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레이디 가가의 라이브 공연을 보고 싶었던 것은 순전히 올해 그래미 어워즈 시상식에서 선보인 의 강력한 퍼포먼스 때문이었다. 당시 국내에서는 누에고치를 연상시키는 무대장치와 맨살이 훤히 보이는 노란 비닐 의상이 주로 화제였지만, 정작 내 마음을 끈 것은 당당하고 파워풀한 춤과 도발적인 가사였다. 이미 이 곡은 그래미 시상식 전에 공개됐는데, 가사의 메시지는 미국 현지에서 곧바로 화제가 됐다. 게이이건, 레즈비언이건, 트랜스젠더이건, 흑인이건, 레바논 사람이건, 동양인이건, 장애인이건, 태어난 대로 오늘의 너를 사랑하라는 메시지. 이건 소수자를 위한 즐거운 삶의 매니페스토이자 애국가다. 평소 성소수자와 인종차별에 대해 소신 발언을 한 그녀였기에 가사가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지만, 실제 노래와 퍼포먼스로 듣고 나니 이 메시지는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그래 맞다,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더라도 저렇게 도발적이고 즐겁고 파격적으로 해야 돼. 내용도 중요하지만, 표현도 중요하잖아.’ TV를 보며 나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다성애적·탈신성화한 퍼포먼스
그래서 가난한 미국 방문학자 신세지만 비싼 티켓값을 감수하고, 그것도 불혹이 한참 지난 나이에 샌드위치 싸들고 혼자 그녀의 공연 ‘몬스터 볼’(Monster Ball) 콘서트를 보러 로스앤젤레스(LA) 스테이플스센터로 갔다. 공연장 밖에는 그 흔한 플래카드 하나 붙어 있지 않고 한국의 열성적인 팬덤들처럼 아침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삼삼오오 모인 관객 중에는 가가의 패션과 스타일을 자유롭게 ‘코스프레’하는 사람이 많았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포스트 팝아트를 연상케 하는 몸에 두른 노란색 테이핑 패션과 게이들로 연상되는 남성들의 도발적이고 선정적인 가가식 망사스타킹 패션이었다.
다소 지루한 디제이의 오프닝 무대와 뉴욕 출신의 밴드 ‘시저 시스터스’의 게스트 무대가 1시간을 잡아먹고 무대 전환으로 거의 40분 넘게 공연이 지연됐지만, 관객들은 불평 한마디 없이 오히려 파도타기를 하며 공연을 기다렸다. 마침내 무대 전면 대형 스크린에 아주 천천히 움직이는 가가의 요염한 포즈가 인트로 영상으로 나오고, 어둠 속의 막에 실루엣을 드러낸 그녀는 을 시작으로 공연에 돌입했다. 조용하던 스테이플스센터의 관객 2만5천 명은 모두 일어나 흥겹게 춤을 추기 시작한다. 가가의 인트로 공연은 1980년대 유행한 ‘솔 트레인’의 일렉트로닉한 팝 버전으로 느껴졌다. 근육질의 남성 댄서와 요염한 여성 무희들 사이로 타고 흐르는 가가의 퍼포먼스는 강렬한 영상 이미지와 잘 짜인 안무 덕분에 마돈나보다도 더 선정적이고 비욘세보다도 더 감각적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부를 노래 가사의 메시지에 맞게 안무와 무대를 짜고, 다소 직설적인 듯한 멘트를 날리곤 했다. 특히 를 부른 두 번째 스테이지에서는 할리우드 주류 시스템, 저널리즘, 방송 등등 문화산업 시장의 허위의식에 대해 신랄한 욕설을 던지지도 했다. 그럼 가가는 뭐지? 그녀는 주류가 아닌가? 이쯤에서 나는 옆에서 함께 공연을 본 2명의 여자 대학생과 공연 전에 나눈 말들이 떠올랐다. 레이디 가가가 브리트니 스피어스나 그웬 스테파니와 다른 점이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한 학생이 이렇게 말했다. 그녀의 퍼포먼스는 압도적이고 사람을 미치게 만들며 무엇보다도 자신이 모든 것을 독립적으로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주류 팝과는 다르다고. 알다시피 그녀는 작곡·작사·안무·그래픽 등을 모두 자신이 직접 하거나 자신이 참여하는 가가만의 스타일 그룹에서 독자적으로 만들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독창적이고 독립적이긴 해도, 그녀는 여전히 주류 팝의 선두주자가 아닌가?
그녀는 공연 내내 강박적으로 자신은 자유로우며, 구속을 싫어하고 잡종 같은 몬스터라는 말을 계속했다. 진실을 증오하고 대신 팩트를 사랑하며 그래서 회의적이라는 멘트는 길들여진 팝스타에게서 느낄 수 없는 자유로운 감성을 엿볼 수 있었지만, 그것이 현재 최고의 팝스타로서 자신의 존재에 대한 역설적인 강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공연은 로 이어지며 우상파괴적이고 이교도적인 이미지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그녀의 예수에 대한 우상파괴적인 민감한 멘트는 관객조차도 탄식하게 했는데, 내겐 그 멘트 역시 준비된 퍼포먼스 중의 하나로 이교도적이기보다는 탈신성화에 가깝게 느껴졌다.
이제 공연은 마지막으로 내달리고 그녀의 히트곡 가 이어지자 공연장 안 관객의 환호는 절정에 이르렀다. 그리고 공연장에 가서야 알았는데, 이날이 가가의 25번째 생일이었다. 예정된 곡을 모두 마친 뒤 댄서들이 준비한 케이크가 등장하자, 2만5천 명의 관객은 모두 일어나 우리 5천만 국민도 다 아는 그 유명한 생일축하가를 ‘떼창’했다.
디지털 시대 코드 읽은 포스트 팝아트
공연을 마치고 거리로 나오며 흥에 겨워 핫팬츠 망사스타킹에 막춤을 추고 있는 일단의 게이들에게 환호를 보낸 뒤, 나는 가가의 공연을 다시 복기했다. 사실 아주 충격적이고 완벽한 공연이라고 할 수는 없다. 오랜 투어 때문에 공연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체력적으로 힘들어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가가의 파격적인 퍼포먼스도 사실 ‘블랙 사바스’나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퍼포먼스에 비하면 명함을 내밀기가 뭐하다. 그러나 잘 만들어진 미디어아트와 그런지적이고 다성애적인 퍼포먼스, 그리고 첨단의 전자적 장치들이 혼합된 이 공연은 분명 새로운 디지털 테크놀로지 시대를 대변하는 포스트 팝아트를 지향하고 있다. 그것이 마돈나와 다른 점이고 비욘세와 다른 점이다. 그녀는 확실하게 디지털 전자시대의 코드를 읽고 있고 자신의 예술적 역량을 발휘해 동시대 팝 음악의 전위를 추구하고 있다.
2009년 11월27일 시작해서 LA 공연까지 180회 이상을 소화했고, 평균 관객 2만 명 이상, 티켓 세일 98%를 기록한 이 공연이 기록적인 흥행 숫자보다 더 의미 있는 것은, 바로 일렉트로닉 팝 몬스터의 탄생이 점점 더 신화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글·사진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한동훈, 도로교통법 위반 신고돼…“불법정차 뒤 국힘 점퍼 입어”
지붕 무너져 심정지·53중 추돌…밤사이 폭설 출근길 비상
[단독] 윤, 휴장한 군 골프장 열어 라운딩…‘안보휴가’ 해명 무색
‘117년 만의 폭설’ …수도권 전철 추가 운행
‘공천개입 의혹’ 수사 나선 검찰…윤 대통령 부부로 뻗어갈지는 미지수
‘본인 부담 3만원’ 10만원짜리 도수치료, 앞으론 9.5만원 ‘껑충’
삼성전자 인사 쇄신은 없었다
숙명민주동문회 “김건희 석사학위 반납하라”…학교엔 ‘논문 표절 심사’ 촉구
제주공항 도착 항공기에서 50대 승객 숨져
압수수색 국힘, 공천 개입 의혹 자료 상당수 폐기…강제수사 실효성 의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