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돈은 다 어디로 간 걸까? 돈이 없다고 난리다. 돈이 모자란다고 아우성이다. 물가는 오르고 수입은 그대로다. 서울에서, 뉴욕에서, 런던과 파리, 도쿄에서 젊은이들이 돈 좀 구경하자고 성화다. 이 전쟁 통에 뒤에서 웃고 있는 사람은 누구?
14회차를 보면, 백수 가장 안내상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안내상은 회사가 부도난 뒤 집에서 논다. 아들딸이 고등학생인데 아내인 윤유선마저 전업주부다(미치고 팔짝 뛸 지경!). 집에 같이 사는 처남인 윤계상은 다행히 의사. 필요한 돈은 그때그때 처남에게 변통해서 쓴다.
48시간 안에 90만원을 구하라
안내상은 홈쇼핑 프로를 보다가 운동기구를 하나 사려다 처남인 윤계상에게 “낭비가 심하다”는 핀잔을 듣는다. 자존심 상한 내상은 “내가 막노동이든 구두닦이를 하든 앞으로는 처남에게는 손 안 벌린다!”고 말한다(늘 없는 사람의 자존심이 문제다). 그날, 집에 돌아온 딸은 용돈을 달라고 하고, 아들은 아빠를 반쯤 무시한다. 아내인 유선은 “내일모레까지 공납금과 책값 등 필요한 돈이 90만원”이라고 말한다. “또 동생한테 신세를 져야 하나….” 아내의 푸념에 내상은 “절대 처남한테 손 벌리지 마라! 내가 돈 구해온다”고 큰소리친다(빈 수레가 요란하다).
이때부터 피 말리는 48시간이 펼쳐진다. 돈 없는 가장, 그건 가장이 아니다. 노래 못하는 가수, 웃기지 못하는 개그맨, 글 못 쓰는 작가와 동격이다. 14회에는 돈 몇 푼 빌려 쓰고 쫓기는 젊은이와 막내 시트콤 작가로 들어가서 내내 무시당하다 결국 아이디어까지 도용당하는 처녀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 일화는 다분히 작가들 자신의 경험에서 우려낸 곰국이리라. 막내 작가이자 비정규직 알바생인 백진희가 감독에게 “사정이 생겨서 오늘 일 못 나갈 것 같다”고 하자 감독은 “하루 쉬지 말고 오늘부터 아예 푹 쉬라”고 한다. 이 대목에서 나는 일본 작가 아마미야 가린이 쓴 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나는 당일에 해고를 통보받고 그만둔 적이 있다. 게임 소프트웨어 가게였는데, 일을 시작하고 3개월 정도 됐을 때 그만 감기에 걸려버렸다. 감기 때문에 결근하겠다고 가게에 전화를 했더니 ‘그럼 내일부터 나오지 마’라고 잘라 말한 뒤 전화를 끊는 것이었다. 생활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던 일자리였는데 그 일자리마저 갑자기 잃고 나니, 순식간에 거리로 쫓겨난 것 같아 아주 괴로웠다.”
14회를 보며 나는 아주 괴로웠다. 안내상의 모습은 바로 몇 해 전 내 모습이었다. 돈 없어 쩔쩔매는 윤유선은 내 누이고, 감독의 말 한마디로 잘리는 백진희는 내 조카였다(우리 집만 이런 건가?). 백수 안내상은 특단의 조처가 없는 한 곧 노숙자로 전락할 것 같다. 비정규직도 아닌 알바생 백진희 역시 세상이 뒤집어지지 않는 한 곧 노숙자로 전락할 것 같다. 이변이 없는 한, 의 안내상 가족과 백진희 가족은 곧 서울역 노숙자 센터에서 조우할 것 같다.
안내상의 쩔쩔매는 모습을 보고 마음껏 웃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백진희의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고 낄낄거릴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이 프로는 절대 시트콤이 아니다. 이 사회의 폐부를 드러내는 가슴 아픈 멜로이며 혁명을 부추기는 불온한 프로파간다다. 시트콤 속에 연민과 선전을 교차 편집한 김병욱 PD와 이영철 작가 이하 모든 작가에게 박수를 보낸다(필자는 연기를 겸업하고 있으므로 다음번 특별 출연을 기대하겠다).
불쌍한 가장 안내상은 48시간 동안 돈 100만원을 구하려고 여기저기 전화를 한다. 그 누구도 선뜻 백수 가장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시트콤의 백수 가장은 슬랩스틱을 구사하며 코믹하게 그려지지만, 현실의 백수 가장은 세파에 넘어지며 피눈물을 흘린다. 나는 그 심정을 안다. 친구에게 전화하다 벨소리가 들리면 몇 번이고 전화를 끊어버리는 그 심정. 어렵게 연결된 그에게 끝내 돈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던 그 심정. 어렵게 돈 이야기를 꺼내면 갑자기 톤이 변하는 친구의 목소리를 들어야 했던 그 심정. 매몰차게 끊는 친구를 미워할 수 없었던 그 심정. 돈 100만원을 꿔주지 못해 미안해하는 친구와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가야 했던 그때 그 심정을.
멜로보다 슬픈 시트콤
나나 내 친구들이나 안내상이나 모두 돈이 없어서 이 지랄이다. 우리는 우리가 어떤 사회에 살고 있는지를 종종 잊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이 전부다. 그 전부인 자본은 그런데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이런 고민을 하는 사이에 내 책상 위의 종이쪽지가 눈에 띈다. 얼마 전 내가 해놓은 메모다.
“…재벌닷컴과 포브스 집계. 한국 10대 부자들의 재산 2008년에서 2010년 사이, 만 2년 만에 15조8천억원에서 44조300억원으로 3배 증가! …이 통계, 웬만한 부자들도 배 아플 것… 2년 만에 재산 3배 늘리는 재주… 아무나 하나? 문제는 경제고 그걸 모르면 바보… 그런데 내 재산은? 2008년에서 2010년 사이 2천만원 감소!”
내 돈은 도대체 누가 가져간 걸까? 닥치고 내 돈 내놔라. 이 도둑놈들아.
명로진 인디라이터·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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