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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일상에사 인간을 읽다


배우자 선택부터 가족 형성까지, 인간만큼 복잡하게 형성된 새들의 사회 <암컷은 언제나 옳다
등록 2011-04-22 16:21 수정 2020-05-03 04:26
새들은 어느 새가 훌륭한 부모 새가 될지, 조력하는 배우자가 될지 끊임없이 다른 새를 감시하고 경계하며 경쟁한다.

새들은 어느 새가 훌륭한 부모 새가 될지, 조력하는 배우자가 될지 끊임없이 다른 새를 감시하고 경계하며 경쟁한다.

아기 새 한 마리가 같은 둥지에 있는 형제 새를 공격한다. 덩치가 작은 새는 형의 공격에 속수무책이다. 부모 새는 자식들의 폭력에 무관심한 듯 깃털만 다듬는다. 뾰족한 부리에 거듭 살을 쪼이던 새는 결국 죽고 만다. ‘형제 살해’다.

왜가리의 세계에서 형제 살해는 흔한 일이다. 독수리와 두루미, 펠리컨, 얼가니새 등의 경우에도 부모가 용인하는 형제 살해가 이뤄진다. 대체로 공격당하는 쪽은 날 때부터 ‘보험용’이다. 낳은 알이 혹시 수정에 실패하거나 사고로 깨지는 등의 경우를 대비해 부모 새는 첫 번째 알을 낳고 며칠 뒤에 보험용 알을 낳는다. 애초에 부모 새는 두 마리 새를 양육할 여력이 없다. 그래서 첫째의 폭력을 묵인하고, 하나 남은 새의 생존 가능성을 높인다.

왜가리의 형제 살해 현장은 극단적이긴 하지만 인간 사회의 모습과 일견 닮았다. 경쟁 우위에 있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나날들이 그렇고, 제3세계 아이들이 손끝 닳아가며 가공하는 커피·초콜릿·운동화 등으로 욕망을 충족하는 우리 일상이 그렇다. 더 부풀려 해석하면 제 몸은 불려가며 백혈병으로 야위어가는 같은 ‘둥지’ 속 직원들을 외면하는 어느 기업의 행태와도 닮았다.

새들도 ‘이혼’한다

새들의 진화적 본성과 생존 전략을 담은 (이순 펴냄)는 여러 면에서 새와 인간 삶의 모습을 비교하게 한다. 책을 쓴 브리짓 스터치버리 캐나다 요크대학 교수(생물학)는 20년 넘게 남·북아메리카의 새들을 연구해온 동물행동학자다. 스스로를 ‘새 탐정’이라 부른다.

그는 짝짓기 전쟁을 중심으로 새들의 배우자 선택에 숨은 비밀을 밝혀내고자 한다. 새들의 유혹과 구애의 짝짓기, 이어지는 외도와 간통의 과정에서 만들어진 새 가족들이 겪어내는 삶의 모습을 기록했다. 부모 되기와 양육, 빈 둥지 찾아 ‘내 집 마련’을 하고 군집을 통해 주거지를 형성한다. 끊임없이 종알대며 숲에서 노래하는 새들은 다만 우짖기만 하는 게 아니라 사실은 인간 못지않게 복잡한 사회를 은밀하게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스터치버리 교수는 조류 사회 형성의 첫 출발점인 암컷과 수컷의 만남과 헤어짐의 과정에 주목한다. 새의 수컷이 암컷보다 아름답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다. 이유 또한 상식으로 통용된다. 암컷에게 잘 보이려는 것이다. 안쓰럽게도 수컷들의 화려한 치장은 아름답다기보다는 처절하다. 요정굴뚝새 수컷은 아름다운 깃털로 치장하고 암컷을 유혹한다. 큰초원뇌조 수컷은 봄날 아침마다 화려한 춤 공연을 한다. 수컷들은 군무를 펼치는 데 서로 눈싸움 경합을 하는가 하면 부리로 쪼아대기도 한다. 만신창이의 공연이다. 이 와중에 공연 무대의 가운뎃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는 수컷은 암컷에게 퇴짜를 맞는다. 춤추는 무대는 건강 과시의 장이다. 약하거나 아픈 수컷은 무대 가운데에서 건강하게 회전하고 점프할 수 없다. 어느 암컷이 (그나마 인간처럼 지적 능력이나 재치, 언술 등 다른 매력을 가질 수 없는 새의 세계에서) 비실비실 허약한 이를 간택할 것인가 말이다.

새들은 어느 새가 훌륭한 부모 새가 될지, 조력하는 배우자가 될지 끊임없이 다른 새를 감시하고 경계하며 경쟁한다. 그림은 보라큰털발제비. 이순 제공

새들은 어느 새가 훌륭한 부모 새가 될지, 조력하는 배우자가 될지 끊임없이 다른 새를 감시하고 경계하며 경쟁한다. 그림은 보라큰털발제비. 이순 제공

그러나 수컷이 아무리 건강함을 과시하고 아름다운 외모를 자랑하며 발버둥쳐도 암컷들에게는 취향이란 게 있다. 보라큰털발제비 암컷은 연상의 수컷을 좋아한다. 나이 든 보라큰털발제비 수컷들은 풍성하고 까랑까랑한 노랫소리가 듣기 좋고 강청색 깃털은 각도에 따라 달라 보여 아름답다. 멕시코양진이 암컷은 빨간색 깃털을 가진 수컷을 좋아한다. 유럽푸른박새 암컷은 다양한 노랫소리를 가진 수컷을 선호한다.

암컷들이 수컷을 까다롭게 고르는 이유는 사실 신중함이다. 예컨대 멕시코양진이 수컷들 사이에서 노란색, 주황색, 빨간색의 차이는 수컷의 건강 상태를 보여준다. 면역체계를 강화하는 카로티노이드 색소를 먹이를 통해 잘 섭취해야 털의 붉은색의 더 짙어진다. 건강한 수컷이 먹이가 많은 영역을 가진다. 알을 품고 새끼를 낳고 보호하는 암컷은 출산과 육아 과정 중에 수컷의 먹이 조달에 많이 기대야 한다.

이렇게 서로의 짝을 찾은 새들은 대부분 한 배우자와 짝을 이루지만 종에 따라 ‘이혼’이 일상적인 경우도 있다. 예컨대 떠돌이알바트로스는 짝을 고르는 데 오랜 시간을 소요하며 평생 육아를 협력하며 부부의 연을 맺는다. 그러나 유럽오목눈이는 이혼율이 100%다. 유럽오목눈이 수컷은 노래로 짝을 유인하고 암컷과 수컷이 서로 도와 정교한 둥지를 짓는다. 그리고 암컷이 알을 낳기 시작하자마자 둘 중 하나가 관계를 청산한다. 이들 사회에서는 이혼이 워낙 성행해 암컷과 수컷이 동시에 둥지를 버려 알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경우도 있다. 이혼은 이익 우선 논리를 따른다. 다른 장소로 이동해 자원의 접근성을 높일 목적이 첫째고, 일부일처의 경우보다 더 많은 자손을 생산하기 위함이 둘째다. 새들의 불륜은 철저한 자연선택적 이유에 기반을 두고 있다.

전쟁 같은 짝짓기를 끝냈다고 한시름 놓을 게 아니다. 인간의 경우와 마찬가지다. 결혼한 다음 인간들은 더 잘 먹고 더 잘 살겠다고 아등바등한다. 새들 또한 늘상 음식과 둥지 등의 자원을 두고 경쟁한다. 새들의 세계에서도 집이 없는 이가 있다. 종에 상관없이 ‘떠돌이새’라 부른다. 어떤 종은 부모새로부터 영역을 물려받을 때까지 얌전히 줄을 서 기다리지만 아닌 경우도 있다. 보라큰털발제비는 젊은 떠돌이새가 여분의 둥지를 가진 나이 든 새를 괴롭혀 남는 집을 포기하게 만든다. 검은머리쇠박새 중 집이 없는 새는 이 무리 저 무리를 떠돌아다니다 최고 서열의 새가 없어지면 재빨리 둥지를 낚아챈다.

인간에 의해 새의 15% 멸종될 것

자연이 놀라운 이유는 세상의 모든 종이 끊임없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각자의 영역에서 더 나은 세계를 구축해왔다는 것이다. 인간 사회 또한 끊임없이 다른 동물의 세계를 모방하며 영리한 방식으로 인류의 삶을 모델링해왔다. 우리는 때때로 조류 사회에서도 더 현명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착안하고 아이디어를 얻어왔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지구의 많은 부분을 재설계하기 시작하면서 새의 개체 수가 급감하고 있다. 스터치버리 교수는 다음 세기 안에 지구상 새의 15%가 멸종하고 1천여 종의 새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한다. ‘타산지석’이 차츰 사라져가는 지구에서 인류도 영원하기는 어렵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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