수가 있어야지.”

흥분에 찬 동료의 말을 종합하면 여자가 칼을 든 채 또다시 들어왔고, 이상한 괴성과 함께 책상 위를 돌아가며 칼로 찧었다는 것이다.

“아니, 이 지경이 되도록 그냥 놔두었어요?”

“칼을 들고 설치는데 그럼 어떡해요? 아무도 찍소리도 못냈는걸. 그 여자 정말 미쳤어.”

“남편은 뭐하고요?”

“정말 그 남편도 사이코예요. 그 남자가 고작 한 말이 뭔지 알아요? 그 책상 우리 게 아니니까 물어줘야 해. 이렇게만 말하더라니까요. 정말 웃기지도 않아요.”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평소 자신에게 관계된 일이 아니면 절대 타인의 고통이나 슬픔에 동승하지 않으려는 동료들이 여자의 난동에 꼼짝도 할 수 없었다는 것에 조금 고소한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그 남자, 아침에 여기 출근하면서 여자를 감금하고 온대요. 집에 갇힌 여자는 불을 지르고 물건을 부수고 난동을 피우는 거지요. 그럼 놀란 이웃이 밖에서 문을 부수고 들어가는 거지요. 그 틈에 여자는 탈출해서 여길 들이닥친 거고요. 기가 막히지 않아요?”

나는 여자의 남편을 찾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자를 데리고 나갔어요. 그 남편도 아주 이상했어요. 갑자기 우리에게 티셔츠를 들어올려 상체를 보여주는 거예요. 남자의 상체는 형편없었어요. 빼빼 마른 몸이 온통 칼자국인 거예요. 시퍼렇게 멍이 든 가슴에 가로세로로 칼자국이 그어져 있는데 정말 그로테스크했어요. 그러고는 마누라를 데리고 나가는 거예요.”

나는 남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참 지나서 남자의 쉰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안합니다. 정신병원은 돈이 많이 드는 형편이라서. 이제 약을 꾸준히 먹으면 다시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남자는 내가 하는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의 말만 하고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근로능력이 있는 남자의 처지로서는 일을 하지 않으면 어떤 식으로든 생계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고작 반나절을 일했는데도 꼬박 하루를 노동한 것처럼 피로감을 느꼈다. 갈수록 인간은 빈곤이라는 괴물에게 잡아먹히고 있다. 이 괴물은 인간의 손목을 삼켰다가 다리를 삼켰다가 몸통을, 나중에는 머리통까지 삼키고 나서야 만족하는지 모른다.

나는 책상 위를 손바닥으로 쓸어내리며 계속 투덜대는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가난한 사람들의 횡포를 버티지 못하면 이 직장을 그만둬야 한다는 것을 동료들은 알고 있다. 값싸고 푸짐한 안주를 앞에 두고 실컷 욕이나 하든지 불평을 하면서도 퇴직만큼은 피해야 한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다. 아파트 대출금, 아이 학원비, 자동차 할부금을 내려면 일자리를 잃어서는 안 된다.

그때 전화가 울렸다.

“나 기억납니까? 우리 집에는 왜 찾아온 거요?”

남자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그임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수화기만 들고 있었다. 남자의 목소리는 술에 취한 것처럼 들떠 있었다.

“내가 혹시 죽을까봐서 온 거요? 내 참, 죽는 게 어디 쉬운가요? 목을 아무리 매려고 해도 안 됩디다. 정말 제 목숨 제가 끊은 사람 존경하고 싶더라니까요.”

“술을 드신 겁니까? 작업 중에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각서를 써주셔야 참여가 가능합니다.”

“나 참, 술이 없으면 어떻게 삽니까? 뭐, 할 수 없지요. 목구멍이 포도청이니까 해야지요. 술 없으면 하루도 버틸 수 없지만 어쩔 수 있나요? 몸이 아파도 해야지.”

“그럼 다음주 월요일부터 나오세요.”

나는 남자와의 통화를 서둘러 끊고 싶었다. 협박까지 한 인간이 이렇게 며칠 만에 변한 것이 당황스러웠고, 무엇보다 이런 인간 때문에 시간 낭비를 한 것이 속상해서였다. 막 전화를 끊으려고 하는 찰나, 남자가 고함치듯 소리를 질렀다.

“참, 당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하나 있어요. 하루 종일 나 같은 인간에게 시달리는 당신이 불쌍해서 한마디 해주지요. 자살이라는 것 말입니다. 내가 쭉 생각해봤는데 말입니다. 사람은 말입니다. 제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단 한 사람이라도 알고 있는 한 자살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멋진 말이지요? 물론 내가 한 말이 아닙니다. 며칠 동안 집에 들어오지도 않는 마누라의 집에서 죽치고 있으면서 읽은 책 속에서 건진 말입니다. 아, 그렇다고 오해는 마쇼. 내가 사랑하는 단 한 사람은 마누라가 아니라 내 새끼니 말입니다. 이 새끼가 정말 좋다는 겁니다. 그럼 다음주에 봅시다.”

남자는 전화를 끊었다. 나는 전화기를 든 채 멍하니 있었다. 술에 취한 채 전화를 거는 남자를 어떻게 관리할 수 있을까 하는 부담감과 함께 자살을 포기한 남자의 뚜렷한 이유가 다소 마음을 울렸다. 삶의 이유가 자식이 전부인 사람을 보는 것은 식상하기 그지없는 일이었지만, 매번 당할 때마다 이보다 더 큰 이유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이 남자의 자살 가능성 때문에 마음을 졸일 필요가 없다는 것에 다소 안도감을 느끼면서 나는 늦은 퇴근을 하였다.



“칼을 들고 들이닥쳤던 여자가 글쎄 남자를 찔렀대. 그러고는 자신도 칼로 찌르고는 집에 불을 질렀다는 거야. 놀란 이웃이 집으로 들어가봤더니 마당에 그 부부가 죽은 채 있었다는 거야.”

사무실 안의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납처럼 굳은 표정의 관장과 동료가 나를 쏘아보듯 바라봤다. 나는 영문을 모른 채 사무실로 들어섰다. 뭔가 예감이 좋지 않은 느낌이 등허리를 쓸었다.

나는 동료 중 한 사람을 바라보았다. 온갖 소문을 만들어내는 동료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말을 토해냈다.

“결국 그 부부가 사고를 쳤어. 정말 소름 끼쳐.”

동료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 사고에 대해 진상 조사해서 보고하세요.”

센터장이 차갑게 말을 하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동료들이 나를 빙 둘러쌌다.

“칼을 들고 들이닥쳤던 여자가 글쎄 남자를 찔렀대. 그러고는 자신도 칼로 찌르고는 집에 불을 질렀다는 거야. 놀란 이웃이 집으로 들어가봤더니 마당에 그 부부가 죽은 채 있었다는 거야.”

“이웃의 말로는 매일같이 서로 싸움을 했대. 의처증이 있는 남자는 아내를 못 살게 굴었고 그것을 못 견딘 아내는 우울증이 심해져 정신병원에 들락날락했는데, 요즘 남자가 자활센터에 가는 것을 바람피우는 것으로 착각한 아내가 결국 남편의 심장에 칼을 꽂았다는 거지.”

“참나, 먹고 살기도 빠듯한 사람들이 사랑싸움이나 하는 꼴이지 뭐야. 의처증이니 의부증이니 가난한 사람들에게 어디 될 법한 감정이냐고? 난 지금까지 알코올중독증은 봤어도 이런 증세로 자멸하는 부부는 처음 봤어.”

“그러니까 돈 있는 인간들은 이렇게 서로 못 믿어 탈이 생기고 돈 없는 인간들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믿고 사는 수밖에 없는 거지, 안 그래?”

동료들은 이제 사례관리자인 내가 어떻게 이 골치 아픈 사건을 해결할 것인지 한번 두고 보자는 듯한 눈빛으로 일별하고는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한숨을 쉬며 책상으로 돌아왔다. 책상 위엔 칼자국이 선명하다. 그 칼자국 위로 칼에 찔린 채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남자의 창백한 얼굴과 여자의 황폐한 얼굴이 떠올랐다.


수상 소감문학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지금
이도원

이도원

나는 빈곤이 대물림되는 현장 속에 있다. 한 번도 치과 치료를 받지 못한 사람과 단 한 번도 사랑하는 이를 가져본 적 없는 사람들을 쉽게 목격하는 현장에 있다. 도시 한쪽에서는 풍요롭다 못해 넘치는 사람들이 권태와 의심으로 치정의 삶을 살고, 또 다른 쪽에서는 이렇게 가진 것 하나 없는 사람들이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매일 실감한다.

이렇게 양극화된 사회는 분노와 충동 조절 기능을 마비시키며 불안을 증폭시킨다. 부자든 가난한 자든 모두들 이 감정의 결말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것을 알면서도 해결하지 못한다.

현실의 힘이 세기 때문이다. 아무리 문학적 배경을 황폐하고 처절하게 장치한다고 해도 말이다. 그렇다고 현실의 고통에 쉽게 굴복할 수는 없다. 문학 속 주인공들이 사랑으로 위로받는 것처럼 참혹한 현실 속에서도 사랑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어쩌면 문학과 현실은 서로를 질투하고 견제하면서도 의지해야 하는 라이벌 관계일지 모른다.

불안한 기류로 모두가 힘든 지금이야말로 ‘인간의 본질 추구’와 ‘사랑을 통한 구원’이라는 문학의 의무와 역할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물론 이것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무엇보다 사회적인 평등성과 민주성이 필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손바닥 문학’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일 듯하다.

졸고를 뽑아줘서 감사드린다. 이번 기회를 통해 현실을 방관하거나 회피하지 않는 사람이 되도록 부단히 노력하고 싶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