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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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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세계에서 태어난 이상한 괴물

클리셰가 내재한 설득력 있는 디테일,

내털리 포트먼 주연의 발레 스릴러 <블랙 스완>
등록 2011-02-25 14:17 수정 2020-05-03 04:26

안 그럴 것 같으면서도, 발레 영화를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발레 전문가들을 만족시키는 영화는 더욱 어렵다. 의심이 된다면 지금까지 나온 발레 영화들을 보라. 아마 만장일치의 합격점을 받는 영화는 파월과 프레스버거의 걸작 정도일 것이다. 그 뒤로 가면 초라해진다. 국내에서는 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는 셜리 매클레인과 앤 밴크로프트의 공연과 미하일 바리시니코프의 캐스팅으로 어느 정도 인기를 끌었지만 평범한 멜로드라마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것 말고 또 뭐가 있는가. 바리시니코프의 ? ? 제발 이야기는 하지 마시라.

내부인도 외부인도 깨닫지 못한 틈새
왜 이렇게 어려울까? 몇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우선 발레를 담는 것이 어렵다. 은 처음부터 영화를 위한 발레를 만들어 이 문제를 해결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무대를 위해 만들어진 를 제대로 올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부분 발레 댄서들은 발레 영화만큼이나 발레 공연 영상물에도 진저리를 칠 것이다. 아무리 공들여 만든다고 해도 공연 영상물은 기껏해야 필요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 중 발레를 잘 아는 사람이 드물다는 것도 문제. 심지어 을 만든 파월과 프레스버거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걸작인 건 발레와 영화적 완성도 때문이지, 발레 세계를 사실적으로 그렸기 때문은 아니다. 지금까지 나온 발레 영화들은 대부분 실제 발레 세계보다는 발레와 발레 댄서들에 대한 대중의 판타지에 의존한다. 당연히 전문가들은 그 관점에 냉소를 보내거나 경멸하게 되고, 새로운 프로젝트가 나올 때마다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 결과 영화는 비슷비슷한 이086야기를 반복하며 진부함 속으로 빠져든다.

블랙 스완

블랙 스완

대런 애로노프스키의 은 그 함정에서 빠져나왔는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일단 이 발레 전문가나 애호가들로부터 만장일치의 지지를 받지 않는다는 점을 먼저 밝혀두고 싶다. 하지만 이 영화는 나 와는 달리, 진짜 열정적인 논쟁을 이끌어내고 있으며 내부의 옹호자도 많다. 적어도 은 내부인들이 진심으로 미워할 자격이 있다고 믿는 발레 영화다.

얼핏 보기엔 의 이야기가 수백 년 정도 묵은 것 같다. 지금까지 무대를 지배해왔던 프리마발레리나 베스가 은퇴하고, 단장은 그 뒤를 이어 의 오데트를 연기할 새로운 댄서를 뽑는단다. 주인공 니나가 아슬아슬하게 경쟁에서 이겨 그 빈자리를 차지하지만 단장 토마는 그녀가 오로지 순결한 백조에만 어울릴 뿐, 흑조의 도발과 섹시함이 부족하다고 다그친다. 그리고 그녀 앞에 테크닉은 좀 떨어질지 몰라도 자연스러운 섹시함을 소유한 릴리가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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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많이 들어보지 않았는가? 그럴 수밖에 없다. 지난 몇백 년 동안 수천 번은 반복된 무대 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애로노프스키가 처음 받은 각본은 오프브로드웨이의 주연배우와 대역의 이야기로, 현대판 에 가까웠다고 한다.

애로노프스키는 이 이야기를 호러와 심리 스릴러의 세계로 옮긴다. 이 역시 처음은 아니지만(이 조금만 더 좋은 영화였어도 이를 인용하며 자랑스러워했을 텐데!), 애로노프스키는 이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살린다. 단순히 피와 폭력을 발레와 접합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다루는 작품의 의미를 파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는 더 이상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발레가 아니며, 오데트가 되는 건 공주가 되는 것과 거리가 멀다. 애로노프스키의 이 미친 세계에서 오데트가 되는 것은 백조로 변신하는 여자가 되는 것이며, 그건 이 논리에 따르면 늑대인간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콜럼버스의 달걀이다. 너무나도 자명하지만 외부인이나 내부인 역시 무지와 익숙한 반복 때문에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애로노프스키는 바로 여기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빈틈을 발견하고 쐐기를 박아넣는다.

내털리 포트먼, ‘아카데미 주연상’식 연기의 표준

여기서부터 은 익숙한 발레 클리셰를 넘어 로만 폴란스키의 영역, 그러니까 와 의 세계로 들어온다. 사방에서 도플갱어가 나타나고, 두 발레리나는 침대에서 뒹굴고, 거울은 깨지고, 튀튀는 피로 물들고, 변신이 시작되고, 괴물이 튀어나온다. 여기서 과연 진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고 묻는 것은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바보스럽다. 영화는 철저하게 니나의 주관적 관점에 대한 이야기이고, 그 관점에서 니나가 겪는 현실은 그냥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것 역시 발레 클리셰가 아니냐고? 물론 그렇다. 하지만 이 클리셰에 내재돼 있는 엄청난 힘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리고 애로노프스키는 이 클리셰 안에 전문가들 역시 인정할 수 있는 설득력 있는 디테일을 심어놓는다. 의 클리셰에는 적어도 물어뜯을 고기가 잔뜩 붙어 있다. 그것은 익숙한 세계에서 태어난 정말로 이상한 괴물이다.

아, 그리고 내털리 포트먼. 물론 여러분 중 포트먼에게 진짜 발레리나의 완벽함을 기대하는 분은 없을 것이라 본다. 하지만 포트먼은 영화 내내 거의 완벽하게 ‘발레리나를 연기하는 배우’이며, 할리우드의 편집 마술과 대역의 도움 아래 관객을 이상한 몰입의 세계로 유도한다. 의 니나는 포트먼 연기의 절정이기도 하지만, 아카데미 주연상식 연기의 표준이기도 하다. 수상 결과를 예측하는 것은 무익한 일이지만, 이번 아카데미에서 포트먼이 여우주연상을 받지 않는다면, 그 결과를 두고 말이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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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나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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