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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점령한 세계의 일상

‘메이드 인 차이나’의 생산과정 추적을 통해 중국의 현재를 관찰한 <이 팬티는 어디에서 왔을까>
등록 2011-07-01 16:36 수정 2020-05-03 04:26
중국 항저우의 의류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재봉틀로 작업을 하고 있다. 중국의 공장에서 생산된 물품들은 우리 일상에 맹렬한 기세로 스며들고 있다. 연합 AP

중국 항저우의 의류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재봉틀로 작업을 하고 있다. 중국의 공장에서 생산된 물품들은 우리 일상에 맹렬한 기세로 스며들고 있다. 연합 AP

기자 S는 마감 전날 밤, 다음날 닥칠 바쁜 일정을 대비하며 마음을 다스리려고 빨래를 돌렸다. 윙윙 소음마저 일정한 저 기계처럼 자신의 원고와 외고도 딱딱 시간을 맞출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매주 기계 같은 일상이라면 마감 지각의 괴로움보다 더 괴로운 나날일 테지, 따위의 망상을 하며 빨래 종료의 ‘띵동’을 기다렸다.

수건, 티셔츠 하나하나 꺼내 널고 나니 다음으로 세탁망에 넣어 돌린 속옷들이 우르르 쏟아져나왔다. 빨래를 기다리며 읽던 책 (알마 펴냄)의 제목처럼, 이 팬티들이야말로 어디에서 왔을까? 색깔도, 구매 장소도, 브랜드도 제각각인 팬티들을 하나씩 뒤집어봤다. 두 개는 ‘메이드 인’ 뒤에 타이라고 쓰여 있다. 두 개는 이스라엘, 하나는 한국, 나머지는 모두 중국산이다. 내친김에 빨랫대에 널린 다른 것들의 태그도 하나씩 살펴봤다. 어느 식당의 개업 축하 문구가 쓰인 수건은 국산, 백화점에서 산 남방은 중국산, 동대문시장에서 산 티셔츠는 국산. 물론, 개인의 빨랫대에 널린 의복들로 세계 의류 제조업에서 중국이 얼마만큼 큰 영역을 차지하는지를 일반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빨랫대 통계’는 적어도 평범한 서울 시민 한 명이 날마다 입고 벗는 일상의 반 이상을 중국에 기대고 있다는 것은 보여줬다.

<font size="3"><font color="#006699">목화밭에서 팬티 제조 공장까지</font></font>

뉴질랜드에 거주하는 영국의 칼럼니스트 조 베넷은 어느 날 동네 할인매장에서 중국산 팬티 6장을 산다. 그는 이 팬티들이 중국에서 적도를 넘어 뉴질랜드까지 왔음에도 5장들이 한 묶음이 단돈 8.59뉴질랜드달러(약 7천원), 그리고 좀더 고급 소재로 만들었다는 나머지 1장이 5.99뉴질랜드달러(약 5천원)에 팔린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수많은 공정과 중간상인을 거쳤음에도 그 가격으로 이익을 낼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베넷은 점차로 몸집을 불리며 우리 일상의 많은 부분을 책임지는 중국 제조업의 세계를 알아보고 싶었다. 지은이는 일상의 사소한 호기심에서 출발한 이 주제를 진지하게 탐구해 책으로 엮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중국으로 떠난다.

그는 자신이 입고 있는 팬티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한땀 한땀’ 취재했다. 우루무치 외곽의 목화밭을 방문하고, 목화를 세척하고 포장하는 공장을 살피고, 면사를 짜서 천을 만드는 이우시의 공장에 들르고, 상하이 남쪽 푸젠성 취안저우의 한 공장에서는 천을 조각내고 그 조각을 다시 꿰매 팬티를 만드는 과정을 관찰한다. 팬티 허리밴드에 들어가는 고무의 수급처를 찾으려고 타이 방콕에 가고, 중국 상하이 신항에서는 그렇게 만든 팬티들이 포장되고 컨테이너에 실려 떠날 채비를 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그의 취재는 자신이 뉴질랜드에서 팬티를 구매한 할인매장의 중국지사부터 시작해 제조공장, 허리밴드 고무의 수급처를 거쳐 최초의 원료를 생산하는 목화밭에 이르기까지 역추적 방식으로 이뤄진다. 과정은 지난하다. 난생처음 방문한 나라는 모든 게 어색했다. 그는 취재 중 만나는 중국의 현재·과거·미래를 이방인의 눈으로 바라본다. 그렇게 체험한 낯선 환경과 상황을 자신이 느낀 감촉 그대로 기록한다.

그러나 이사벨라 버드 비숍이 구한말 한국을 방문해 쓴 과 같은, 비교적 객관적인 서술이길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의 문장들은 촘촘한 연구와 관찰을 바탕으로 하기보다는 개인의 감상에 기대는 경우가 많다. 지은이는 중국으로 떠나기 전까지는 마치 200여 년 전의 영국인처럼 중국을 생각했다. 신비롭고 이국적인 곳,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곳. 그는 자신이 인종차별주의자였으며 중국을 불신했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재기발랄한 문체 가운데 종종 도가 지나쳐 읽는 이를 불편하게 하는 문장들이 거름망을 거치지 않은 채 툭툭 쏟아지기도 한다. 예컨대 중국의 음식문화를 몬도가네처럼 대하는 시선들, “여자는 수다스러운 남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갈가리 찢긴 잉어 머리를 젓가락으로 잡고는 물어뜯었다”라거나 타 문화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아쉬운 “글쎄, 도교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서양인인 나로서는 도교에 미신이 아닌 다른 꼬리표를 붙이기가 어렵다” 같은 문장들.

하지만 이제는 좀 식상해진, 시내 서점의 서가를 빼곡히 채운 중국 관련 책들(그러니까 중국이 세계를 장악할 것인가 말 것인가, 중국은 미국을 누르고 대국으로 성장할 것인가 등 비슷한 주제에 비슷한 방식으로 접근한)과 비교하면 는 훨씬 쉽고 흥미로운 방식으로 주제에 다가선다.

<font size="3"><font color="#006699">상하이 신항에 가득 찬 세간살이</font></font>

중국 제조업의 한 조각을 목격한 지은이는 자신이 싼값의 팬티를 살 수 있었던 이유를 찾았다. 어마어마한 규모로 부지런히 진행되는 생산과정은 마치 세계의 모든 물건을 지구 전체에 공급할 요량인 양 많은 물품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박리다매를 뒷받침하는 힘이다.

상하이 신항에서 지은이는 자신이 추적하던 팬티 외에도 숱한 물건이 컨테이너에 실리는 광경을 본다. “도마와 투명 랩, 볼펜, 화이트보드펜, 매직펜, 치약, 콜게이트 칫솔 상자가 쌓여 있다. 여자 속옷 무더기도 보인다. …나는 창고를 채운 상품들의 종류와 규모뿐 아니라 그 모순에 절로 웃음이 났다. 통로마다 돌아다니면서 상자에 붙은 상품 정보를 읽었다. 이곳은 일용품으로 가득했다. 세간으로 가득한 일상의 세계였다. 우리네 집을 채운 물건들이 그대로 옮겨져 있었다.” 자, 당신의 일상은 중국산 물건에 얼마나 점령돼 있을까.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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