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편집’으로 논란이 된 <슈퍼스타K3>. 채널 엠넷 제공
조연출 시절, 선배가 찍어온 방대한 양의 테이프를 가편집하느라 한 번도 안 가본 베트남과 싱가포르를 질리도록 외워버렸기에, 나는 아직도 그 두 곳은 가고 싶지 않다. 동물 다큐팀에서 잠깐 막내작가로 일하던 후배는 100개가 넘는 촬영본을 “침팬지가 구른다, 나뭇가지로 땅을 긁는다, 춤추는 듯하다, 하품한다” 식으로 프리뷰하다 아예 방송가에서 일할 생각을 접었다. “편집은 무엇을 쓸 것인가 골라내는 작업이 아니라, 무엇을 버릴 것인가의 문제다.” 조연출이 편집실에서 선배에게 가장 먼저 듣는 말이다. 최근 지배적인 패러다임 ‘리얼리티’는 무엇을 찍을지 공교하게 계획하기보다 큰 그림만 그려놓고 판을 짠 뒤, 일단 찍어놓고 솎아내는 편에 속한다. 그렇다 보니 ‘짜깁기 편집’이라는 둥, ‘진실 왜곡’이라는 둥 잡음이 많다. ‘옥주현, 국민 비호감으로 등극’의 불쏘시개가 된 ‘악마의 편집’이 대표적 사례다. 비단 가 아니더라도 2011년 대한민국 방송계는 몸살을 앓고 있다.
방송 자막이 존재감을 나타낸 것이 불과 몇 년 전이다. 여백을 해치고 상상력을 저해한다는 비판의 화살을 받았으나, 이제는 자막 없는 버라이어티쇼는 상상이 불가할 정도다. 진통 과정을 거쳐 순기능에 초점을 맞춰나가는 쪽으로 정립되고 있다. 이번에는 편집이 도마 위에 올랐다. 서비스 수준이던 이전의 친절하고 착한(?) 편집에서 편집자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순차적 배열이 아닌, 역편집은 미드(미국 드라마) 시청 세대의 감성 코드를 만족시켜줄 만했다. 극도의 긴장감을 유지하는 편집의 묘와 이제껏 익숙했던 공식을 타파한 것에서 오는 쾌감만큼은 부인할 수 없다. 한번 경험한 ‘악마의 맛’은 너무 달콤해 자극의 역칫값은 점점 더 높아져만 간다. ‘무릎팍 도사’가 지나가고 난 뒤의 처럼, 시대착오적이고 맥 빠졌던 은 시즌2로 접어들며 의 콘셉트뿐 아니라 화법조차 의식한 흔적이 역력하다. 해를 거듭하며 우리나라 방송은 ‘집단 MC’ 체제를 거쳐 버라이어티화되고 이는 곧 리얼리티를 입고, 리얼리티는 또다시 서바이벌을 장착해 극한의 오디션 포맷까지 왔다. ‘포스트 유재석·강호동’이 누구인지보다 오디션 광풍 다음엔 무엇이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앞서는 요즘이다.
‘패밀리가 떴다’의 대본 유무가 네티즌 사이에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적이 있다. 당시 제작 환경에 있는 한 사람으로서 답답함과 억울함마저 느꼈다. ‘100% 리얼리티’라는 게 과연 가능할까. 시청자의 기대치가 가혹하게 높은 것이 아닐까. 웃자고 하는 일에 죽자고 덤벼오는 기분이었다. 좀 심하게 말하면 흡사 가상과 현실을 구분 못하는 경계 어디쯤에 놓여 있는 듯하다고 할까. 영화는 감독의 디렉터스컷을 보려고 일부러 돈을 내고 다시 보기도 하는데, 중계방송을 원하는 것인가. 하물며 스포츠 해설 또한 객관적일 수 없는데 말이다. 촬영본을 공개하는 상황까지 온 것은 가수가 심의상 가사를 고쳐야 하는 것만큼이나 굴욕적이다. 드라마 결말을 바꿔달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은 형국이다.
에서 왕영은이 30년 만에 밝힌, 가요제를 통째로 재녹음한 사건을 듣고 ‘조작 방송’ 시비를 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드라마에서 택시는 늘 한 번에 잡히고, CF나 홈쇼핑의 음식이 못 먹을 기름칠로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무조건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진실과 사실은 다르다. 연출된 사실, 캐릭터나 콘셉트에 대한 이해도가 문제를 증폭시킬 수 있다. 가령 에서 그려지는 것처럼 정준하는 정말 멍청할까? 박명수는 정말 ‘아전인수 버럭쟁이’이기만 할까? 다만 과거 이경규가 너구리를 잡는 순간을 카메라에 담지 못해 다시 연출했던 사건이나, 모큐멘터리(허구의 다큐멘터리)를 표방했다고는 하나 시청자를 기만하는 수준으로 치달은
극한의 포맷 대신 진정성 찾아야
한국 특유의 정서와 인터넷이라는 매체 환경이 빚어내는 문제의 증폭도 있다. 미국의 이나 를 봐도 독단적이거나 이기적인 캐릭터의 소유자들은 늘 있기 마련이다. 어릴 때부터 자기 생각을 말하는 습관이 들어서 그런지 그 태연함과 당당함을 보고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런 포맷을 우리나라에 적용할 때, 바이블대로 할 수는 있어도 한국화는 어렵지 않을까 조심스러웠다. 그래서인지 다소 과장된, 혹은 만들어진 악역 캐릭터가 생겨나고, 한국 특유의 네티즌 문화는 이를 마녀사냥으로까지 이어간다. 나와 생각이 다른, 해법이 다른 사람을 그대로 인정하기보다는 옳고 그름을 따져서 상벌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 특유의 정서도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세상사에 갈등은 있기 마련이다. 경쟁할 때에는 더욱 그렇다. 갈등을 빚는 것 자체가 나쁜 일은 아니다. 갈등을 원천봉쇄하는 것이 아니라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태도가 아쉽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기득권을 얻자 일반인의 방송 출연이 잦아졌고, 지금의 많은 문제는 일반인의 TV 출연과도 상관관계가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사실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방송에 노출된다는 것을 모르고 경쟁에 참가한 사람은 없다. 그러나 방송에 대한 이해도가 낮을 수밖에 없어서 어려움이 많다. TV에 나오는 사람이 공인이냐 아니냐의 기준이 모호한 가운데, 문제는 계속 부유한다. 옥주현이 의 제작진에게 편집 방향에 대해 항의했다거나, ‘무릎팍 도사’에 출연한 게스트가 촬영분에 대해 방송정지 가처분신청을 하거나 명예훼손을 운운한 경우는 보지 못했다. 경쟁 참가자 모두 자신이 오디션에 입회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 과정이 어떤 형식으로든 공개된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이제 명백해졌다.
성숙한 방송과 시청 태도에 대한 기대
‘막장 드라마’를 욕하면서도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청자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형벌은 무관심이다. 물론 제작진은 진정성을 획득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 을 제작할 때 처음 일주일 동안은 6mm 카메라에 테이프도 넣지 않고 촬영한단다. 엄밀히 말하면 촬영하는 시늉만 하는 것이다. 그 기간의 촬영분에서는 ‘건질 것’이 없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촬영된다는 사실 때문에 의식화된 행동을 보이기 마련이다. 카메라에 익숙해져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행동할 수 있게 하는 제작진의 배려와 시간 투자, 세심한 기획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가 논란의 핵심에 놓였으니 하는 말이지만, 수많은 ‘미투’(Me Too) 프로그램들의 등장과 전작의 유례없는 성공으로 제작진은 ‘소포머 징크스’(후편이 전편보다 못한 현상)를 두려워했던 것은 아닐까. 내부적 긴장으로 오버했을 수도 있다. 논란은 가끔 약이 된다. 이 길목에서 그래도 우리는 성장하고 있다.
공세현 CJ오쇼핑 PD
PD의 눈으로 본 방송 편집
최고의 편집
두 에피소드의 교차 포인트에서 편집의 묘가 빛났다.
무한도전 게임물 편집은 정말 시뮬레이션 게임을 보는 듯한 비주얼을 완성해낸다. 내러티브도 좋고.
자막과 그래픽으로 빚어낸 사소한 것들의 ‘침소봉대’ 편집.
영화 저거 어떻게 찍었지? 어디까지가 대본일까? 훌륭한 기획에다 매체 융합이 돋보인다.
미드 이야기가 샘솟는데 언제부터 염두에 두고 가지를 쳐낸 것인지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편집의 성과.
최악의 편집
노골적으로 시청자를 낚는다는 느낌의 편집. 이것이 모큐멘터리?
야생 너구리를 잡아놓고 다시 풀어서 실제 잡힌 것처럼 방영한 것이 드러나 논란이 됐다. 편집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했다.
‘루저녀’ 논란 방송이 불러일으킬 파장을 예상하지 못한 제작진이 감당해야 할 논란을 드러냈다. 노출과 욕설을 걸러내지 못한 경우 사고 수준의 후폭풍이 따랐다.
스포일러 사태 그들은 왜 생방송으로 가지 않는가. 가수 심경 인터뷰를 포기하지 못하는 편집자의 고집과 소신은 때론 최악의 결과를 낳는다.
카메라가 건진 것은 특이한 사람들을 향한 호기심 어린 시선일까, 아니면 그 뒤편의 진실일까. 이 프로그램엔 계속해서 과장 논란이 따라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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